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회갑을 맞아 자녀들이 준비한 가족여행으로 말레이시아의 코타키나발루를 다녀왔다.
그동안의 해외여행은 문화탐방이나 관광목적으로 문화유적과 명소를 다녔으나 이번 여행은 여러 곳을 돌아다니지 않고 순수한 휴양여행으로 한 곳에 숙소를 잡아 놓고, 수영을 즐기기도 하고 근처를 돌아다니며 현지 음식을 먹어보는 등 색다른 체험을 해본 여행이었다.
함께 한 사람은 아내와 아들, 딸, 태어 난지 13개월 된 외손녀 그리고 나까지 5명이었고 사위도 같이하기로 계획하였으나 갑자기 직장에 바쁜 일이 생겨 함께하지 못해 못내 서운했다.
2013.3.30.(맑음)
○저녁 20:00에 인천공항을 출발하는 아시아나항공기로 5시간여를 날라 코타키나발루공항에 도착하니 00:35(이하 현지시간, 한국보다 1시간이 늦음, 한국시간은 01:35), 마중 나온 여행사(하나투어)직원의 안내로 미니버스를 타고 예약한 수투라하버(Sutera Harbour) 리조트에 가서 여장을 풀었다. TV를 켜니 KBS월드 방송으로 한국프로가 나와 반가웠다. 이 방송은 뉴스와 아침마당, 그리고 영어로 하는 방송은 실시간 방송이고 나머지는 녹화 방송이라고 하며 KBS월드방송 이외에 특별히 주문을 하면 SBS방송도 시청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 리조트는 호텔식 건물로 된 퍼시픽(Pacific)과 고풍식 건물로 된 마젤란(Magellan)으로 나뉘는데 우리는 마젤란에 들었다. 국왕 등 귀빈들이 묵어가는 곳이라는데 뭐 그리 호화스런 것 같진 않지만 널찍하고 멋있게 가꾸어 놓은 로비, 큼직한 객실, 여러 곳 수영장과 쉴 수 있는 선베드, 클럽룸, 볼링장, 영화관, 테니스장, 휘트니스센터 등 각종 부대시설이 잘되어 있으며 경관이 뛰어난 해변이라서 며칠 쉬기에 알맞은 곳이다.
2013.3.31.(맑음)
○아침식사는 호텔 1층에 있는 식당에서 뷔페식으로 먹었는데 참새와 비둘기들이 창가 부근에
들어와 음식찌꺼기를 주워 먹는다. 그런데 희한하게 그것들이 우리나라 새들보다 몸집이 작았다. 참새는 약간 작지만 비둘기는 1/2밖에 안 되는 것 같다. 아하! 이곳 사람들이 몸집이 작으니까 새들도 작은 모양이로구만 하며 나는 웃었다. 식사 후에 다시 수영장에 나가 물장구치기와 선베드에 누워 있기를 반복하다가 리조트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크고 작은 수영장이 여러 곳이고, 조화롭게 가꾸어 놓은 정원, 조경시설들, 특히 이름 모를 열대 식물들이 가지가지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있다.
○점심을 말레이시아 전통 음식으로 하려고 셔틀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가는 중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볕이 앞자리에 앉은 아내에게 내려쬐는 것을 막고자 커틴의 단추를 풀려 했으나 잘 되지 않는다. 옆에 앉은 40쯤 되었을까 하는 남자가 쉽게 풀러 주기에 “땡큐” 하였더니 “코리아에서 왔느냐”고 묻는다. “예, 당신은 어디에서?” 하고 물으니 “홍콩”이라고 대답한다. “오! 홍콩” 그러나 영어실력이 모자라 더 이상 대화할 수가 없다. 이윽고 시내에 나간 우린 적당한 식당에 들어갔다. 메뉴판을 보아도 뭐가 뭔지 모르기 때문에 이것저것 훑어보다가 4인분을 3가지로 시켰더니 나오는데 보니 2인분은 우리나라의 볶음밥 비슷한 것이었고 1인분은 면 종류에 닭고기를 곁들인 것, 또 1인분은 면 종류에 돼지고기를 곁들인 음식이었다. 식사와 함께 음료수도 4종류로 시켜 서로 조금씩 나누어 마셨다.
식사를 끝내고 밖으로 나오니 멀쩡했던 날씨였는데 갑자기 비가 질척이고 있다.
○다음엔 마사지 업소를 찾아 1시간 30분 동안 말레이시아 전통마사지를 받았는데 안마가 아니고 순수 마사지라서 그런지 별로 시원하지 못해 아쉬웠다. 딸은 아기 때문에 간단한 발마사지만 받았다. 마사지를 마치고 나오니 비는 말끔히 갰고 더위는 한풀 꺾여있다. 이게 바로 스코루인가? 열대지방에서는 가끔씩 스코루라는 비가 내려 더위를 시켜준다는 말을 언젠가 들은 기억이 떠올랐다.
○다음으로 간 곳은 전통야시장이다. 과일 전에 파인애풀을 비롯하여 망고, 구아바, 두리안, 몽키바나나 등, 이름을 아는 과일도 있고 모르는 과일들도 많다. 상인들은 칼로 과일(망고)을 조금씩 베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맛을 보라고 한다. 어떤 곳에서는 무슨 과일인가를 얇게 썰어 작은 비닐봉지에 넣은 다음 그 속에 설탕과 간장을 넣어 파는데 지나는 사람들이 한 봉지씩 사서 들고 다니면서 먹는 게 아닌가, 한 봉지에 2링깃(1링깃은 우리나라 돈으로 360원)을 주고 사서 먹어보니 레몬같이 신맛에 간장까지 곁들여 시큼, 찝찔한 게 별로 입맛에 닿지를 않는다. 그래도 참고 몇 번 먹다보니 신맛이 강해 이빨까지 시큰댐으로 버렸다.
채소전에는 우리나라 채소와 비슷한 것들도 있었고 어물전에는 새우, 바다가재, 조개류와 여러 가지 생선들을 늘어놓고 현장에서 직접 구워 팔고 있다. 우리가 한국 사람인지 어떻게 알아보고 곳곳에서 우리말로 “오징어, 조개 맛있다”라면서 살 것을 권한다. 가격을 물어보니 바다가재를 비롯하여 새우, 게, 조개류 등 갑각류는 가격이 우리나라보다 더 비쌌고 생선 종류는 비슷하거나 약간 싼 편이다. 새우 4마리를 구워 달라고 해서 먹은 후 작은 오징어(꼴뚜기인지) 한 봉지를 사서 굽고, 과일 전에서 망고와 두리안 몽키바나나 등을 사고, 오면서 슈퍼마켓에 들러 맥주와 음료수를 사가지고 숙소로 돌아와 발코니에서 그것들과 함께 미리 준비해 간 ‘햇반’으로 저녁식사를 했다. 두리안이라는 과일은 처음 먹어봤는데 구린내 비슷한 냄새가 나서 나는 별로 먹고 싶지 않았으나 아내는 맛있다고 한다.
2013.4.1.(맑은 뒤 비)
등이 어제보다는 조금 익숙해졌고 스킨스쿠버들이 사용하는 입으로 숨 쉬는 장구(스노클린 장비)를 갖추고 평형을 해보기도 하였다. 수영은 참 어렵다. 자유롭게 수영하는 아들과 아내가 부럽다. 아침식사를 아내와 내가 먼저 하고 아들과 딸이 식사하는 동안 우리는 외손녀를 데리고 호텔로비에서 놀았다. 맨발로 아장아장 걸어 다니다가 바닥이 약간 도톨도톨 한 곳에서 멈칫대며 망설이는 녀석이 우습기도 하고 참 귀엽다. 지나다니는 직원들이나 외국인들도 아기를 보고는 그들의 말로 뭐라고 어르며 지나간다. 아기를 보고 귀엽게 생각하는 것은 국적이나 인종에 관계없이 같은 심정인 것 같다.
식사시간이 끝나고 바닷가 선베드에 가서 누워 시간을 보내는데 바람이 세게 불더니 멀쩡하던 날씨가 갑자기 흐려지면서 비가 내리기 시작하여 숙소로 돌아왔다. 비가 오는데도 수영장에 나가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곳 비는 우리나라처럼 산성비 또는 오염된 비가 아니라 깨끗하여 맞아도 괜찮기 때문에 사람들이 웬만한 비는 맞으며 산다는 가이드의 말이 떠오른다.
○오늘은 아침을 늦게 먹었기에 점심은 생략한 채 호텔객실에서 뒹굴다가 저녁식사를 위해 조금 이른 시간에 시내로 나가는데 비가 제법 많이 내린다. 생선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중국식 식당을 찾아 1kg짜리 생선 1마리와 새우 3마리를 굽고 볶음밥과 함께 식사를 했다. 맥주도 4병을 곁들였다. 식당을 나와 버스 타는 곳으로 이동하는데 ‘한국마트’라는 한글 간판과 태국마크를 내건 가게가 있어 반가웠다.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곳인데 식사 전에 아들이 생선전문 식당을 이 마트에서 묻자 친절하게 길안내를 해주더라고 한다. 거리에서 가끔 삼성이라는 표기를 볼 수 있으나 영어로 되어 있고 간판에서 한글을 찾기란 어렵다. 간판마다 거의 한자를 병기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한자를 병기한 간판이 어찌나 많은지 이곳도 한자문화권이었나 하는 생각을 해 보았으나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중국인들이 이 나라 상권의 90%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한글간판도 늘어났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돌아오는 길에 아내와 딸은 망고를 사고, 아들과 나는 맥주, 와인, 음료수, 과자 등을 사가지고 돌아와 발코니에서 즐겁게 마셨다.
2013.4.2.(맑음)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세수를 하듯 매일 수영장에 나가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오늘도 수영장을 거쳐 아침식사를 마치고 어제와 같이 아기를 데리고 호텔로비로 나가 놀았다. 여직원이 아기를 보고 뭐라고 어르면서 나에게 손과 몸짓으로 아기가 튼튼하게 생겼다며 아들이냐고 물어왔다. 나는 외손녀를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몰라 잠깐 멈칫하다가 “아이앰 그랜더파더”라고 했더니 알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간다. 내가 그녀의 눈엔 어린 아기가 있을 정도로 젊은이로 보이나?
○오늘은 가까운 섬에 나가 보기로 했다. 리조트 앞 선착장에서 동력선으로 20분정도 걸리는 ‘마누틱섬’에 나갔다. 그 섬의 백사장에는 바닷가에 큰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고 있으며 군데군데 나무로 된 탁·의자(탁자와 의자를 붙여 만든 것)를 놓아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면서 해수욕을 즐기고 있다. 우리도 적당한 곳에 자리 잡고 물안경을 끼고 바다에 나가 물속을 들여다보니 손바닥 크기와 비슷한 아름다운 물고기들이 떼 지어 다니고 있다. 한국의 수족관에서 구경했던 형형색색, 줄무늬가 예쁜 열대어들이 손에 잡힐 듯 다가왔다가 잡으려 하면 후다닥 달아나 버리는 그 재미에 사람들이 환호 한다.
그늘을 이루고 있는 나무들은 우리나라의 소나무와 비슷했다. 그러나 잎이 가늘고 10cm이상 길며 열매는 솔방울과 비슷하나 작은 대추만 하고 나무껍질은 느티나무 또는 비듬나무와 닮았다고 할까? 잎을 따서 입에 넣고 씹어보니 맛이 솔잎과 비슷하다. 역시 소나무 종류인 모양이다. 귀국하는 날 가이드에게 물어 봤더니 나무 이름을 ‘아루’라고 부른단다.
우리가 자리한 탁·의자가 길어서 우리가족 양쪽으로 두 팀이 같이 자리를 하였는데 왼쪽에 자리한 부부는 70대로 짐작 되었다. 우리 가족들이 모두 자리를 뜨고 나 혼자일 때 “나는 한국에서 왔습니다.” "당신은 어디서 왔습니까?"라고 물었더니 뉴질랜드란다. 손가락 두 개를 펴 가리키며 “당신들은 부부요?” “우리 는 하나, 둘, 셋, 넷 모두 한 가족이요” 하면서 서툰 영어로 말을 걸었더니 “아기는?” 하고 묻는다. 허- 이거 참 아기는 사람이 아닌가? “아! 아기까지 다섯이군요.”하면서 나도 웃고 그도 웃었다. 영어실력이 딸려 더 이상 대화를 하지 못하고 중단했다. 한편 오른쪽에 자리한 부부는 80대로 짐작되었는데 바다에 나갔다가 얼마 후 돌아왔다. 역시 “나는 대한민국에서 왔습니다. 당신은 어디서 왔습니까?” 말을 걸었더니 무어라 하는데 내가 알 수 없는 나라 이름을 대는 게 아닌가? 내가 못 알아듣고 두어 번 되물으니까 오스트랄리아라고 말한다, 아마 나라 이름이 아닌 지역이름을 댔던 게 아닌가 짐작된다. 그제서 내가 알아들으니 노스? 사우스? 하며 북한이냐 남한이냐고 물었다. 내가 “사우스”라고 답하니 그 노인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최고라는 표정을 짓는다. 호주사람도 우리 대한민국, 그러니까 남한을 대단한 나라로 알아주는구나 하는 생각에 흐뭇했다. 노인은 “아기는 누구냐?”고 물었다. 외손녀라는 말을 알 수 없어 또 “아이앰 그랜드파더”라고 하니 노인은 “자기도 그랜드파더”라고 한다. 역시 영어실력이 모자라 더 이상 대화를 할 수가 없다.
○저녁은 시내의 한 레스토랑에 가서 양고기 스테이크, 소고기 스테이크, 연어훈제, 스파게티, 피자 각 1인분씩 5인분을 시켜 배부르게 먹었다. 기분이 좋아 맥주도 8병이나 마셨다.
어제까지는 시내를 나갈 때나 돌아올 때 리조트에서 운영하는 셔틀버스를 이용하였으나 오늘은 나갈 때 버스시간이 맞지 않아 택시를 이용했고 돌아올 때는 셔틀버스를 기다렸으나 버스가 정류장에 서드니 운전기사가 만원이라서 탈 수가 없다고 해서 택시를 이용해야 했다.
2013.4.3.(맑음)
○아침에 수영장을 다녀와서 식사 후, 아기를 어제 놀던 수영장에 데리고 가니 마구 들어가려고 하여 아내가 데리고 한참을 놀게 해 주었다. 이곳에선 서양인 아기와 만났다. 아기가 제 또래의 아기들을 보면 더 즐거워하는 것 같다. 이곳에서 뿐 아니라 시내를 돌아다닐 때나 식당에 들어가서도 어린 아기만 만나면 큰 관심을 보이며 서로 만지거나 볼을 맛 대 보기도 하는 등 즐거워하는 것이다.
○오늘은 여행 마지막 날, 오후에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관광을 하기로 된 날이다. 아침식사 후 천천히 짐을 싸가지고 12:00 호텔로비로 찾아온 가이드를 따라 다른 여행팀 9명과 함께 여행사에서 준비한 점심식사장소로 이동하였다. 돼지불고기, 오징어볶음(꼴뚜기인지?), 상추쌈, 김치찌개 등 우리나라식의 식사였다. 썩 맛이 좋진 않았지만 그런대로 며칠 만에 먹어보는 한국식 음식이라서 괜찮았다. 아기 이유식을 끓는 물에 넣어 덮여야 하기에 식당에 부탁하자 성의껏 해주었다.
그런데 여행사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또 다른 여행팀이 와서 식사를 한 후 우리와 한 버스로 나머지 여행을 같이 해야 한다는데 그 팀이 도착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들 중 4명이 행불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정보다 1시간이나 늦게 도착한 그 팀이 식사를 하느라 또다시 1시간 가까이 기다렸다. 의왕시에서 왔다고 하며 탁구동호인들이라고 한다. 내가 마침 ‘삼성생명탁구단 서포터즈’라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었으므로 그 팀 중 한 아주머니가 반갑게 인사하며 탁구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행불되었다는 사람들은 끝내 오지 못하고 나머지들만 우리와 함께 관광길에 올랐다.
○오후 처음 찾은 곳은 라텍스체험장, 말하자면 라텍스제품을 팔아보자고 유도하는 곳이었으나 우리가족들은 물론 다른 팀도 이미 라텍스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으며 또한 그들의 상술에 넘어가 사는 사람이 없다. 매장에서도 그러려니 하는 듯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고 쥬스까지 한잔 씩 주면서 편히 쉬다 가라고 한다. 덕분에 모두들 잠시 쉬었고 특히 아기가 앙증맞은 걸음마로 매장 안을 ‘왔다갔다’하며 신나 했다.
○다음에는 UMS(University Malaysia Sabah)라는 대학교 교내를 들어갔다. 1994년에 개교하였다는데 면적이 어찌나 넓은지 학교 내에서도 셔틀버스로 오가야 된다며 면적으로는 세계 10대 대학교 중에 들어간다나? 그리고 학교 내에 커다란 이슬람 성당이 자리하여 기도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학교의 성장이 빨라 머지않아 세계 명문대학교의 대열에 설 거라는데 그거야 어쨌든 대학교 구경이라고 해서 주요시설을 둘러보고 학생들의 수강하는 모습들을 보는 줄 알았는데 교정 한 귀퉁이에서 학교에 대하여 몇 마디 설명한 것이 다란다. 허- 이게 무슨 학교투어란 말인가?
이어서 학교 가장자리에 늘어서 있는 팝나무에 대한 설명이다. 팝나무는 작은 밤톨만 한 열매가 한보따리씩 송이지어 열리는데 한 나무에도 그 열매송이가 여러 개씩 매달려 있으며 검은색 열매가 맺혔다가 익으면 붉어진다고 한다. 이 열매는 가공방법에 따라 식용류도 되고 휘발류와 쓰임새가 비슷한 연료로도 되기 때문에 차세대 대체 연료용으로 전망이 밝다고 한다. 큰 나무 한그루에서 연간 100만 원 정도의 수익이 나온다는데 30여 년 간 수확이 가능하다고 하니 가이드의 설명이 사실이라면 대단한 자원이 아닐 수 없다.
○코타키나발루 시내에 있는 사바 주청사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건축물 중 하나로, 72개면이 유리로 장식되어 있고 30층 규모지만 건물 기둥이 한 개로만 지어진 특수공법을 사용한 건물로서 흡사 로켓트 모형과 비슷하기도 하고 어찌 보면 피사의 사탑 같기도 하다고 설명한다. 이곳은 사바 주 총리 직무실과 청사 사무실로 쓰며 지하에 사바 주의 각종 기록물을 보관한다. 이 건물은 1970년대에 지었다는데 그리고 그때 벌써 말레시아 쿠알라룸푸에는 국제 축구경기장이 있었는데 우리나라는 그 시절에 이런 건물들은 지을 엄두도 못 내고 겨우 보릿고개를 극복하고 잘살기 위한 새마을 운동과 개발의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 우리가 빠른 경제성장으로 세계 속에 우뚝 섰으며 우리보다 잘 살던 이곳 말레시아는 오히려 “대한민국을 따라잡자”는 목표로 우리를 추격하는 처지가 되었다. 어디 그뿐이랴 이곳에도 한류바람이 불어 한국말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하니 생각하면 가슴 뿌듯한 일이다.
이곳도 건물에 다가가 보진 않고 멀리서 사진만 찍는 게 고작이다.
○말레시아는 이슬람국가이다. 이슬람사원이 곳곳에 있고 그 사원에는 탑이 대개 1기씩(사바 주립 사원에도 탑1기) 있는데 중요한 사원에는 4기의 탑이 있다고 하며 국가중요행사는 탑이 4기가 있는 사원에서 행한다고 한다. 이슬람은 향락문화를 금기시하며 돼지고기도 금한다. 이슬람은 세계적으로 확산일로에 있다. 우리나라에도, 미국에도, 그리고 여러 나라에 이슬람 교인들이 증가추세에 있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탑 4기가 있는 어느 사원을 먼 거리에서 바라보며 사진을 찍었다. 대학교도 그렇고, 주청사도 그렇고, 사원도 그렇고, 이게 무슨 관광이란 말인가 바로 주마간산(走馬看山)이로구나 . . .
○다음으로 간 곳은 건강식품 ‘노니(noni)'를 선전하는 곳이다. 마침 일행들이 안내를 받으며 가게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한다. 사바주 직원이라는 한국인 남자가 ’노니‘와 또 한 가지 일명 말레시아의 산삼이라고 한다는 ’통캇알이(tongkat Ali)라는 식물의 효능에 대하여 이러쿵저러쿵 설명을 하는데 노니는 세포를 재생시키고, 몸속 독소를 제거하여 배출시키고, 소장 속 노폐물을 내보내며 통캇알이는 사포닌 성분이 인삼의 30배나 들어 있고 유코민이라는 성분이 있어 혈관을 청소한다는 등 입에 침이 마르도록 구구절절 좋은 효능을 지루할 정도로 긴 시간 설명하였지만 믿는 둥 마는 둥 한사람도 사는 사람은 없다. 밖으로 나오니 비가 한줄기 쫙 내린 다음 그쳐있었다. 아까운 시간만 잡아먹었나 했더니 비를 피하는 시간이 되어 다행이다.
○다음으로 간곳은 초코렛 가게이다. 입구에 초코렛나무가 있는데 신기하게도 가지가 난 부분에 열매가 열려 있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니 갖가지 초코렛을 진열해 놓았고 말레시아 여직원이 간단한 한국말로 “세 개 사면 한 개가 공짜, 맛있어요.”라면서 사기를 권한다. 초코렛으로 사람모형이나 여러 가지 장식을 해 놓은 것도 구경꺼리다. 우리 가족과 함께 버스로 간 사람들은 누구도 사는 사람이 없다.
가이드 하면 생각나는 것 중 하나가 쇼핑이라는 구실로 여기저기 가게에 데리고 가서 물건을 사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구입액의 몇 %인가 챙긴다는 말을 들은 바 있다. 직접 확인한바 없으니 사실 여부야 알 수 없으나 오늘 간 라텍스체험장, 노니 선전한 곳, 초코렛가게, 모두가 그런 곳이었지만 아무도 산 사람이 없으니 가이드는 헛수고를 한 셈이다.
말하자면 ‘아루나무가 있는 바닷가’인데 여기에 영어로 비치라고 해서 바다라는 말이 중복되었다며 우리나라의 외갓집이나 처갓집에 집이 중복되고 역전앞에 앞이 중복되는 것과 같다는 가이드의 설명이다. 고운모래가 끝없이 펼쳐진 백사장, 긴 해변에 아루나무가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곳이다 마침 뉘엿뉘엿 떨어져가는 태양, 그 멋진 저녁노을을 보려고 꽤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다. 우리도 그 풍경 속으로 들어가 사진을 찍고, 모래사장을 거닐고, 바닷물을 손으로 떠 올려보기도 하면서 즐기다가 버스로 돌아왔다.
○저녁식사는 또 다시 우리 가족들만 떨어져 태국식 음식점에 갔다. 밥2인분, 면1인분, 새우1인분을 시켜서 맥주를 곁들여 맛있게 먹은 후 아들과 딸은 기념품을 사러 나가고 아내와 난 한 시간가량 아기를 보며 기다리기로 했는데 아기가 엄마를 찾으며 너무 우는 바람에 아내가 고생이 많았다. 21시에 아들과 딸을 만나기로 한 장소인 ‘스타박스(Starbucks)’라는 가게 앞으로 가는데 중도에 어디인지 잘 모르겠어서 어느 아가씨에게 “웨어리즈 스타벅스?”라고 물으니 그녀는 “오, 스타박스!” 하더니 약 20-30m 따라오면서 알려주고 돌아간다. 외국인인 우리부부에게 친절한 그녀가 참으로 고마워 “땡큐” 하면서 웃어주었다.
○21:30공항에 도착하였는데 비행기 탑승시간은 01:40분, 그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었다. 아무리 휴양여행이라지만 ‘집 나가면 고생’이라는 말이 있듯이 며칠 동안의 여행에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있어 긴 시간을 기다리기 무척 지루하고 힘이 들었다. 마침내 아시아나 비행기에 몸을 싣고 02:00출발하여 인천공항에 내리니 07:35(한국시간)이었다.
여행을 마치고
○ 그동안의 여행은 문화탐방이나 관광여행으로 빼곡한 일정에 여러 곳을 돌아다니다보니 오랜 시간 걷거나 한번에 7-8시간 이상 버스를 타야 하는 등, 힘이 많이 들었다. 그래서 “구경도 젊어서 다녀야지 이제 못 다니겠어, 민요에도 ‘노세노세 젊어서 노세’ 하잖아?”라고 곧잘 입버릇처럼 말하였고 또 “이제 어디 온천 같은 데 가서 푹 쉬다 오는 휴양여행이나 다녀야 해”라고 하기도 하였는데 이번에 꼭 그 말과 같은 휴양여행을 다녀왔다. 휴양여행 또한 또 다른 아쉬움이 생기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아무튼 소원했던 바를 이룬 셈이다. 우리부부는 이번 여행에 돈이 얼마나 들어가는지? 교통편은 어떤지? 여행지 상황은 어떤지? 아무것도 간여치 않고 그저 자녀들이 하자는 대로 여행 가방만 달랑 챙겨가지고 다녀왔다.
저희들의 즐거움이나 편안함은 생각지 않고 오직 부모를 위해 여행을 기획하고, 경비를 대고, 따라다니며 뒤치다꺼리를 열심히 해준 아들과 딸이 정말 고맙다.
○외손녀인 하온이가 이번 여행을 함께 해서 즐거움이 더했다. 그 녀석 때문에 짐도 많아지고 할 일도 많아지고, 시도, 때도 없이 엄마를 찾으며 울어대어 힘들게는 하였지만 그 귀여운 녀석 때문에 가족들이 좀 더 웃을 수 있었고 이래저래 활력소가 되었다. 호텔로비에서 아장아장 걷던 모습이며, 수영장에서 혼자 물장구를 치며 좋아 하던 모습이며, 숨바꼭질을 한답시고 호텔방 이 구석, 저 구석을 돌아다니며 숨는 모습이며, 여행 중 만나는 아기들에게 관심을 보이며 어루만지고 볼을 가져다 비벼보는 모습들, 모두가 가족들에게는 귀엽고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 오랫동안 눈에 선하게 아른거릴 것 같다.
○평소에 영어회화를 좀 더 배워두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컸다. 외국인과 만나면 말문이 꽉 막혀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였다. 아들과 딸이 있으니까 편히 다녔지만 우리부부만이라면 도저히 돌아다닐 용기조차 가질 수 없다. 길을 묻는 것도 그렇지만, 음식집에서 주문을 하면 볶는 방법은 어떻게 할 까요? 기름을 많이 넣을까요? 적게 넣을까요? 소스는 매운 것, 순한 것 중 무엇으로 할까요? 등 한번 주문하는데 서너 가지씩 물어보니 도대체 알아듣기 힘들어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 음식 값을 지불하면서 신용카드를 이용코자 할 때도 내가 알기로는 "이 신용카드를 받습니까?(Do you accept this credit card?)"로 알고 있는데 실제로는 “신용카드를 사용할 수 있습니까?(Can I use credit card?)”로 통용되고 있었다. 몇 번 가진 외국인과의 대화도 간단한 말 이외에는 의사소통을 할 수 없었다. 지금부터라도 부지런히 배우면 다른 사람에게 신세지지 않고 영어로 의사소통하면서 외국여행을 할 수 있는 날이 언젠가 올 수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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