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인 이야기/공직과 관련한 이야기

대형사고를 막은 공무원

구슬뫼 2010. 9. 1. 11:09

대형 사고를 막은 공무원

 

  1995년 여름 보령지역에 집중호우로 큰 물난리가 나 대천천이 범람하고 각 지역마다 하천 둑들이 터지며 농경지가 유실되는 피해가 속출하였다. 나는 그때 보령시 상수도사업소에 근무하고 있었고 당시엔 수돗물을 죽정동 정수장에서 70%, 창동 정수장에서 30%정도 공급할 때였는데 갑자기 내린 비로 대천천이 범람하자 대천천 가까이 저지대에 있던 죽정동 정수장(지금 노인복지관 자리) 기계실에 물이 차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그곳에선 깨끗하게 물을 정수한 다음 모터펌프가 장치 된 6대의 기계를 24시간 돌려 배수지로 끌어 올려 수돗물을 공급하고 있었는데 주변이 물바다가 되자 기계실로 물이 마구 스며드는 것이었다.

 나는 67명의 직원들과 차오르는 물을 바가지로 품어냈다. 그러나 기계실은 여러 군데에 숭숭 구멍이 나 있어 아무리 품어내도 물이 줄지 않고 오히려 점점 더 차오르고 있었다. 처음엔 발목을 적시던 물이 무릎으로, 다시 허리로 차오르자 이젠 사람들의 목숨이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다. 더 이상 물이 차기 전에 기계실을 포기하고 철수를 결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직속상관인 시장에게 철수할 것을 전화로 보고하고 직원들과 함께 기계실을 빠져나오는데 그것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미 가슴까지 차오른 물, 그것도 밀려들어오는 물줄기를 뚫고 건물 벽을 손으로 잡으면서 간신히 모두 빠져나왔다.

 물은 하염없이 밀려들어 기계실 높이의 2/3가 침수 되었고 당연히 기계들도 물속에 잠겼다. 수돗물 공급이 끊긴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는 일, 그 후 비가 멎고 물이 빠져 침수되었던 기계를 고쳐 정상적으로 수돗물을 공급하기까지는 일주일이 걸렸다. 그때까지는 창동 정수장의 물을 공급하면서 부족분은 소방서의 협조를 받아 매일같이 소방차로 물을 실어 날라 공급하여야 했으니 시민들의 불편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물을 공급하는 공무원들도 죽을 맛이었다.

 

 그런데 이때 참으로 끔찍한 사고가 일어날 번 한 것을 정수장에 근무하던 한 공무원의 침착한 대처로 모면한 사실이 밝혀졌다. 다름이 아니라 기계실에는 고압전기가 들어가고 있었는데 기계가 물이 찰 위험에 처하자 잡역부로 일하던 C씨가 재빨리 전기를 차단하였던 것이다 황급한 상황이라서 소장을 비롯한 그 자리에 있던 직원들은 아무도 그 생각을 못했는데 C씨는 그것을 생각하고 현명하게 대처하였던 것이었다. 만약 그때 C씨가 전원을 차단하지 않았다면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하면 아찔하다. 물을 품기 위해 기계실에 들어 있던 사람들 모두 귀중한 생명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엄청난 사건에 보령시는 물론 전국적으로도 떠들썩하지 않았겠는가?

 

 C씨는 비록 일용잡급으로 일하는 분이었지만 지긋한 나이에 평소 누구보다 열심히 근무하는 모범공무원이었다. 그 일이 있은 후에도 자신이 한 일을 자랑삼아 떠버리지도 않았고 그저 평소나 다름없이 묵묵히 자기 일만 성실히 하였다. 나는 그런 C씨에게 진정으로 고마움을 느꼈으나 어떻게 보답을 해야 할지 난감했다. 그를 정식직원(기능직)으로 채용하면 좋겠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내가 임용권자도 아니지만 그가 신규임용 할 수 있는 나이를 넘어섰던 것이다. 연말에 시장표창이나 받도록 주선할까? 아니 도지사표창 정도는 되어야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늘 감사한 마음을 가졌다. 그러나 그해 1121일자 웅천읍장으로 전근을 하게 되었다. 마지막 직원들을 모아놓고 떠나는 인사자리에서 C씨를 앞으로 불러 세우고는 “C주사님! 감사합니다. 그러나 보답은 못하고 떠나게 되어 죄송합니다. 이거 약소하지만 제 성의이니 받아주세요.” 금액이 크지 않은 상품권을 한 장 넣은 봉투를 내미는 내 손이 부끄러웠다.

 

 지금은 그분이나 나나 모두 퇴직하여 노인복지관에서 가끔 만난다. 난 아직도 그때를 떠 올리며 반갑게 인사를 드린다. “안녕하세요? 별고 없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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