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인 이야기/공직과 관련한 이야기

관운이란 게 있는 걸까? 없는 걸까?

구슬뫼 2010. 8. 6. 16:37

관운(官運)이란 게 있는 걸까? 없는 걸까?


 운(運)이라는 게 있을까? 나는 전적으로 그것을 믿고 싶지 않지만 세상엔 이상한 일들이 간혹 일어나곤 한다. 그 중에서 공무원들에 해당하는 관운에 대한 이야기이다. 과거 어떤 대통령은 “인사가 만사다”라고 한 말도 있었지만 공무원 사회에 인사(人事)만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일이 없을 성 싶다. 누구든 인사철이 되면 자신의 거처를 두고 조바심하며 좀 더 나은 자리를 가거나 승진을 하기위해 신경을 쓰게 마련이다.

 나는 공직시절 2년간 인사실무를 담당한 일이 있었는데 그 2년간 많은 공무원의 인사업무를 처리하면서 어떤 사람은 자기의 인사이익을 위해 죽어라 노력을 해도 소용없고, 어떤 사람은 별로 노력을 하지 않았거나 심지어 노력 없이도 자신이 원하는 것 이상으로 잘되는 예를 가끔 보았다. 그 오묘한 세상사, 알고도 모를 관운의 예를 들어 본다.


제1화 전화위복된 인사실무자의 실수

 1986년, 시로 승격한 대천시(大川市)로 많은 공무원이 전근을 가자 보령군청(保寧郡廳)엔 대대적인 후속인사가 단행되었다. 그 중 읍면사무소(이하 읍면이라 함) 소속 지방행정서기(8급)의 승진인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승진할 수 있는 자리가 무려 20석이나 비었다. 당시 인사업무(人事業務) 실무자였던 나는 전읍면의 직원명부에서 지방행정서기(8급) 중 인사법규에 의한 승진연한(당시 2년)이 찬 공무원이 누구인지 발췌한바 모두13명이었다. 그중에는 아는 사람도 있었고 이름만 알거나 심지어 이름도 처음 보는 사람도 있었지만 승진예정 자리보다 승진할 사람이 적어 그들 모두를 지방행정주사보(7급)로 승진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4월 1일 인사발령 공문이 나가자 주포면사무소(周浦面事務所)에 근무하는 M이라는 직원으로부터 고맙다는 전화가 온 것이다. 나는 깜짝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M은 이번 인사에 이름이 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뭐라고? 전화 끊지 말고 잠깐 기다려봐” 나는 수화기를 든 채 책상위에 놓여 있는 직원명부를 넘겨 M을 찾아보았다. 앗불싸 나의 실수로 그를 빠트렸던 것이다. 기가 막힐 일이다. 모르는 직원들까지도 모두 승진시킨 마당에 평소에 잘 알고 지내던 그를 빠트리다니 . . . 나는 그에게 진심으로 사과 하였다. “M서기 대단히 미안하네. 내가 실수로 자네를 빠트렸어, 즉시 승진시켜 줄 터이니 이해해주게나”


 전화를 끊은 다음 혹시 또 다른 빠진 사람이 있나 직원명부를 샅샅이 뒤졌으나 M이외에는 빠진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M 한사람을  승진시키는 서류를 만들어 결재를 올렸는데 문제가 생겼다. 부기관장(副機關長)이 “인사를 수시로 하는 게 아니다” “혹시 인사담당자가 장난치는 것 아니냐”는 등의 이해 못 할 말들을 하면서  결재를 하지 않는 것이었다. 아무리 설명을 해도 막무가내로 결재를 안 하는 데는 어쩔 수가 없었다. 그의 엉터리 같은 행동은 계속 이어져 5월1일에도, 6월1일에도 M을 승진시킬 수 없었고 결국 7월1일 정기인사로 미루게 되었다. M에게는 거듭된 사과로 양해를 구했다.


 한편 그 해에 대천시와 함께 공주시(公州市) 온양시(溫陽市) 등 3개시가 한 번에 승격하여 발족하는 바람에 충남도청(忠南道廳)의 많은 공무원들이 사무관 승진을 위해 시군으로 나갔고 그 후속인사로 6월에 도청에서 시군(市郡)의 8급 직원들을 대거 영입하니 보령군청에서도 5명의 8급 직원들이 도청으로 전출을 하였다. 따라서 군청에서도 읍면직원 중 5명의 8급 직원을 영입할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나는 M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 군청에서 5명의 8급 직원을 영입할 계획인데 자네가 만약 7월1일 7급으로 승진한다면 영입대상에 넣을 수 없네. 만약 승진하지 않는다면 영입할 8급대상자로 추천해주겠네. 다만 내가 추천을 한다는 것이지 100% 영입한다고 장담은 못하겠네. 어떻게 하겠는가? 승진을 할 텐가 아니면 불확실하지만 군청영입을 기다려 보겠는가?” 당시에는 읍면에서 군청으로 전입하기가 대단히 어려웠으며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8급만 받아드렸지 7급이나 6급은 받아드리지 않을 때였다. M은 승진을 하지 않고 군청영입을 기다린다고 하여 7월1일 승진인사에서는 그를 일부러 빼 놓았다.


 군청영입대상자 명단은 10명을 작성하여 결재과정에서 5명을 선발하도록 하였는데 M을 1번으로 올려놓으니 최종 5명 안에 무난히 들어 7월12일자로 군청에 전입하게 되었다. 이렇게 나의 실수로 승진인사에 누락된 덕분에 꿈에 그리던 군청전입을 하게 된 M은 크게 기뻐하면서 나에게 고마워하였다.


 그러나 그의 행운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9월이 되자 당시 내무부장관(內務部長官)이 바뀌었는데 새로 부임한 장관은 “국민을 하늘같이 모셔야 한다.”는 구호를 앞세워 전국 시군구청에 위민실(僞民室)을 신설하고 민원인들의 애로를 들어 해결해주라면서 6급1명, 7급1명, 8급1명씩 정원을 증원시키라는 지시를 내렸다. 군청에서는 즉시 위민실을 만들고 3명의 공무원을 배치시켰는데 이에 따라 승진인사도 하여야 했다. 그런데 군청에 근무하는 8급 직원 중 승진연한이 넘은 공무원은 M밖에 없었으니 자연스럽게 그가 승진하게 되었던 것이다. 불과 몇 개월 전 읍면의 승진인사에서 누락되어 불이익을 당한 공무원이 그 어렵다는 군청전입에 이어 7급까지 승진하게 되었으니 . . .


 이 사건(?)의 발단은 인사실무자의 단순한 실수로부터 시작된 일이었다. 모르는 사람까지 전원 승진시키는 인사에 평소 잘 아는 직원을 어떻게 빼 먹을 수가 있으며, 바로 이어서 승진시키려 했는데 결재자 중 한사람이 이해 못 할 행위로 3개월 이상이나 결재를 하지 않고 끌었을까? 그리고 군청전입도 행운인데 2-3개월 후에 7급 정원이 증원되어 그가 승진할 수 있게까지 되었을까?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었을까? 일부러 하고 싶다고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참으로 기가 막힌 행운이었다. M이라는 공무원의 관운(官運)이 좋았기 때문에 그리 된 것이라고 할 수밖에 달리 표현 할 길이 없다. 그는 그 후 성실히 근무하다가 전입시험을 거쳐 도청에 전출하였으며 지금도 충남도청에서 서기관으로 근무하고 있다. 


제2화 필경사(筆耕士)의 병가(病暇)로 덕을 본 보조수

 이 이야기는 내가 직접 보거나 경험한 게 아니고 전전으로 들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과 약간씩 다르거나 과장된 부분도 없지는 않으리라 본다. 하지만 줄거리만큼은 틀리지 않은 사실로서 기막히게 운 좋은 사례라 생각된다.


 컴퓨터가 보편화되기 전에는 모든 문서기안문을 펜 또는 볼펜 등으로 직접 써서 만들었고 특히 보고서는 싸인펜이나 매직펜 등으로 예쁘게 글씨를 써서 만들었기 때문에 글씨 잘 쓰는 사람이 인기가 있었다. 그래서 군청이상의 기관에는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을 필경사로 고용하여 각종 보고서 따위를 작성하던 시절이었다.


 1980년대 충남도청을 대통령이 방문한 일이 있었다. 대통령이 도청을 방문하는 일이 드물기 때문에 상당기간 전부터 비상이 걸린 것은 말 할 것도 없었다. 각종보고서를 작성하는데 마침 필경사가 몸이 몹시 아파, 병가 중이라 할 수 없이 보조필경사가 글씨를 쓸 수밖에 없었다. 물론 필경사가 글씨를 잘 쓰긴 하였지만 그의 글씨를 따라서 배우며 보조하던 보조필경사의 글씨도 상당한 경지에 이르렀었던 모양이다.


 드디어 대통령 앞에 올려 진 보고서를 본 대통령께서 “흠- 글씨가 예쁜데 . . .” 라고 한마디 하는 게 아닌가? 이 말을 들은 청와대 참모들은 대통령의 마음에 드는 글씨를 쓴 사람이 누군가 알아보았고 나중에 관계관이 그 글씨의 주인공을 찾아 제안을 하였다.

“당신 청와대에 와서 근무 할 의향 없소?” 보조필경사는 주저했다. “저는 대전에 사는 사람입니다. 낯선 서울에 가면 집도 없고, 봉급도 적고  . . .”

청와대 관계관은 “그렇습니까? 집은 우리들이 알아보지요. 또한 수입도 살림에 지장이 없을 정도는 될 겁니다”라고 하여 결국 그는 특채를 거쳐 청와대 필경사로 들어갔는데 직급이 별정 5급 상당이었다. 도청에서는 정규직도 못되는 상용 잡급(당시에는 임시직으로 상용 잡급이란 제도가 있었음)이었는데  사무관에 해당하는 별정5급 상당을 받고 그 이름도 대단한 청와대에서 근무하게 되었으니 출세도 이만저만한 출세가 아니었다. 또한 살림을 할 작은 집도 마련해 주었다고 한다.


 게다가 각 시‧도청에서 대통령께 보고서를 올리려면 대통령이 좋아하시는 글씨를 써야 좋은 인상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각 시도청의 보고서 작성 담당관들이 그 필경사에게 글씨 쓰기를 의뢰하였다는 것이다. 그것은 자기업무 이외의 일이어서 근무시간에 할 수는 없으므로 부탁하는 사람들이 호텔을 잡아 놓고 근무시간 이외에 그를 모셔다가 글씨를 쓰도록 주선하였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청와대, 그 청와대 소속 필경사에게 글씨쓰기를 부탁하는 하위기관 공무원들의 그에 대한 예우는 과연 어느 정도였을까? 듣는 말에 의하면 글씨를 써주는 댓 가를 원하지는 않았지만 그 수입이 짭짤하여 공식 월 보수보다 나아 서울 생활을 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으며 오히려 대전에서보다 훨씬 풍족한 생활을 누렸다고 한다.


 대통령이 보조필경사가 아닌 진짜 필경사가 쓴 보고서를 보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물론 보조 필경사의 글씨도 수준급이었을 테지만 그의 글씨를 보고 배운 보조자보다는 필경사의 글씨가 한 등급 위일 것이 아니었겠는가?  왜 하필 필경사는 그 중요한 때 몸이 아파 병가를 얻었을까? 이 모두를 억지로 만들 수 있을까? 참으로 청와대 필경사로 들어간 사람의 관운이 기가 막히게 맞아 떨어졌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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