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8
병원에 계신 어머니께서 언제 돌아가실지 짐작할 수 없는 급박한 지경에 이르렀다기에 아내와 함께 저녁차로 상경하여 아들집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작년 7월에도 그런 일이 있었으나 기적처럼 일어나셔서 1년 4개월을 사셨지만 이번에는 뭔가 모를 불안감이 느껴진다.
2020.11.9
불안 속에 하루가 바뀌어 아침이 되었다. 어머니 증세가 더욱 나빠졌다는 연락에 병원으로 가는 전철 속에서 10:53에 운명하셨다는 비보를 받았다. 상봉역에서 만난 형님과 나와 아내가 병원에 도착하니 어머니는 안치실에 옮겨져 있었다. 코로나위험 때문에 외래객인 우리 중 한사람만 보라고 한다. 그것도 방호복을 입고 장갑을 낀 중무장상태로 봐야 한다기에 몸이 약한 형님을 대신해 내가 혼자 들어갔다. 어머니께서 환자복을 입은 채 조용히 눈을 감고 계셨으나 입은 벌어지고 한쪽 무릎이 굽은 채로 누워계셨다. 비닐장갑을 낀 손으로 가만히 얼굴을 만져보았다. 울컥하고 울음이 복 바쳐 올랐다. 어머니 어찌 그리 고생을 . . . 왜 그렇게 고생을 . . .많이 하셨 . . .? 흐흐윽 . . . 말을 제대로 잊지 못하고 어깨를 들먹이며 잠시 흐느끼다가 나왔다.
셋째가 도착하여 장례식장을 알아보았으나 당초 우리가 목표했던 경찰병원장례식장은 빈자리가 없다고 하고, 보훈병원은 자리는 있으나 상조회사를 끼면 받아주지 않는다고 한다.
당장 장례식장 때문에 비상이 걸렸다. 부산한 움직임 끝에 강동성심병원장례식장으로 정하고 상조회사(프리드라이프)에 전화로 접수하니 그곳에서 보낸 앰브란스가 13시에 도착하여 시신을 장례식장으로 옮겼다. 시신을 안치실에 모시면서 어머니가 맞은 지 보라고 해서 확인하니, 한 시간여 만에 깨끗한 흰색 옷으로 갈아입혀드린 후 그 모습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었다.
시신운구와 확인과정은 형님께서 영정사진을 가지러 가셨기에 나, 아내, 셋째가 참여하였다.
상조회사에서 나온 팀장과 구체적인 장례식 비용과 절차 등을 협의하고, 장례식장 관계자와 식장사용료, 식대 등을 협의, 계약하는 동안 가족들이 속속 도착하였다. 장례식장 측에선 부고(안)을 제시하면서 원하면 휴대폰으로 전송까지 해준다고 하지만 문안을 보니 마음에 안 들어 각자 문안을 만들고, 연락도 각자 연락해야할 사람에게 알아서 연락하기로 하였다.
한편 화장을 하여 선영에 계신 선친묘역에 합장하기로 하였으며, 화장장은 홍성추모공원을 이용하기로 하고 상조회사에서 섭외토록 하여 화장시간을 11일 10:30분으로 정하였다.
고향에 사는 재종동생에게 묘역설치공사의 주선을 부탁하고, 고향의 조문객들 식사는 상조회사에게 맡아달라고 의뢰하였다.
2020.11.10.
나를 제외 한 형제(상주)들이 모두 서울지역에 사는 관계로 어제는 몇 명의 조문객이 다녀갔지만 오늘은 조문객들이 많이 오실 것 같았으나 코로나 정국으로 인해 조문객이 적다. 게다가 부고에 계좌번호를 병기하고 조문객도 부의금만 넣고 문자로 조문하는 게 크게 흉이 되지 않는 세상이라서 가족들이 계좌번호를 병기하니 조문객의 수가 뚜렷이 줄어든 것이다.
나는 서울지역에는 자주 연락하는 8명의 친구만 연락하였는데 그 중 1명은 그나마도 사정이 있고 나머지만 조문하는 바람에 하루 종일 거의 바쁘지 않게 보냈다.
13:30 가족들이 모두 참여한 가운데 입관 식을 하였는데 관 뚜껑을 덮기 전 장례지도사가 마지막으로 한마디씩 하라고 한다. 나는 할 말이 없다. 어머니 죄송합 . . .울컥, 북 바치는 슬픔으로 말을 잇지 못하고 돌아서 울먹이고 말았다.
장례식장은 빈소, 접객 실, 상주휴식 실과 그에 딸린 화장실까지 갖추어 이용이 편리하였으나 복도가 좁아 조화가 많이 들어오는 상가(喪家)는 진열이 곤란하게 생겼다.
다행히 우리는 많은 조화가 오지 않아 약간 촘촘히 세워서 들어 온 것을 모두 놓을 수 있었고 그 중 바구니 형 조화 2개가 있어 영전 양쪽에 놓으니 제단과 잘 어울려 좋았다.
2020.11.11.
05:30경부터 일어나 바쁘게 움직인 끝에 예정했던 07:00에 발인해 홍성화장장에 당초예정보다 1시간정도 일찍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화장을 10:30에 시작하여 2시간 걸린다고 하니 그러면 12:30분, 장지까지 간다면 13시가 넘어야 할 것 같다.
장지 도착예정을 12:30분으로 부고가 나간 터라 오신 조문객들을 어떻게 기다리게 하겠는가? 난감했다. 궁리 끝에 화장이 시작된 후 나를 포함한 5명이 먼저 장지로 내려와 일찍 오시는 조문객들에게 식사를 먼저 하시고 조문은 나중에 하시도록 유도했다. 그러나 화장이 예정보다 빨리 끝나는 바람에 당초 계획했던 12:30분에 운구차가 도착할 수 있어 좋았다.
재종동생의 집이 바로 장지 근처라서 그 집 마당에서 조문객들에게 음식을 접대할 수 있어 편리하고 좋았다. 묘역설치공사도 순조롭게 진행되어 예정했던 15시에 모든 공사와 봉분제행사가 끝났으니 가족들이 열심히 참여했고, 공사를 주선하고 마당을 빌려 준 재종동생의 협조가 더 없이 크고 고맙게 생각된다.
2020.11.12.
아침에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는데 중간에 어머니 생각에 눈물이 흘렀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 . . . 마침내 어깨를 들먹이며 흐느꼈다. 옆의 아들은 깊은 잠에 빠졌는지 눈치 채지 못한 것 같았으나 왼쪽에 자던 아내가 일어나 어깨를 감싸주어 함께 흐느꼈다.
그렇게 한참을 흐느끼다가 스트레칭도 생략하고 일어났다.
9일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 어제 장례를 치루기까지 정신없이 지나간 일들이 꿈결같이 느껴진다. 특히 어제 날씨가 참으로 좋았기에 평소 어머니를 아는 조문객들로부터 “고인의 심덕처럼 날씨가 좋다”고 하던 덕담들이 생각난다. 내일 삼우제까지도 날씨가 좋았으면 . . .
202011.13
삼우제날이다. 다섯째가 승합차를 빌려 서울지역의 가족들을 싣고 오고, 나와 아내는 제물을 마련하여 장지에 직접 가 만나서 함께 간단한 제례를 올렸다. 약간 흐리다는 예보와는 달리 날씨가 오늘까지 좋았다. 대천에 나와 산수림이라는 식당에서 점심을 함께 한 다음 서울지역 가족들을 배웅했다.
올라가는 중에 차가 막혀 고생들을 많이 했다니 안타까웠다.
8일 상경하여 9일 어머니의 운명, 2일간 조문받기, 11일 화장과 묘역에 모시기, 13일 삼우제를 마치기까지 6일간, 그야말로 정신없이 흘러갔다.
그 숨 가쁜 6일간이 지나고 보니 어머니는 이 세상에서 저세상으로 가셨다. 이제 영원히 돌아 오실 수 없는 저 세상으로 가신 것이다.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고 안아드리고 싶어도 영영 그럴 수 없는 몸이 되셨다.
꿈속에서라도 보이려나. 어머니! 어머니 . . . .
영전앞 양쪽으로 조화를 놓았다.
이 사진은 회갑 때 모습이고 실제로는 올해 101세 되셨다.
아버지묘역에 합장으로 모셨다.
'일반적인 이야기 > 불효자의 넋두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99세 할머니의 요리강습 (0) | 2021.12.17 |
---|---|
아들의 병을 몰아가신 어머니 (0) | 2020.11.18 |
기적과 운명 (0) | 2019.10.24 |
사모곡 (0) | 2019.07.20 |
손을 잡고 지켜보는 수밖에 (0) | 2019.06.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