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 명언

열국지7

구슬뫼 2024. 9. 21. 13:54

열국지7

얼마 후 공손건이 잠시 자리를 뜨자, 여불위는 얼른 자초에게 자기 집 약도를 그린 종이를 건네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전하께 긴히 여쭙고 싶은 말씀이 있사오니, 조만간 저의 집으로 한 번 놀러 와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 "

자초는 아무런 대답도 없이 여불위가 건네 준 종이를 들여다보며 고개만 묵묵히 끄덕였다.

 

여불위의 집은 조나라의 국도(國都)인 한단에서도 번화가에 있는 호화 주택이었다.

여불위는 집으로 돌아온 그날부터, ()나라 왕실(王室)의 내막을 소상하게 알아보았다.

진나라의 현왕(現王)인 소양왕(昭襄王)은 병중에 있어서, 오래되지 않아 죽게 될 형편이었다.

그가 죽게 되면 태자(太子)인 안국군(安國君)이 왕위를 물려받게 될텐데, 태자에게는 여러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아들이 무려, 스물세 명이나 있었고, 자초는 그중의 한 명이었다.

그러나 정작 태자비(太子妃)인 화양 부인(華陽婦人)의 몸에서 태어난 적통(嫡統) 은 하나도

없었으므로, 후일 안국군 이후, 스물세 명의 서자(庶子) 중에서 누가 왕통(王統)을 계승하게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옳거니, 이제 되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자초를 손아귀에 넣어 가지고, 그를 적사자(嫡嗣子)로 만들어 왕위를 물려 받게 하면, 나는 대번에 진나라의 중신이 될 수 있을 게 아닌가?)

 

진 왕실의 유동적인 상태가 여불위에게는 크게 고무적(鼓舞的)이었다.

활약 여하에 따라서는 자초를 왕통 계승자로 만들 수 있는 소지가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자초를 그렇게 만드는 데는 몇 가지 불리한 조건도 있었다.

첫째는, 자초의 생모는 자초를 낳은 뒤 태자에게 미움을 사서 대궐 밖으로 쫒겨 났다는 사실이었고,

둘째는 자초 자신이 이곳, 조나라에 볼모로 잡혀 와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런 정도로 실망할 여불위는 아니었다.

(객줏집에서 만났던 70객 노인은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목표를 가지고 노력 여하에 따라서, 세상에 전혀 불가능한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여불위는 마음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자초가 자기 집에 찾아와 주기만 학수고대 하고 있었다.

자초가 여불위의 집으로 찾아온 것은, 그로부터 10여 일이 지난 후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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