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지 11
그러자 안국군과 화양 부인 내외는 약속이나 한 듯이 여불위에게 사정하듯 말했다. "그대가 자초를 그처럼 도와주고 있다니, 이왕이면 그 애를 본국으로 데려다 줄 수는 없겠소? 만약 그렇게 해 준다면 그 은공은 결코 잊지 않을 것이오." 여불위는 한참 동안 생각해 보는 듯하다가 아뢰었다.
"자초 공자를 구출해올 방도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생명의 위험이 따르옵니다. 그러므로 자초 공자를 구출 해다가 무겁게 쓰실거면 모르거니와 그렇지 않을 바에는 깨끗이 단념하시는 것이 좋으실 것이옵니다." 그 말을 듣고 양천군이 즉석에서 반문하였다. "무겁게 쓴다는 말은 무엇을 뜻하는 말이오 ?"
여불위가 대답했다. "무겁게 쓰신다는 말씀은, 자초 공자를 구출한 다음 적사자로 삼으시겠다는 뜻을 말씀드린 것이 옵니다. 그처럼 무겁게 쓰실 생각이 없으시다면, 막대한 재물과 목숨을 건 모험을 무릅써가며 무리하게 구출해 오실 필요가 없을 것이옵니다."
그 말이 나오자 양천군이 화양 부인을 바라보며 묻는다. "누님께서는 친아들이 없으신 관계로 어차피 누군가를 적사자로 선정해 놓으셔야 할 형편이오니, 이왕이면 효성이 지극한 자초를 적사자로 결정하시는 것이 어떠하시겠습니까? "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화양 부인은 남편인 안국군에게 말한다. "이 기회에 자초를 적사자로 삼아, 장차 그 애로 하여금 왕통(王統)을 계승하게 하면 어떠하겠나이까?"
안국군은 자초에 대한 애정이 새삼스러운 지라 즉석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자초는 본디 영민한 아이니까 부인의 말씀대로 하는 것이 좋을 것 같구려.
그리고 이번에는 여불위에게 말한다. "자초를 데려다 주기만 하면 그 애를 적사자로 삼을 터인즉, 수고스러운 대로 그대가 그 애를 꼭 좀 구출해주시오." 그러나 여불위는 경솔하게 응낙하지 않았다.
"자초 공자를 기어이 적사자로 삼으시겠다면, 제가 사재(私財)를 다 털어서라도 모셔 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증표(證標)도 없이 무엇을 믿고 그런 모험을 감행할 수 있겠사옵니까?" 화양 부인은 그 말을 듣자마자 자신의 머리에 꽂혀 있는 옥비녀를 뽑더니 그 옥비녀를 둘로 부러뜨려 그 중에 하나를 여불위에게 내밀며 말했다.
"우리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면 내 옥비녀의 반쪽을 증표로 드릴 것이니, 어떤 일이 있어도 자초를 구출 해다 주시오. 내 태자비의 몸으로 평소에 애용하던 옥비녀의 반쪽을 증표로 드렸으니, 어찌 후일에 모르겠노라 할 수 있으리오."
여불위는 두 번 절을 하고 증표를 두 손으로 받아들며 말한다.
"황공하옵신 말씀에 감동할 따름입니다. 소생 여불위, 신명을 받쳐 기필코 4~5년 안으로 자초 공자를 모셔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자초 공자를 모셔 오기 전에 한 가지 부탁 말씀이 있사옵니다."
이번에는 안국군이 물었다. "그것이 무엇이오?"
"자초 공자를 모셔오게 되면 미리 알려 드릴 것이오니, 그때에는 국경 지대(國境地帶)에 자초 공자를 호위할 군사를 미리 대기시켜 주시옵소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국경을 무시히 넘어오기 어려울지 모르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소. 미리 알려 주기만 하면 군사는 충분히 대기시켜 놓을 테니, 행여 실수가 없도록 만전을 기해 주기 바라오."
그리고 안국군은 여불위에게 많은 금품까지 내려 주었다.
이리하여 여불위가 진나라를 방문한 1단계 큰 목표는 성공적으로 달성되었다.
列國誌 12: 呂不韋의 可恐할 사람장사
(진시황 출생의 비밀)
呂不韋는 秦나라에서 돌아오자, 子楚를 만나기 위해 公孫乾 장군의 집으로 찾아갔다. 공손건 장군을 만나자, 미리 준비해 간 玉帶 일조(一條)를 내밀며 말했다.
"그동안 이 나라 저 나라를 다니던 중에 진귀한 옥대가 눈에 띄어 장군님께 매우 잘 어울릴 것 같아 선물로 가져 왔사옵니다. 마음에 드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공손건은 옥대를 보고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이런 희귀한 물건을 어디서 구해 왔는가? 이것의 값을 얼마나 쳐 드리면 좋겠는가?" "값이라니요. 무슨 말씀을 그리하시옵니까? 이것은 장군전에 선물로 가져 온 제 誠意이오니, 행여 돈 얘기일 랑 다시는 하지 마시옵소서."
"아니... 이렇게 번번이 신세를 져서야 되겠는가? 하하하!.." "친분으로 드리는 선물인데 돈 말씀을 하시면 너무 섭섭하옵니다." "그런가? 그렇다면 자네의 신세는 후일, 다른 방도로 갚기로 하겠네." 공손건은 여불위에게 주연을 베풀면서, 그 자리에 子楚까지 불러들였다. 여불위는 자초에게 술을 권하면서 말했다. "공자께서는 심심하실 때는 저희 집에도 가끔 놀러와 주시옵소서. 다른 것은 몰라도 술만은 얼마든지 대접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공손건에게 "공자께서 저희 집에 가끔 놀러 오셔도 괜찮겠지요?"하고 물어보았다.
"암, 괜찮고말고. 자초가 여부호(呂富豪) 댁에 놀러 가는 것을 어느 누가 말리겠는가?" 이렇게 여불위는 자초를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길을 터놓았다.
자초가 여불위를 찾아 온 것은 그로부터 2, 3일 후의 일이었다. 여불위는 그동안 秦나라에 다녀온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주고 나서 "안국군과 화양 부인께서는 殿下를 적사자(嫡嗣子: 적통을 이어받는 왕세자)로 삼기로 결정하시고, 증표로 玉符까지 보내 주셨습니다. 이제는 전하께오서 고국으로 돌아가시는 일만 남았을 뿐이옵니다." 말하고 화양 부인으로부터 받아온 옥부를 건네주었다. 자초는 옥부를 받아 들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呂 大人께서 나를 고국으로 돌려보내 줄 수는 없겠소?" "허락을 받고 돌아가신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옵니다. 기필코 돌아가시려면 결국은 탈출을 감행할 수밖에 없을 것이옵니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고국에 돌아가게만 해 준다면, 그 은공은 평생을 두고 잊지 않겠소. 아니, 그 보다도 여 대인도 아예 나와 함께 진나라로 같이 가면 어떻겠소?" "전하께서 탈출하신다면, 응당 제가 직접 모시고 떠나야할 것 이옵니다. 그러나 탈출을 하자면 준비도 준비지만 잘못되면 목숨을 잃을 각오까지 되어 있어야 함이 문제이옵니다."
여불위는 이미 탈출할 것을 결심하고 있으면서도 생색을 내기 위해 의식적으로 주저하는 빛을 보였다. 그러자 자초는 여불위의 두 손을 힘차게 움켜잡으며 애원하듯 호소하였다.
"여 대인의 도움이 없다면, 나 혼자서 무슨 재주로 국경을 넘어 탈출하겠소? 원컨데 여 대인이 나와 생사를 같이 할 마음으로 나의 고국, 진나라로 탈출합시다. 거듭 말하거니와 여 대인의 은공은 죽을 때까지 잊지 않을 것이오."
여불위는 짐짓 심사숙고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난 후, 결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좋습니다. 사내대장부가 의리를 위해 어찌 죽음인들 두려워하겠습니까? 그러면 오늘부터 탈출 계획을 세우도록 하겠습니다. 탈출을 하자면 준비 기간이 적어도 2, 3년은 걸려야 할 것입니다. 전하는 그렇게 아시고, 모든 것을 저에게 맡겨주시되 정보 교환은 수시로 해야 하오니 이제부터는 저희 집에 자주 오시도록 하시옵소서."
열국지 13
자초는 그때부터 여불위의 집에 자주 드나들게 되었다. 여불위는 그때마다 주연을 베풀어 주고, 애첩 주희로 하여금 자초를 접대하게 하면서 "너는 나와의 관계를 일체 비밀에 붙이고, 무슨 재주를 부리든 간에 자초의 환심을 사도록 하여라."하고 단단히 일렀다.
자초는 20 세가 넘었지만 아직 여자를 모르는 숫총각이었다. 이런 숫총각이 보기 드문 미인 주희를 자주 보게 되니 처음 만날 때부터 주희에게 홀딱 빠져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초는 주희와 1년 가까이 접촉하고 나더니 타오르는 연정을 억제할 수가 없는지, 하루는 여불위에게 이렇게 물었다. "여 대인! 주희는 본색이 어떤 낭자요?" 여불위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주희는 초나라에 있던 제 친구의 딸이옵니다. 친구 내외가 모두 세상을 일찍 떠났기 때문에 제가 양녀로 데려왔사옵니다." "가문은 어떤 집안이오?"
"부모가 없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지, 나무랄 데 없는 가문입니다."
그러자 자초는 얼굴을 붉히면서 말한다. "그렇다면... 여 대인이 나와 주희의 혼인을 주선해 주실 수는 없겠소?" "옛...? 전하께오서 주희와 결혼을 하고 싶으시다고요?" "나도 이제는 20이 넘어서 이제 혼인을 해야 할 나이요. 하긴 결혼을 하자면 공손건 장군의 허락을 받아야만 하겠지만..." "그런 허락이야 제가 나서면 문제가 될 것은 없겠사옵니다만... 전하께서는 주희가 그렇게 마음에 드시옵니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찌 결혼을 하겠다고 하겠소. 여 대인이 꼭 좀 성사될 수 있도록 해주시오." "알겠습니다. 전하를 위하는 일이라면 제가 무슨 일인들 못하겠습니까?" 여불위는 주희를 다른 사내의 품에 안겨주는 것은 무척 아까웠지만, 큰일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그 정도의 미련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날 밤 여불위는 이불 속에서 주희와 뜨거운 운우지정을 나누면서...
"주희야, 자초가 너와 결혼을 하고 싶다고 하니 그와 혼인을 해야겠구나."
하고 솔직하게 털어 놓았다. 그러자 주희는 단번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것은 아니 되옵니다." "안 되다니? 뭐가 어째서 안 되겠다는 말이냐?" "소녀는 대인의 어엿한 소실이온데, 어찌 다른 남자와 혼인을 합니까?" 여불위는 주희의 토실토실한 엉덩이를 정겹게 토닥이면서 말을 이어갔다. "네가 나에게 정이 단단히 든 모양이구나 하하하 ....그러나 자초 공자에게 혼인 승낙을 이미 해 버렸으니, 너는 자초와 결혼을 해야 만 한다. 그리고 내가 보고 싶으면 결혼 후에도 우리 둘이 은밀히 만나면 될 게 아니냐?" 여불위는 주희의 빼어난 몸에 너무도 미련이 많았기에 이런 말까지 하게 되었다. 그래도 주희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래도 안 되옵니다." "이 못난 것아! 자초와 결혼하면 , 너는 머지않은 훗날에는 진나라의 국모가 될 판인데, 그래도 싫다는 말이냐?"
그러자 주희는 가슴을 파고들며, 울먹이는 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대인께서는 아직 모르고 계시지만, 소첩은 이미 누구와도 결혼을 할 수 없게 된 몸이옵니다."
"결혼을 할 수 없게 된 몸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냐?" "소첩은 지금 임신 중이옵니다." "뭐야?!.. 네가 아이를 가졌다고?" "네, 이달에 있어야 할 달걸이를 못 보았사옵니다."
여불위는 '임신'이라는 소리에 기절초풍을 하듯 놀랐다. 임신 중이라면 다른 남자와 결혼할 수
없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아뿔사!.. 큰일을 성사시키려는 중요한 순간에 생각지도 못한 일이 생겼구나!) 여불위는 일순간 탄식했다. 그러나,..그 정도의 일로 낙담할 여불위가 아니었다. 다음 순간 그는 이런 생각을 하였다. (주희가 임신한 사실을 감추고 자초와 결혼을 하게 되면, 머지않아 자초의 아들이 아닌 내 아들이 진나라의 왕위를 계승하게 될 것이 아닌가? 그렇게 되면 실질적으로는 내가 진나라의 태왕 되는 것이고!...)
열국지 14
생각이 이에 이르자 여불위는 주희를 설득하기 시작하였다.
"네가 임신한 사실을 아는 사람은 너와 나만이 아니냐? 그러니 임신한 사실을 감추고 자초와 결혼을 하게 되면 너는 후일에 왕후가 될 것이고, 지금 네 뱃속에 있는 우리들의 아이는 장차 진나라의 대왕이 될 것이 아니겠느냐? 게다가 너와 나의 관계는 비밀리에 계속 이어질 것이니 세상에 이런 횡재가 어디 있는데 결혼을 못하겠다는 것이냐?"
여불위의 능란한 설득에 주희는 마침내 마음이 움직이는 듯 보였다.
그러나 여자의 소심함 때문인지, 주희는 이렇게 반문했다. "아들을 낳으면 그렇게 되겠지만, 만약 딸을 낳으면 어떻게 되옵니까?" 여불위는 어처구니없는 질문에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이것아! 우리가 진나라를 통째로 먹으려면 네가 반드시 아들을 낳아 줘야만 하겠지만, 설사 딸을 낳아도 손해 볼 것은 없지 않으냐! 아들이든 딸이든 너는 진나라의 국모가 될 것이고, 내가 너의 정부인 것은 확실한 일이 아니냐! 그러니 아무 소리 말고 시키는 대로 자초와 결혼하란 말이다." "대인께서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주희와의 밀약이 성립되자, 여불위는 다음날 공손건을 만나 자초와 주희의 결혼을 허락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 "그대의 양녀를 자초와 결혼시키고 싶다면 내 어찌 그것을 반대하겠는가? 염려 말고 결혼시키도록 하게."
공손건은 많은 뇌물을 받아먹은 과거도 있는데다가 자초가 가정을 꾸리고 정착을 하게 되면 지금같이 적국의 왕자를 볼모로 잡아 두고 감시를 해야 하는 자신도 보다 자유롭게 될 것으로 판단하였다. 자초는 결혼 승낙 소식에 뛸 듯이 기뻐하였다. "여 대인 덕택에 내가 주희에게 장가를 들게 되었으니, 이런 고마운 일이 없소이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제가 아니었으면 전하께서 장가드시기가 매우 어려웠을 것이옵니다."
여불위는 이같이 생색을 내면서 혼례식 준비를 부랴부랴 서둘렀다.
그리고 결혼식을 내일로 앞둔 마지막 밤에도 여불위는 주희를 찾아 뜨거운 열락을 즐기며 "자초와 결혼한 뒤에도 임신한 사실을 절대로 눈치 채지 못하도록 해야 하고, 어느 정도 배가 불러올 때쯤 알게 하여야 한다."며 신신 당부하기를 잊지 않았다.
"염려 마세요. 절대로 눈치 채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그 대신 대인에게 부탁이 하나 있사옵니다." "무슨 부탁이냐?" "앞으로도 우리가 비밀리에 만나자는 약속만은 꼭 잊지 말아 주세요." "하하하, 그것은 내가 하고 싶은 얘기니까, 그 점은 염려하지 말아라" 여불위는 주희와의 굳은 언약을 나누고, 언제 다시 만나게 될 지도 모르는 주희의 몸을 아까운 마음을 감추며 밤이 새도록 탐닉했다.
다음 날 아침, 여불위는 미리 준비한 대로 자초와 주희의 결혼식을 성대하게 올려 주었다.
자초는 절세미인과 결혼하게 된 것을 어쩔 줄을 모르게 기뻐하였다. 더구나 결혼식을 치룬 두 달쯤 뒤에 주희가, "전하! 소첩은 전하의 아이를 배었사옵니다."하고 임신 소식을 알리자, 자초가 춤을 덩실덩실 추워 가면서 "오오! 하늘이 우리 두 사람에게 아기를 점지해 주셨구려!"하고 하늘을 우러러 축수까지 올렸다.
뱃속의 아이는 날이 갈수록 거침없이 자라서 이듬해 정월 초하룻날, 주희는 조나라 국도인 한단에서 옥동자를 낳았다. 아이의 이름은 정(政)으로 하였고, 아이는 뱃속에서 나올 때부터 눈을 커다랗게 뜨고 나왔으며, 이마가 번듯하고 이빨까지 나 있었는데, 이 아이가 후일에 천하 통일의 위업을 이룩한 불세출의 영웅 대진제국의 진시황(秦始皇)이었던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