일반적인 이야기 255

손자의 상장자랑

영어학원에 다니는 손자가 7월 말 시험에서 97점을 얻어 1등을 했다고 자랑이다. 초등학교 2학년인데 2살 많은 외사촌 누나가 영어를 잘하니까 저도 누나처럼 영어를 잘해보겠다고 다니는 중이다. 이 아이는 일찍이 한자를 공부해서 그 실력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는데 영어까지 잘하려나? 기대해 본다. 손자•녀들아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라렴. 너희들이 공부를 잘하는 것은 할아버지 할머니의 기쁨이란다. 명예 판정 귀하의 뛰어난 성과를 기리기 위해 우리는 이로써 제시 케빈 임(GT1B2) 이 공인인증서로 귀하의 높은 성취 수준을 위해 2022.7월 월간시험 광진폴리어학원 데이지 손

독버섯 주의보

어렸을 때 갓버섯을 뜯어다 호박잎에 싸서 구워 먹었었는데 그 맛이 참 좋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요즘은 산행을 하다 보면 그와 비슷하지만 갓의 색깔이 회색인 버섯을 가끔 만난다. 혹시 갓버섯이 아닐까? 산행 중인 이 사람 저 사람 붙잡고 물어봐도 확실하게 아는 사람이 없다. 그러다 어느 분이 '갓버섯인지는 몰라도 먹는 버섯'이라고 한다. 집에 가지고 와서 된장찌개에 넣어 끓여 먹으니 특별한 맛은 없어도 먹을 만 했다. 그래서 다음에는 애호박나물에 넣어 함께 볶아 먹어도 이상이 없다. 버섯의 사진을 찍어 ‘산나물과 약초’ 동호인들이 운영하는 카페에 올려놓고 버섯 이름과 식용 가능 여부를 문의하였더니 ‘암회색 광대버섯’이라는 이름과 함께 먹지 못한다는 답이 올라왔다. 광대버섯? 광대버섯은 독버섯의 일종이라고 ..

요가와 함께 하는 노년

온몸을 비틀고, 꺾고 . . . 나도 할 수 있을까? 낮 설고 두렵기까지 하던 요가를 노인복지관에서 호기심으로 시작해 2년 정도 배워 기본지식을 터득하였다. 그 후 십여 년, 요가는 내 건강을 지켜주는 친구가 되었다. 매일 새벽, 잠에서 깨어나 요가에 한 시간 집중하고 나면 온몸이 거뜬해 하루가 즐겁다. ‘오십견’, ‘팔다리 저림’, ‘허리 아픔’까지 사라지고, 늙으면 키가 준다는데 70대 중반을 넘었지만 요가 덕분인지 아직 키도 그대로이다. 건강을 위해 이것저것 해봤지만 이만 한 게 있었던가. 기구도, 특별 장소도 필요 없고, 시간만 내면 그만, 약골인 나를 건강한 노년으로 바꾸어 놓은 요가는 내 영원한 친구, 평생 반려 운동이 되었다.

블로그를 바꾸었더니 . . .

다음 불로그는 9월말까지밖에 안된다고 티스토리로 바꿔야 한다고 한다. 하라는 대로 따라가니 바꿔지긴 했는데 새로운 운용법이 서툴러 쩔쩔맨다. 그동안 지인들이 작성한 방명록도 친구들이 달아 놓은 댓글도 모두 없어지고 새롭게 글을 쓰고 싶어도 방법을 몰라 헤매인다. 얼마나 헤매어야 숙달될까? 옛날에 있던 댓글 등은 다시 불러올수 없을까?

하느님을 팝니다

20세기 초, 미국 서부의 작은 도시에서 일어난 일이다. 어느 날, 10살 정도의 남자 아이가 1달러를 손에 꼭 쥐고 거리에 있는 상점마다 들어가 이렇게 물었다. “안녕하세요? 혹시 하느님을 파시나요?” 이 황당한 질문에 가게 주인들은 안 판다고 말하거나 혹은 아이가 장사를 방해한다고 생각해 매몰차게 내쫓기도 했다. 해가 점점 지고 있었지만, 아이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69번째 가게에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혹시 하느님을 좀 파시나요?” 가게 주인은 60이 넘은 머리가 하얀 노인이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아이에게 물었다. “얘야, 하느님은 사서 무엇하려고 그러니?” 자신에게 제대로 말을 걸어주는 사람을 처음 본 아이는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고, 자신의 사연을 노인에게 털어 놨다. 아이의 부모는 오래..

둘다 가지면 행복할까?(모셔 온 글)

초등(국민)학교 다닐 때 아이들이 어찌나 많은 지 한 반에 보통 70명이 넘었다. 그러고도 10반을 넘었으니 쉬는 시간에 운동장을 내려다보면 거짓말 좀 보태어 새카맣게 보였다. 원래 4학년이 되면 남과 여반으로 나뉘었는데 내가 들어간 반은 남녀 합반으로 6학년까지 그대로 갔다. 몇 학년 때인가 기억이 안 나는데 내 짝꿍은 몹시 마르고 까무잡잡한 아이였다. 짝꿍은 도시락을 한 번도 가져오지 않았고 옥수수빵을 받아 먹었다. 그런데 그 빵도 다 먹지 않고 남겨서 가방에 넣는 것을 여러번 보았다. 연필이니 공책도 없을 때가 많았고 그림도구는 아예 준비를 해오지 않았다. 그래서 내 것을 함께 쓰는 일이 많았는데 정말 아껴서 쓰려고 하는 모습이 보여, 반 쯤 쓴 크레용셋트와 도화지를 나누어주기도 했다. 어느 날인가..

고향마을에 경사났네

마을 출신 인사가 출세를 하거나 큰일을 하면 마을사람들이 이를 알리는 현수막을 마을 입구에 걸어 축하하고 오가는 사람들에게 알리는 풍습이 있는바, 나의 고향마을(주산면 주야리 두란마을)에 요즘 그런 일이 생겼다. 이야기는 내가 공직에 근무하던 198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4~5월경 고향의 아주머니 한분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분은 내가 어릴 때 이웃집에서 약 10년간 사시던 분이었다. 자기 아들이 시골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진학하려 하였으나 인천의 ‘인하대학교’ 입학시험에서 떨어져 1년간 재수를 하는 중 대천시에서 시행한 지방행정 9급공무원시험을 보았는데 합격하였다는 것, 그러나 공무원이 별로 달갑지 않아 합격자등록을 미루고 있어 엄마로서 나에게 전화로 상담을 하는 것이었다. “아들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