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는 강점기시절 토지 일제조사에 이어 산미증식계획을 추진하여 농촌이 어려움에 처하자 1930년대에는 농촌진흥운동으로 농민들의 불만을 가라앉히고자 했다. 그 일환으로 1931년 5월 충남도에서는 보령에 農蠶學校를 세울 계획으로 5,650원의 주민부담금을 준비하면 학교를 한곳 지어주겠다고 하였다. 이에 대천, 웅천, 청라 세 곳에 비용부담을 제시하였으나 세 곳은 경비 조달이 어려워 포기하였고, 주산면장을 중심으로 기성회를 조직하여 주민들이 기부금을 모금하였던 바 황률리 任敬淳씨가 2,100원, 야룡리 尙利鉉씨가 2,000원, 금암리 任世準씨가 1,000원을 선뜻 내어놓으니 유지들이 앞다투어 기부금을 내어놓은 결과 5,660원이 모아져 웅천금융조합에 예치하고 충남도청에 농잠학교 설립을 요구하여 마침내 주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