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인 이야기/군화발자국

유격훈련(軍 일기)

구슬뫼 2017. 9. 18. 20:32

군인이라면 누구나 1년에 한번씩 반드시 받음이 원칙으로 되어 있는

유격훈련을 내가 받을 차례가 돌아왔다.

작년에 한번 받아 본 경험이 있기에 자신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그래도 만 4일간의 훈련을 생각할 때 은근히 걱정되어 하교대로 향하는 마음은 마냥 긴장되었다.

작년과 달리 가던 날 저녁부터 집합하여 연병장에서 훈련에 임했다.

아마도 유격훈련병들의 정신상태를 처음부터 완전 통일시키자는 심산이리라.

비는 구질구질 오는데 구보로부터 시작, 오리걸음, 토끼뜀, 낮은 포복, 높은 포복, 올챙이 포복 등

기압의 연속으로 엮어지는 그들의 군기를 잡기 위한 계획은

우리를 완전 인간이하의 하등동물로 취급하고 있었다.

땀과 비와 흙으로 투성이가 되기 약 2시간만에 올뺌이 넘버를 받고 취침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잠자리마저 비가 새는 천막에서 물을 피해 자리를 잡는 형편,

그야말로 며칠간의 고생이 시작되었다.

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

너희들은 인간이 아니다. 올뺌이다.

올뺑이란 가장 신사적인 행동을 하며 가장 비신사적인 대우를 받는 것이 바로 올뺌이다.

조교들의 말이 귓가를 아프게 스친다.

궂은 비 속을 뚫고 구보하는 올뺌이들.

닥치는대로 기압과 호령과 구타를 가하는 조교들.

그야말로 피땀어린 훈련이 계속된다.

빗물인지 땀인지 분간 못할  물이 작업복을 적신다.

이마에서 흐르는 소금물이 눈에 따겁다.

자동차길 복판에 포복하는 팔굼치와 무릎이 피날뜻이 아프다.

쓰러질듯 지친몸을 이끌며 반화점까지 도착한 우리에게 10분간의 휴식.

와!  물이다. 냇물속으로 그대로 뛰어들어 사정없이 물을 들이켰다.

이 물맛 그 무엇과 비교하랴?

물을 떠나 잠시도 살기 어렵다는게 새삼 느껴진다.

이 더러운 물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이 갈증,

얘기로만 전해들은 전쟁터에서 목마른 병사가 해골에 고인 물을 먹는다는 말을 이해 할만 하다.

잘못 생각하면 흡사 그 옛날 노예나 생지옥 같은 연상이 드는 이 훈련광경을

군대를 모르는 고향의 늙으신 부모나 아니면 누나, 혹은 애인이 본다면 아연실색할 것이다.

그러나 불의 시련속에 강철이 탄생하듯

이러한 훈련의 시련으로 인해 강철같은 군의 육성이 이뤄진다는 신념이기에

우리는 비록 육체는 고될 망정 마음만은 가볍고

렇기에 불평없이 훈련에 임할 수 있는 것이다

1969.8월초


'일반적인 이야기 > 군화발자국'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우애가 아쉽다(軍 일기)  (0) 2017.09.21
심리의 모순(軍 일기)  (0) 2017.09.20
친우에게 보내는 편지(軍 일기)  (0) 2017.09.17
달 착륙하던 날(軍 일기)  (0) 2017.09.16
장마(軍 일기)  (0) 2017.0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