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인 이야기/살아가는 이야기

학력때문에

구슬뫼 2019. 7. 25. 20:17

옛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학력을 속이는 것을 예사로 생각했다.

군대에 가보면 대부분이 고졸 이상이었고, 혼인 말을 할 때에도 학력을 약간씩 높여 말하기도 하였으며,

취직을 하려면 이력서에 그럴싸한 학력을 써 넣는 것이 흔한 일이었다.

학력을 허위로 기재하는 것은 잘못이지만 그 시절은 그러러니 하고 어느 정도 용인(?)되는 것이 사회적 분위기이기도 하였다.

그 시절의 이야기 몇 가지를 적어본다.

 

1. 학력 때문에 좌절한 국회의원

가난한 농촌에서 태어난 L(1955년생)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중학교를 갈 형편이 못되어

학비가 적게 드는 비인가 사립 중학교인 재건중학교에 다녔다.

청년이 되자 서울로 올라가서 막일을 시작으로 장사 등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숱한 고생을 한 결과 중년에 이르러서는 서울근교 도시에서 작지만 틈실한 기업을 운영하는 사장님이 되었고,

돈을 벌자 더 큰 꿈을 실현코자 시의원에 출마하여 당선하였다.

그런데 학력 란에 국졸이라 쓰기도 그렇고 비인가중학교졸업을 쓰기도 그래서

고향인근의 ○○농업고등학교를 졸업했다고 써 넣었다.

다음엔 도의원에 도전하여 당선하였는데 학력 란은 여전히 ○○농업고등학교졸업이었다.

그의 꿈은 거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2000 년대 초 그는 국회위원선거에 출마하여 당선의 영광을 안았다.

역시 학력 란의 농고졸업기록을 유지한 채.....

그러나 그 영광은 잠시였다 학력허위기재가 탄로나 당선무효가 되었다.

 

전국의 선량들이 모인 국회에서 이름도 알려있지 않은 시골 면단위 농고를 나왔다고 하면 무슨 명예라고

그걸 속였을까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지만 그거라도 써 넣은 L씨의 심정을 이해하고 싶다.

불우한 환경을 딛고 자수성가한 그의 노력을 장하게 여겨

한번쯤 눈감아주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마음은 비단 나 혼자 만의 생각일까?

 

2. 학력을 속인 공무원

G(1943년생)는 중학교를 졸업한 후 노력하여 지방공무원시험에 합격. 공직에 입문하였다.

성실하게 일한 결과 능력을 인정받아 군청(郡廳)을 거쳐 도청(道廳)까지 영전하는 등 승승장구하였다.

그는 근무하면서 인사기록카드의 학력 란에 중졸이라 쓰기가 창피하여

고향면()의 이름을 붙인 ○○고등학교졸업이라고 있지도 않은 학교 이름을 넣었고

그 기록은 그대로 2십 여 년을 아무 탈 없이 유지하였다.

도청에서 사무관까지 승진한 그는 1990년대 초 서기관 승진요원으로 지역의 작은 도시(市廳)로 전근하였다.

문제는 서기관의 발령이었다.

지금은 지자체의 서기관도 해당 지자체장이 발령하지만

당시에는 서기관 이상의 승진발령은 중앙부서인 내무부에서 하도록 되어 있었고

업무처리과정에서 허위 학력게재가 탄로 난 것이었다.

 

G씨는 저학력이라는 핸디캡 [handicap]을 안고,

한다하는 고학력자들과 경쟁하며 나름대로 선전하여 승진과 영전을 거듭한 공무원사회의 입지전적 인물이었다.

그 과정에서 자존심 상하는 일은 얼마나 많았었고 자괴감은 또 얼마나 많이 들었을까?

못 배운 일이 자신의 잘못이 아닌데도...........

 

3. 학력허위게재로 떨어진 취직시험

농촌출신인 Y청년(1975년생)은 서울의 대학교에서 전산관련분야를 전공했고,

대기업에서 3년 정도 실무를 경험한 IT전문가로 2003년경 국정원에서 모집하는 전산분야 특수직에 응모하였다.

서류심사, 시험, 면접 등 소정의 절차를 성공적으로 통과하고 최종합격자 발표만 남아있었다.

그런데 그는 가족이력 란에 부모를 비롯한 삼촌 등의 학력을 게재하면서

일부 국졸 또는 중졸인 가족의 학력 란에 고졸이라고 적어 넣었던 것이다.

국정원은 특성상 가족들의 신원조회가 세밀한바, 사실조회에서 이를 발견한 국정원은 불합격처리하였다.

 

Y청년 역시 시골출신으로 서울의 인텔리들 속에서 자신의 기술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기회를

가족들의 학력을 허위로 기재한 때문에 아깝게 놓쳐버린 안타까운 사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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