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분야/진단

선거와 신분증

구슬뫼 2018. 12. 18. 10:21

공직에 있을 때 투표종사원으로 선발되어 투표소에 근무를 한 일이 여러 번 있었다.

선거관련법에 의하면 투표를 하려면 신분증을 가지고 가야한다.

투표종사원들은 투표하려는 사람의 신분증을 확인하여 본인임이 인정되면 선거인 명부에 체크를 한 다음

투표용지를 주어 선거를 할 수 있게 하였다.

 

그러나 깜빡 잊고 신분증을 가지고 오지 않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시골에서는 집과 투표소까지 3km 이상 떨어진 경우도 있어 집까지 되돌아가서 신분증을 가져오라고 하기는 곤란하였다.

특히 나이가 많아 거동이 불편한 경우, 아니면 비가 와서 다녀오기 불편한 때는 더욱 그러하였다.

 

시골이기 때문에 투표종사원 대부분 그 지역에 근무하는 공직자와 이장들로 위촉이 되고

그래서 주민들을 거의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신분증이 없어도 투표종사원 중 한사람이라도 확실히 신분을 아는 사람이라면 투표를 시켜야 하는 게 옳지 않겠는가?

왜냐하면 신분증이란 투표권이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증명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 본인인가 아닌가를 판단하는 증명서이니까....

 

투표소에는 각 정당(政黨)에서 나온 참관인들이 있는데

그들은 상대당 후보를 찍을 것이 예상되는 주민은 신분증이 없으면 절대 투표할 수 없다고 버티고,

투표종사원 중에도 법은 법이다, 법대로 해야 한다.”며 신분증이 없으면 투표를 시킬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었다.

실랑이 끝에 상대성이 없는 경우 또는 참관인이 이해하는 경우에

종사원합의하에 선거를 시키기도 했지만 끝까지 못시키는 경우도 있었다.


 

들은 바에 의하면 미국 등 일부 선진국에서는 투표소에 도저히 갈 수 없는 상황에 처했을 경우

투표소에 전화하여 투표종사원에게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나는 몇 번 어떤 후보를 지지하니 당신이 대신 찍어서 투표함에 넣어달라고 부탁하면 그대로 이행하였다고 한다.

요즈음은 전자투표라는 제도가 있어 멀리서도 투표를 할 수 있도록 바뀌었기에

이런 옛날 선진국의 예는 시대에 맞지 않는 이야기이지만 아무튼 발달한 민주사회라면 이럴 수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선거와 신분증의 이야기는 극히 일부의 예()일 뿐이다.

수많은 법속에 살아가면서 법 때문에 합리적인 일처리를 못하거나 생활에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수월찮게 있다.

사람이 만든 법에 사람이 발목을 잡히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법적용에 있어 보다 합목적적이고 신축성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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