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인 이야기/공직과 관련한 이야기

가슴 찡한 이야기

구슬뫼 2011. 5. 15. 10:41

 동료를 위해 자기를 희생한 공무원

 공직에 오래 근무하다보면 정치적 변혁기마다 감원태풍을 한차례씩 맞게 된다.

서정쇄신이니 부조리척결이니 비리공무원 숙정 이니 하는 용어들과 함께 휩쓰는 감원바람은 전 공무원들을 전전긍긍하게 만들며 실제로 상당수의 공무원들이 옷을 벗 곤 했다. 평소 업무감사에서 크게 지적을 받은 일이 있거나 근무에 불성실하다는 평을 듣는 공무원뿐 만 아니라 정상적인 공무원까지 혹시나 재수 없이 축출대상에 걸려 들까봐 노심초사하면서 몸조심을 하느라 살 어름 같은 분위기가 연속되었다.

19604.19혁명 후에도 새 정권이 들어서자 이런 감원태풍이 불었는데 이때 주산면사무소에 있었던 실화이다.

 

 읍면장회의차 군청에 다녀오신 면장님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면장실에 들어가시더니 나오질 않는 것이었다. 부면장께서 무슨 일인가 싶어 들어가 한참을 숙의하고 나오더니 직원회의를 소집하였는데 참으로 청천벽력 같은 내용을 말하는 게 아닌가?

 “이번에 정부방침으로 대대적인 감원이 있는데 우리 면사무소에도 1명이 할당되어 며칠 안으로 감원대상자를 보고하라고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평소 근무성적이나 성실도 등을 따져 결정하라는 것이지만 당시엔 면사무소에 불과 10명 정도밖에 안 되는 직원들이 가족 같은 분위기로 일하는데 누구를 감원한단 말인가? 전 직원들이 한숨만 푹푹 쉬면서 긴 시간 대책을 협의 하였으나 묘안이 나오질 않았다. 그러나 누군가 한사람 결정하여 보고해야 하므로 궁리 끝에 할 수 없이 제비뽑기를 해서 걸리는 사람이 그만두는 것으로 하자는 웃지 못 할 결정이 내려졌고 마침내 전 직원이 참여한 가운데 추첨을 한 결과 ○○○이란 분이 걸렸다.

 

 다른 직원들은 모두들 자신이 걸리지 않았음을 다행으로 생각하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지만 막상 ○○○씨는 눈앞이 캄캄하였다. 그는 돌연 태도를 바꾸어 나는 농사채도 없는 터에 노모도 모시고, 어린 것들(어린 자녀들)은 많으니, 면서기라도 다니지 않으면 호구지책이 없다. 그래서 도저히 그만 둘 수 는 없다는 것이었다. 직원들은 난감했다. 그가 제비뽑기에서 걸렸으니 약속대로 그만 두면 좋겠지만 못하겠다고 버티니 억지로 그만두라고 할 수도 없고 또 다시 한숨만 푹푹 쉬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무슨 잘못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추첨에 걸렸다는 사실만으로 본인이 싫다는데 그만두라 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사무실 분위기는 마치 초상집같이 침울하게 지속되고 마침내 축출 대상자를 보고해야 할 날짜가 다가왔다.

 

 보고업무를 맡았던 서무담당자 이현우(李賢雨)씨는 마침내 큰 결심을 했다. 그리고 직원들 앞에 나섰다. “여러분 걱정 마시오. 나는 농사지을 땅도 있고 집도 가난하지 않으니 직장을 나가도 살 수 있습니다. 내가 그만 두겠소.”라고 자청하여 그만두겠다는 것이었다. 면장님을 비롯한 전 직원들은 마치 구세주를 만난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에게 무어라 감사의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했다.

 

 그리하여 이현우씨가 그만두게 되었고 동료직원들은 자신들을 위해 희생정신을 발휘한 그를 위해 다음과 같이 결의 하여 시행하였다.

1.이현우씨는 그만 두었어도 계속 출근하게 한다.

2.공무원이 아니므로 담당업무를 줄 수 없으니 바쁜 직원들의 업무를 보조케 한다.

3.직원 모두가 매월 균등하게 돈을 부담하여 그의 봉급을 준다.

 

 그 후 이현우씨는 출근하여 직원들의 업무를 보조하면서 얼마간 다녔으나 이 직원 저 직원 바쁜 사람의 업무를 찾아서 도와주다보니 바쁜 사람이 겹칠 때는 누구의 일을 먼저 해야 할지도 난감하고, 일이 없을 때는 놀아야 하므로 자존심도 상하고, 또 직원들이 주는 봉급을 탄다고 생각하니 창피한 생각이 들기도 하여 얼마 못가 아예 그만두고 말았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19615.16군사정변이 있었고 군사정부에서 국민재건운동본부를 세우고 대대적인 재건사업을 추진하면서 각 읍면사무소에도 담당요원을 한 명씩 채용하여 일을 처리토록 하였다. 주산면에서는 당연히 이현우씨를 그 재건운동요원으로 채용하였고 그렇게 면서기로 돌아온 그는 열심히 근무하여 부면장까지 역임한 후 1975년 퇴직하였다. 이 일은 오랫동안 공무원들 사이에서 회자되었으나 이제 이현우씨도, ○○○씨도 그리고 그때 추첨에 참여했던 분들도 모두 고인이 되어버렸고 이 이야기를 기억하는 사람들조차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살신성인(殺身成仁)이라고까지는 아니라도 동료직원들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였던 훌륭한 공무원의 가슴 찡한 실화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