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인 이야기/불효자의 넋두리 12

어머니가 사주신 동내복

내 나이 50대 중반이던 1990년대 어느 겨울, 어머니께서 두툼한 겨울 내복을 한 벌 사주셨었다. 그때는 젊은 편이어서 내복을 안 입거나 몹시 추울 때만 얇은 것을 며칠동안 입어도 되었기에 두툼한 내복이 필요 없어 옷장 속에 넣어 두었었다. 세월이 흘러 나이가 70이 넘어가자 그 내복을 꺼내어 입기 시작하였다. 겨울 내복은 1년 내내 입는 게 아니라 한 철만 입기 때문에 두고두고 여러 해를 입을 수 있었고 그러다 보니 점점 낡아서 처음만큼 따뜻하진 않지만, 어머니의 온정을 생각하며 해마다 입고 또 입는다. 요즈음에는 ‘보온내의’니 ‘발열내의’니 하는 좋은 내복들이 많이 나오고 그것들은 얇으면서 기능이 뛰어나지만, 어머니의 사랑이 깃든 그 내복이 훨씬 더 따뜻하게 느껴진다. 어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시고 두..

99세 할머니의 요리강습

이 동영상은 어머니께서 99세 되시던 2018년 봄의 모습이다. 그로부터 2년여 지난 2020년 가을 하늘나라에 가셨다. (돼지고기를) 비계있능 거 사다가 쌂으믄 먹을만 혀 그걸 무름허게 쌂어, 무름허게 쌂어서 칼루 요만치씩 쓸으믄 비계허구 따라서 고기허구 같이 쓸어지잖여? 그늠하고 먹으면 맛있는디, 이렇게 쌂어서 쓸으믄 비계가 고기허구 함께 납죽납죽허잖여? 그늠 무름헌게 그늠 먹으믄 맛있는디. -!!!!!!!!!!!!!!-

아들의 병을 몰아가신 어머니

어깨도 결리고, 허리도 조금씩 아프고 . . . 나이 탓인지 여기저기 몸이 나쁜 곳이 많았는데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후 점점 나아져 일주일 정도 지나니 다 나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어머니께서 아들의 아픈 병을 모두 가지고 가셨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살아생전에 제대로 효도 한 번 못해 드린 불효막심한 자식을 어디가 예쁘다고 병까지 몰아가셨나? 그럴까? 그럴 수 있을까? 돌아가시는 마당에 자손들의 병을 몰아가실 수 있을까? 물론 하실 수 있다면 어떤 부모도 그렇게 하시고 싶겠지만, 저승이 있을 것 같지도 않고, 설령 있다손 치더라도 이승과 저승이 엄연히 구분되는데 그런 일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며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도 없는 일이 아닌가? 그렇다면 왜 병이 나을까? 그런 분야에 전문적인 지식도 없..

숨 가쁜 6일간

2020.11.8 병원에 계신 어머니께서 언제 돌아가실지 짐작할 수 없는 급박한 지경에 이르렀다기에 아내와 함께 저녁차로 상경하여 아들집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작년 7월에도 그런 일이 있었으나 기적처럼 일어나셔서 1년 4개월을 사셨지만 이번에는 뭔가 모를 불안감이 느껴진다. 2020.11.9 불안 속에 하루가 바뀌어 아침이 되었다. 어머니 증세가 더욱 나빠졌다는 연락에 병원으로 가는 전철 속에서 10:53에 운명하셨다는 비보를 받았다. 상봉역에서 만난 형님과 나와 아내가 병원에 도착하니 어머니는 안치실에 옮겨져 있었다. 코로나위험 때문에 외래객인 우리 중 한사람만 보라고 한다. 그것도 방호복을 입고 장갑을 낀 중무장상태로 봐야 한다기에 몸이 약한 형님을 대신해 내가 혼자 들어갔다. 어머니께서 환자복을 입..

기적과 운명

어머니께서 놀라운 회복력으로 집중관리실에서 다시 일반실로 옮기셨다는 연락이 왔다. 지난 6월 8일 중환자들이나 가는 그곳에 가셔서 콧 줄로 식사를 하시다가 점점 더 악화되시어 연명치료수준에 이르자 7월 15일에 의사와 협의하여 식사와 투약일체를 중단하고 조용히 운명하시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오히려 회복되시어 7월 21일에는 미음을 조금씩 잡숫고, 점점 더 나아져 8월 17일에는 죽을 드시게 되었으며, 경관식을 간식으로 드렸다. 그 후 죽이 맛이 없다며 잘 잡숫지 않으시니 9월 20일경부터는 병원 측에서 아예 경관식만을 잡숫게 하였다. 종합영양식품인 경관식을 잡수셔서 그런지 점점 나아지시어 드디어 10월 21일 일반병실로 옮기신 것이다. 이것은 기적이다. 100세 노인이 중환자실에서 회복되어 일반실로 옮기..

사모곡

오늘은 보령머드축제전야제행사로 거리행진과 축하공연이 있는 날이다. 행정동우회 회원들도 18시까지 나와서 행진에 참여하고 저녁도 같이 하자고 연락이 왔으나 나는 가고 싶지 않다. 여러 사람이 모이는 장소에 나가기가 괴로워 3일전부터는 집에만 틀어박혀 지내는 중이다. 그러나 하루 한 시간 정도 운동은 해야겠기에 저녁식사 후에 대천천변을 걸었다. 앗불싸, 행사에 참여 후 저녁을 먹고 돌아가는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 이럴 줄 알았으면 다른 코스로 가는 건데.... “왜 안 나왔느냐?” 묻는 친구들에게 우물우물 얼버무리고 걷기를 계속했다. 멀리 잔디광장에서 축하공연 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 중에 어느 출연자인가 부르는 ‘사모곡’의 가사가 애절하게 가슴에 와 닿는다. “이제는 눈물 말고 그 무엇을 바치리까?” 따라..

손을 잡고 지켜보는 수밖에

20일전 뵈었을 때 폐렴으로 항생제를 맞으시던 어머니께서 다음날 집중 관리실로 옮겨 콧 줄 식사로 연명을 하시는데도 가깝게 사는 형제들이 자주 찾아뵙기에 나는 오늘에야 아내와 같이 어머니께 갔다. 콧 줄과 항생제 링거를 끼고 누워계신 어머니, 손도 퉁퉁 부으신 채로 누워계신 모습에 가슴이 메어진다. 간호사의 말에 “폐렴증세가 좀 나아졌다, 나빠졌다” 하는데 지금은 좀 나아지신 상태라고 한다. 간병인이 나를 가리키며 누구에요? 물으니 “아들... 예뻐” 하시며 손까지 들어 가리키신다. 또 며느리를 가리키며 누구에요? 물으니 “두 째 며느리”라고 하신다. 지난번에는 나를 큰아들이랬다. 용혁이(네째)랬다 하시었는데 정신은 나아지신 것이다.어디 아프시냐고 여쭈니 “전신이 아프다” 그리고 “절린다”고도 하신다. ..

어머니의 잇몸

어머니 건강이 좀 나아지신 것 같고 정신도 비교적 맑아지신 것 같다. “너는 아들이 하나든가? 딸은 시집갔는가?” 등 물으시는 게 기억력이 많이 흐리시긴 하지만, 전처럼 횡설수설하시지는 않는다. 정신이 좀 맑아지시니까 불평불만을 많이 하신다. 집에 가시고 싶어 하시는 말씀, 아들들에 대한 불만, 손자손녀들이 찾아오지 않는다는 말씀, “그게 다 너희들(아버지들)이 잘못 가르쳐 그렇다”는 말씀 등 듣기 송구스런 말씀들.....사 가지고 간 포도를 껍질 벗겨서 드리니 한 알 잡숫고, 오렌지도 까서 드렸으나 아주 조금만, 그리고 초코파이도 드렸으나 그것도 조금 잡숫고 만다. 잇몸이 아파서 못 잡수는 것 같다. 인근 치과에 모시고 가 치료해드리면 좋겠으나 오늘은 나의 호홉기와 관련해서 병원에 다녀오느라 어머니와 ..

회오리바람

4주 만에 찾아뵙던 어머니를 6주 만에 찾았다. 병원가까이에 사는 아우들이 어머니를 자주 찾아뵈니나에게는 설 명절에 가면 좋겠다는 의견에 따라 2주 늦게 찾은 것이다. 정신건강이 많이 흐려지셨는데도 둘째아들인 나를 알아보시고 같이 간 손자도 “성일이냐”고 하시며 반가워하신다. 다만 여러 번 보셨으면서도 손자며느리에겐 예쁘다. 여섯 살 증손자를 보시고는 인물이 훤하게 잘 생겼다. 등 처음 보시는 것처럼 말씀하신다. 30분쯤 대화를 나누고 있으려니 성훈이 조카내외가 찾아왔다. 셋 째 집 손자인 성훈이를 알아보셨지만 손자며느리는 역시 처음 보시는 것처럼 예쁘다고 말씀 하신다. 내일이 설 명절이라고 차마 말씀 못 드리고....불만스런 말씀에 응대하며 그렇게 또다시 한 시간쯤 지났을까, 작별의 인사를 고하려니 송..

드문드문

8시∼10시까지 모두 매진되어 11시 버스로 갔더니 14시가 넘어서야 병원에 도착했다. 고기를 다져 만든 국은 저녁에 드리도록 간병인에게 맡기고 고구마를 드시도록 했다. 오렌지도 가져갔으나 오렌지 주스를 잡숫고 싶다 하셔서 주스와 바나나 한 송이를 사다가 드렸다. 건강은 괜찮아 보였으나 기억력이 많이 떨어지신 듯 나를 큰아들로 아시기에 둘째라고 알려 드리고 한참을 대화하는데 또다시 큰아들로 착각하시어 말씀을 하시고 간병인이 이게 누구냐고 하니 큰아들이라고 알려주신다.“돈이 없어 긔(게)를 먹고 싶어도 못 먹는다. 가족들이 많아도 드문드문 하나씩 찾아올 뿐이다. 막내는 어디 멀리 이사 간 것 같은데 어쩌다 밤에나 왔다 간다. 큰손자가 아들딸 쌍둥이를 낳았다는데 보고 싶고 손주 며느리들도 보고 싶다. 여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