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의 영전에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나셨다. 가난한 가정의 장남으로 태어나서 설상가상(雪上加霜), 아버지까지 일찍 여의고 조물조물한 6명 아우와 홀어머니를 책임져야 했던 20세 가장, 그야말로 눈앞이 캄캄하고 어찌해야 할지 모를 난감한 상황에서 형님의 절망감은 어떠하셨을까? 또 남몰래 흘린 눈물은 얼마나 되었을까? 당장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줄줄이 커나는 아우들의 앞길을 열어 줘야 한다는 중압 감까지. . . 군 생활하는 동안의 안절부절, 제대후엔 객지에서 박봉의 공직생활하는 어려움속서도 고향집에 대한 생활비지원과 아우들 앞날 걱정을 한시도 놓을 수가 없어 신혼의 달콤함마저도 느낄 겨를조차 없이 삶에 허덕여야 했던 형님, 그렇게 노심초사(勞心焦思) 노력하신 형님의 뒷받침 덕분에 아우 중 1명은 공무원이 되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