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지 6 : 진(晋)의 왕손 子楚
그로부터 이틀 후, 여불위는 진나라의 왕손인 자초(子楚)를 만나 보기 위한 구실로 태산 명옥(太山名玉) 한 쌍을 선물로 들고, 대장군 공손건의 집을 찾았다.
공손건은 여불위를 반갑게 맞으면서 말했다.
"그동안 어디를 갔었기에 얼굴을 보기가 그렇게도 어려웠나?"
"장사차 이 나라 저 나라를 돌아다니다 보니, 장군님께 자주 문안을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그러면서 가지고 온 太山 名鈺 한 쌍을 두 손으로 받들어 올리며 말했다.
"이것은 초나라에서 어렵게 구해 온 명옥이온데, 빛깔과 광채가 영롱한 구슬이옵니다.
장군전에 선물로 가져왔으니 취하여 주시옵소서."
공손건은 명옥을 이리 저리 살펴보더니 만족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 사람아! 자네와 나 사이에 뭐 이런 것을..."
하며, 이내 술상을 내오게 했다. 여불위는 술이 몇 순배 돌아가자 공손건에게 짐짓, 거짓말을 꾸며서 물어 보았다. "조금 전에 장군댁으로 들어오다가 문간에서 낯선 청년 하나를 만났사온데, 그 청년은 누구이옵니까?" 공손건은 일순, 어리둥절하다가 금세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아, 자초를 만났던 모양이구만." "자초요....? 자초가 누구이옵니까?" "그 청년은 진나라 왕손인데, 우리나라에 볼모로 잡혀 와서, 지금은 내 집에 유숙하고 있다네."
"진나라 왕손이라면, 저도 한 번 만나 볼 수 없겠습니까?"
"그건 어렵지 않은 일일세. 지금 곧 이리로 불러올 테니, 만나 보도록 하게."
공손건이 하인에게 일러 자초를 불렀는데, 방안으로 들어오는 20세가량의 자초는 체격은
왜소해 보였으나 얼굴이 맑고 눈동자가 또렷한, 제법 똑똑하게 생긴 청년이었다.
자초는 볼모로 잡혀온 처지인지라 행색이 초췌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런 모습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순간, 자초의 행색과 얼굴을 살펴 본 여불위는,
(이만한 청년이라면 <사람 장사>를 한 번 시작해보아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자초에게 술잔을 공손히 내밀었다.
"전하께 술 한 잔 올리겠습니다." 잠깐, 아주 잠깐, 여불위의 <전하>라는 호칭에 몸을 <꿈틀>하고 반응한 자초는 금세 평온한 얼굴로 "고맙소!"하고 술잔을 받아 스스럼없이 마셨다.
공손건은 그 광경을 보고 "이 사람아! 천하의 거상(巨商)인 자네가 볼모로 잡혀 와 있는 청년에게 그토록 머리를 숙일 건 없지 않은가?"
"아니옵니다. 아무리 연배가 어리셔도 大國의 王孫에 대한 예의만은 분명하게 지켜야 할 것이옵니다."
여불위가 이렇게 말을 하자 자초는 제법 근엄한 낯빛으로 여불위를 다시 한 번 쳐다보았다.
적국에 볼모로 잡혀와 운신(運身)이 자유롭지 못한 처지의 자초로서는 여불위의 깍듯한 공대(恭待)를 고마워할 것이기에, 여불위는 그런 사정을 십분 이용하여 자초를 깍듯이 받들어 모셨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