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인 이야기/살아가는 이야기 71

독버섯 주의보

어렸을 때 갓버섯을 뜯어다 호박잎에 싸서 구워 먹었었는데 그 맛이 참 좋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요즘은 산행을 하다 보면 그와 비슷하지만 갓의 색깔이 회색인 버섯을 가끔 만난다. 혹시 갓버섯이 아닐까? 산행 중인 이 사람 저 사람 붙잡고 물어봐도 확실하게 아는 사람이 없다. 그러다 어느 분이 '갓버섯인지는 몰라도 먹는 버섯'이라고 한다. 집에 가지고 와서 된장찌개에 넣어 끓여 먹으니 특별한 맛은 없어도 먹을 만 했다. 그래서 다음에는 애호박나물에 넣어 함께 볶아 먹어도 이상이 없다. 버섯의 사진을 찍어 ‘산나물과 약초’ 동호인들이 운영하는 카페에 올려놓고 버섯 이름과 식용 가능 여부를 문의하였더니 ‘암회색 광대버섯’이라는 이름과 함께 먹지 못한다는 답이 올라왔다. 광대버섯? 광대버섯은 독버섯의 일종이라고 ..

블로그를 바꾸었더니 . . .

다음 불로그는 9월말까지밖에 안된다고 티스토리로 바꿔야 한다고 한다. 하라는 대로 따라가니 바꿔지긴 했는데 새로운 운용법이 서툴러 쩔쩔맨다. 그동안 지인들이 작성한 방명록도 친구들이 달아 놓은 댓글도 모두 없어지고 새롭게 글을 쓰고 싶어도 방법을 몰라 헤매인다. 얼마나 헤매어야 숙달될까? 옛날에 있던 댓글 등은 다시 불러올수 없을까?

부모산소 가꾸기

부모님 산소의 잡풀을 뽑고 주변 풀을 깍는 등 정리작업을 했다. 작년 11월에 돌아가신 어머니, 아버지 산소에 같이 모셨는데 잔듸는 잘 살았으나 잡풀이 많이 섞여 있다. 시영, 마, 멍석딸기, 띠 . . . 마와 멍석딸기는 덩굴식물이라서 묘역을 덮으면 골칫거리, 시영과 띠풀도 무성하게 자라면 잔듸가 살아남지 못한다. 어제 새벽까지 내린 비로 촉촉히 젖은 흙이 부드러워 작업하긴 좋았지만 풀뿌리들이 깊고 돌들이 많아 캐내는데 힘이 많이 들었다. 아내와 나는 열심히 땀을 흘렸다. 아침 7시부터 햇볕이 따가운 11시까지. . . 마침내 말끔해진 부모님 산소 모습에 마음이 흐믓했다. (2021년 6월 1일) 작업전 월안 부분에 잡풀들이 많이 자란 모습 잡풀을 뽑은 말끔한 모습(묘역에도 잡플을 뽑은 흔적) 묘역 앞..

등산길에서 만난 오토바이

누군가가 5월의 푸르름을 청소년에 비유했던가? 온통 연녹색 새순으로 뒤덮인 싱그러운 숲속 길, 향긋한 나무 내음, 산뜻한 공기, 이따금 씩 들려오는 산새들의 지저귐도 정겹다. 그런 숲속을 도란도란 아내와 함께 이야기하며 걷는 기분, 몸도 마음도 가쁜하여 건강해지는 것 같고, 부부 사랑도 더 두터워지는 것 같다. 건강을 위해 매일 하는 산행, 요즘은 코로나 위험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등산길보다는 호젓한 산길을 즐겨 찾는다. 며칠 전 여느 때와 같이 산을 오르는데 갑자기 고요한 숲속의 정취를 깨는 굉음이 울렸다. 방금 올라왔던 방향에서 요란한 소리와 함께 오토바이 한 대가 올라오고, 이어서 조금씩 시간을 두고 한 대, 또 한 대, 이렇게 연거푸 3대가 올라와 우리를 지나쳐 올라간다. 숲속에는 금세 오..

노인의 고통(모셔온 글)

어느 양로원에 놓여 있던 글이 가슴을 적십니다. 우리가 늙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보여주는 것 같아 나 자신을 한 번 뒤돌아 보게 합니다. 이를 ‘노인고(老人考)’라 이름 붙이고 우리의 나머지 인생이 그리 초라하지 않게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면 좋을 것 같아 옮겨 봅니다. 〖열심히 살 때는 세월이/ 총알 같다 하고 화살 같다 하건만/ 할 일 없고 쇠하니/ 세월이 가지 않는 다 한탄하시더이다./ 정신 맑으면 무엇하리요/ 자식 많은들 무엇하리요/ 보고픔만 더하더이다./ 차라리 정신 놓아버린 저 할머니처럼/ 세월이 가는지, 자식이 왔다 가는지/ 애지중지 하던 자식을 보아도/ 몰라보시고 그리움도 사랑도/ 다 기억에서 지워버렸으니/ 그저 천진난만하게도/ 하루 3끼 주는 밥과 간식만이/ 유일한 낙이더이다./ 자식 십..

이런 인생 저런 인생

새해 들어 가까운 사람이 3명이나 세상을 떠났다. 1월 11일에는 동갑내기 친구 정○○, 1월 25일에는 5살 위인 신○○, 2월 4일에는 4살 위인 오○○ 등 20여 일 사이에 세 사람이 떠난 것이다. 동갑내기 친구인 정○○은 시청 과장까지 역임한 전직 공무원으로 농촌 출신이지만 형편이 괜찮은 집에서 태어나 경제적으로 구애됨 없이 자랐고, 고등학교를 서울로 유학하였으며, 결혼도 회사에 다니는 서울 아가씨와 만나 평생을 금슬좋은 부부로 살았는데, 경제적 어려움이 적었기에 아등바등 돈을 모으려 하거나 절약하려 노력하지도 않고, 가끔 부부가 승용차에 몸을 싣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즐기기도 하는 멋진 삶을 살았다. 슬하에 네 딸을 두었는데 무난하게 자라서 출가하여 모두 잘살고 있고 그중 하나는 아버지처럼 공무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