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시절 선생님께서 산중의 왕이라는 호랑이와 동물의 왕이라는 사자의 습성에 대하여 설명한 적이 있었다.
호랑이는 배가 고플 때나 고프지 않을 때나 동물을 보는 대로 잡지만 사자는 배가 고플 때만 동물을 잡아먹고 배가 고프지 않을 때는 동물들이 옆에 와도 잡지 않는다는 것, 사자는 신사적이고 그래서 동물의 왕이라고 한다며 마치 호랑이보다 한수 위라는 듯이 설명했다. 어린 마음에 ‘사자는 신사적이고 호랑이는 그렇지 않구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우리나라에 살고(멸종이라지만) 국민정서 속에 숨 쉬는 호랑이가 비신사적이라니 못내 서운했다.
호랑이는 왜 배가 고플 때나 아닐 때나 가리지 않고 마구잡이로 동물을 잡을까? 그런 의문은 어른이 되어 가정을 책임지고 경제생활을 하면서 풀리게 되었다. 호랑이는 온대지방을 중심으로 시베리아 등 한대지방에 걸쳐 사는 동물이다. 이 지역은 겨울에 추워서 풀들이 말라죽고 나무도 일부(침엽수)를 제외 하고는 모두 앙상하게 된다. 때문에 풀이나 나뭇잎을 먹고사는 동물들은 살기가 어려워 그 수가 제한되어 있고 그 동물을 잡아 먹고사는 호랑이나 육식동물도 먹을 것이 적어 살기가 어렵다. 따라서 먹잇감이 보이기만 하면 무조건 잡아먹고, 먹고 남으면 숨겨 놓아야 한다.
그러나 사자가 사는 열대지방은 사시사철 먹을거리가 풍부하다. 배가 고파 잡으려면 언제나 사냥감이 많다. 따라서 배고프지 않을 때 잡아 놓을 필요가 없다. 미리 잡아 놓아봐야 다른 동물들이 훔쳐가거나 빼앗아 가고, 그러지 않으면 더운 날씨에 썩어서 못 먹게 되는 것을 무엇 때문에 잡아 놓겠는가? 사자는 신사적이고 호랑이는 그렇지 않다는 것은 맞지 않는 말이다. 자원이 풍부한 곳에 사는 동물과 부족한 곳에 사는 동물의 차이일 뿐이다.
우리나라 야생동물들은 사람을 무서워한다. 날짐승이건 길짐승이건 물고기건 먼빛으로 사람이 보이기만 하면 달아나기 바쁘다. 닥치는 대로 잡아먹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 등 서양의 동물들은 산에 사는 짐승이나, 호숫가의 백조나, 강 속의 물고기까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그곳 사람들은 함부로 잡아먹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야생동물을 마구잡이로 잡아먹어 왔으며 서양인들은 그러지 않을까?
우리는 야만스러웠고 서양인들은 문명인이어서 그랬을까? 천만에, 이 역시 자원의 부족과 풍부함에서 나오는 차이이다. 먹을 것이 부족했던 우리 조상들은 먹을 대상이 있으면 식물이건 동물이건 언제고 거두어들이고 잡아야 했다. 그리고 먹고 남으면 저장해 두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굶어야 할지도 모르니까. 그러나 서양인들은 넓고 기름진 땅에 농작물도 넉넉히 가꾸고, 가축도 대단위로 길렀으니 부득이 야생동물을 잡아먹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호랑이를 비신사적이라고 한다거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야생동물을 마구 잡는 짓을 탓하는 것은 그 배경을 깊이 이해 못해 하는 말이다. 수 천 년 동안 자원이 부족한 지역에서 힘들게 살아 온 우리 조상들 . . . 그 어려움을 헤치면서 살아온 그분들이 우리에게 물려준 부지런함, 절약성, 저축성, 경쟁성 등은 눈부신 경제성장의 밑거름이 되어 오늘날 세계 속에 우뚝 선 대한민국으로 거듭나게 해 주지 않았는가? 생우우환 사우안락(生于憂患 死于安樂)이란 말이 있다. 어려운 상황은 사람을 분발하게 하지만 안락한 환경에 처하면 쉽게 죽음에 이른다는 뜻으로 안다. 우리는 어려운 환경에서 줄기차게 노력하여 놀라운 발전을 이룬 데 대한 자부심을 가져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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