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인 이야기/공직과 관련한 이야기

처음마음 나중마음

구슬뫼 2010. 11. 12. 21:09

 

1986년 대천시가 승격하여 독립하면서 보령군청에는 대대적인 인사이동이 있었다.

우선 대천읍사무소에 근무하던 공무원과 군청 도시과 소속 공무원, 그리고 대천시 준비단에 나갔던 공무원 등은 당연히 신설되는 대천시로 나갔고 그 밖에도 상당수의 공무원들이 전출하였으며 그 후속인사로 승진, 부서 간 이동 등 그야말로 사상 처음으로 많은 인사이동이 있었다. 그래서 이에 따른 업무가 폭주하였다.

 

한 건의 인사를 시행하려면 인사안을 사전 작성하여 결심을 받은 후 다시 기안문을 작성, 결재를 받아 시행하고는 개인별로 발령장, 발령대장, 인사기록카드, 기여금대장, 의료보험대장, 직원명부, 승진후보자명부 등 여러 가지를 작성 또는 수정, 추가 기입하여야 하는데 업무의 전산화가 되지 않았던 시절이었으므로 일일이 사람이 펜으로 써서 무려 200건 정도의 인사를 하였으니 그 업무량이 만만치 않게 많았다.

당시 인사실무는 행정계에 1명의 담당자를 두어 이 모든 업무를 도맡도록 하였는데 마침 내가 인사담당자였다. 단순한 작업은 동료직원의 도움을 받기도 하였지만 인사비밀에 속하는 내용은 다른 직원에게 맡길 수도 없는 실정이라서 혼자 몇 달간을 야근은 물론 토요일 일요일도 근무할 수밖에 없었다.

 

숨 가쁘게 바쁜 시기가 지난 6월 어느 날 고향친구들과 함께하는 친목회 자리에서 그동안 내가 인사업무로 많이 어려웠었다는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랬더니 그 중 L이란 친구(공무원이 아닌 농협직원)인사를 200건이나 했다면 한 건당 10,000원씩만 받았어도 200만원은 될 것 아냐?”하면서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소리를 하는 게 아닌가? 얼마나 수고 많았냐는 위로는 못할망정 있지도 않은 돈거래를 운운하다니 . . . “내가 만원 같으면 그들이 가져가려고 할 거다라고 대꾸하여 넘겼지만 나는 못내 기분이 언짢았다.

 

그 후 1년이 지난 19876-7월경이었다. 몇 년 전부터 업무상 잘못이 있다고 경찰조사를 받으면서 직위해제 중에 있던 면사무소 소속 G씨의 모든 조사가 끝났는데 큰 잘못이 없다고 판결이 나서 복직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G씨는 앞의 L과 동서지간이었다.

G씨의 복직발령을 앞두고 L로부터 전화가 왔다. G씨가 면에서 근무하다 잘못되어 고생하였으니 명예회복차원에서 그곳에 발령받게 해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때 면엔 빈자리가 없어 마침 빈자리가 있던 면에 발령하려던 참이었다.

그래서 L에게 그것은 어려운 일이니 우선 면에 근무하다가 다음 기회에 면으로 가면 좋겠다고 했다. 전화를 끊었지만 못내 마음에 걸렸다. G씨가 잘못이 없다는 것을 보여 명예회복을 해야겠다는 데 . . . 그리고 고향친구의 부탁인데 . . . 나는 부탁을 들어주어야겠다고 결심한 후 상사들과 협의하여 2-3명의 공무원을 자리 이동시키면서 G씨를 면에 발령받도록 조치하였다

인사실무를 보았기에 고향친구의 부탁을 들어 줄 수 있어 내 마음이 흐뭇했다.

 

 

인사발령 공문이 나가자 30분이 채 못 되어 L로부터 고맙다는 전화가 왔다. “! 감사합니다. 내가 술 한 잔 잘 사겠소.”(그는 학교 1년 후배라서 나를 형이라 불렀음)- 술이야 다음 친목회 때 그 말 하면서 한잔 더 주면 되지, 별도로 살 것 있나?” “아니지 그땐 그때고 내가 조만간 한번 전화할 터이니 그때 만납시다.” “아이 참 그러지 않아도 된다니까 . . . ”

술을 얻어먹고 싶진 않았으나 1년전 이맘 때 쯤 L이 말한 한 건당 만원씩만 받았어도 . . .”라는 말이 기억나 내심 네가 한 말도 있고 하니 술은 사겠지라고 생각하면서 은근히 기대를 해보았으나 그것이 끝이었다 일주일이 가고 한 달이 가도 감감무소식이었다.

그렇게 두 어 달이 지난 어느 날 친목회에서 L을 만났으나 술을 사겠다던 약속이나 인사조치에 대한 감사의 말은 없었다. 나는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일부러 인사업무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이번 달에도 말이야, 7명의 인사이동이 있었는데 어쩌구 저쩌구 . . .” 그러나 L의 반응은 없었다. 엉뚱한 이야기로 화제를 돌릴 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인사발령에는 혹시 금품수수라도 있지 않나 의심 하고 막상 자기가 부탁한 인사는 목적을 이룬 후 스스로 약속한 술도 사기 싫은 L의 마음, 속담에 변소 갈 때 마음 다르고 나올 때 마음 다르다는 말이 있다. L이 그 속담의 뜻을 실감나게 해주었다.

그 후 나는 승진하여 부서를 옮겼고 1년 반 정도가 지난 1989년 정월 대보름을 기하여 풍어당놀이라는 민속행사에 참여코자 면의 외연도라는 섬에 출장을 가게 되었다. 그래서 그곳에 근무하는 G씨와 함께 가게 되었는데 인사발령이 있은 후 처음으로 만난자리였다. 그는 나에게 한 번도 찾아뵙지 못하여 죄송합니다.”라고 인사하였다. 그의 태도에 진정 미안함이 엿보였다. G씨는 나보다 6년 연상이고 또한 평소에 점잔한 분이다. 또한 인사와 관련하여 아무런 부탁도 직접 받은 사실이 없으므로 그에게는 서운한 감정이 없었다. “아이고 무슨 말씀을 . . .그런 말씀 마세요.” “이번 행사에 관해서나 이야기 합시다.”

우리는 더 이상 인사와 관련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고 12일 동안 함께 지내면서 외연도에서 거행되는 민속행사에 참여한 후 돌아왔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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