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인 이야기/공직과 관련한 이야기

안개때문에 생긴 일

구슬뫼 2012. 9. 12. 13:13

 

안개 때문에 생긴 일

웅천읍에 근무하던 1996년 봄의 일이다. 성동리에 사는 농민 한분이 누렇게 죽어가는 대파 몇 뿌리와 검은 반점이 수없이 생겨 죽어가는 딸기 몇 포기를 비닐봉지에 싸들고 읍장실을 찾아왔다. 얼굴이 상기되고 숨을 씨근덕거리는 게 상당히 흥분한 상태였다.

 

읍장님, 이것 보시유. 보령댐 땜에 안개가 껴 이렇게 농작물이 죽어 가는디 어떻게 헐거유, ? 말씀 좀 헤봐유. 농사 다 망쳤다니께유.”

보령댐은 그때 공사가 거의 마무리(그해 가을에 완공 됨)될 때라 상당히 많은 물을 담수하여 놓았기 때문에 주변 농가들 특히 파, 딸기, 과수농가들은 땜의 물로 인하여 안개가 자주 낄 것이며 안개 때문에 농작물이 큰 피해를 볼 것이라는 피해망상(?)에 젖어 있었다. 땜 하류에 가까운 성동리와 평리, 수부리 등은 파와 딸기의 집산지이기도 했다.

나는 우선 차를 한잔 권하며 그분의 흥분이 조금 가라앉은 다음 천천히 말했다.

농사를 망쳤으니 큰일이군요. 우리 관내 농가에 그런 일이 일어났으니 저도 가슴 아픕니다. 하지만 땜의 안개 때문에 파와 딸기가 죽어 간다는 것은 아직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은 것입니다. 관계전문가들이 원인을 자세하게 조사할 사항입니다. 또한 말씀하시는 대로 땜의 안개가 원인이라고 밝혀진다 해도 읍사무소에서 보상을 할 책임은 없습니다.”

그럼 누가 책임진단 말이유. 내원 참, 어디 가서 하소연 헤야 허느냐고?”

, 땜 때문에 그렇다고 밝혀만 진다면야 보상을 할 곳이야 없겠습니까? 보령댐을 시설하는 수자원공사도 있고 아니면 다른 곳이라도 책임질 곳이 있겠지요. 그러나 우선은 농사를 망친 원인이 땜 때문인가 아니면 다른 원인인가 밝혀내는 게 먼저지요. 지금 읍장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관계 전문가로 하여금 빨리 조사를 하도록 주선하고 그 결과 땜의 안개로 인한 것이라고 밝혀진다면 보상을 적절히, 그리고 빠르게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제가 그 일들을 농민 편에 서서 성의껏 할 테니 돌아가서 기다리십시오.”

그 농민은 믿고 가겠노라며 돌아갔다.

 

나는 즉시 보령시 농촌지도소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하였고 다음날 농촌지도소 담당과장 이하 계장, 직원 등 3명이 현지를 살펴보았으며 그 다음날 결론이 나왔다.

그때 서해안인 보령지역의 날씨가 아주 나빠 안개가 자욱하게 낀 날이 11일간이나 계속되고 있었고 그 후로도 며칠간 더 지속되었다. 안개가 10일 이상 계속되면 파 종류는 누렇게 뜨고 딸기는 검은 반점이 돋는 병이 들어 죽어간다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보령땜 시설과는 관련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 결론을 들은 나는 읍장실을 찾아 왔던 농민과 그 마을 이장님을 나오시라 해서 찦차에 태우고 파와 딸기를 많이 심은 지역들을 돌아 다녔다. 보령땜 하류에 인접한 웅천읍 성동리, 평리, 수부리는 물론 3km정도 떨어진 대창리, 대천리, 노천리와 4km 이상 7km정도 떨어진 두룡리, 관당리, 소황리, 독산리, 황교리와 이웃면인 주산면의 신구리, 유곡리, 멀리 서천군 서면 부사리까지 돌아다니며 파밭과 딸기밭을 돌아보니 정도의 차이는 있을망정 비슷한 형편이었다.

 

읍사무소로 돌아온 농민과 이장님과 나는 대폿집으로 향했다.

술잔이 몇 순배 돌아가자 그 농민은 읍장님, 죄송헤유, 허지만 1년 농사 다 망쳤으니 어떻게 헌대유,” 하며 한숨을 쉬었다.

이장님과 나는 말없이 술잔을 기우렸다.

밖에는 야속한 안개가 하염없이 흐르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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