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인 이야기/공직과 관련한 이야기

들러리

구슬뫼 2018. 12. 3. 11:49

1995년 보령군과 대천시가 보령시로 통합하였다.


두 지방자치단체가 합해지는 바람에 정원이 줄어 공무원 자리배치가 어렵게 되자

나를 포함해 L, J, C, J2씨 등 6급 공무원 5명을 5급 승진후보자란 이름으로 대기발령했다.

이런 일은 보령시뿐이 아니라 이때 같이 통합시가 된 공주시와 아산시에도 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그

 외 시군에도 상당수의 승진후보자들이 있었다.

그래서 충남도에서는 승진후보자반이라는 특별교육반을 만들어 이들을 교육원에 수용하여 일정기간 교육을 받도록 조치하였고

그해 2월 하순 충남공무원교육원에 입소함으로써 체계적으로 시험공부를 할 수 있을뿐더러 시험에 대한 갖가지 정보들을 접할 수 있었다.

 

당시 사무관 승진시험은 후보자를 2배수로 추천, 경쟁으로 시험을 보게 시켜 우수자를 합격시키는 형식을 갖추어 놓고 막상 시험에는 단수만 응시 시키는 게 관례였다.

(반수는 포기토록 유도하며 이를 들러리라 하는데 들러리 선 사람은 다음번에 승진대상자로 선정, 시험을 볼 수 있도록 선처한다)

그러니까 승진후보자로 결정된 사람은 시험에서 과락만 면하면 모두 합격할 수 있는 것이었다.

교육원에서 교육을 받으며 모의 시험문제들을 풀어보고 시험에 대한 갖가지 정보를 들으면서 일주일이 지나니 자신감이 생겼다.

경쟁이 없다면 시험합격은 걱정 안 해도 되겠다는 자신감이 생긴 것이다.

 

2주일이 지나자 시험일자와 각 시군 당 응시 인원이 확정되었는데 보령시에는 4명이 배정이 되었다.

대상자는 5명인데 4명만 배정된 것, 어떻게 할 것인가?

더구나 시험추천을 배수로 해야 하니 들러리 3명을 더해 총 8명을 추천하였는데

설상가상, 들러리로 추천된 G, S, L씨 등이 우리 5명 중 1명이 포기하지 않으면 자기들도 포기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모의시험문제를 서로 공유하며 공부요점을 나누는 등 화기애애하던 5명의 분위기는 금세 경쟁체제로 냉랭하게 바뀌어버렸다.

3주차 숨 막히는 듯 답답한 월요일, 화요일이 가고 목요일이 되었다.

이래선 안 된다. 어떻게든 5명 중 포기자를 결정하고 전과 같이 화기애애한 공부분위기로 돌아가야 한다.

이렇게 생각한 우리는 그날 학과가 끝난 후 협의시간을 가졌다.

 

그 자리에서 나는 말했다.

우리들 5명이 협의하여 한명이 포기하지 않으면 나머지 들러리 3명도 응시를 한다고 한다.

만약 8명이 시험을 본다면 우리들 중 4명이 합격할지, 3명이 합격할지, 그보다 더 적은 수가 합격할지 모를 일이다.

그러니 누군가 한명은 반드시 양보해야 한다." 모두들 맞는 말이라고 응수한다.

여기까지 합의하고는 저녁을 함께 먹고 누가 양보할지는 내일 결정하기로 했다.

 

다음날(금요일) 점심식사 후 우리는 다시 만났다. 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들이 기준을 정해 누군가 양보하기로 한다면 각자 자신이 유리한 기준으로 하려 할 것이므로 협의가 어렵다.

공무원들은 인사부서에서 발령하는 대로 움직이는 것이니 이 문제를 인사부서에 맡기는 게 어떻겠는가?”

내 제안에 모두들 그게 좋겠다고 했다. 그 자리에서 즉시 보령시청 총무과장에게 전화하여 우리들이 이미 합의한 내용을 보고드릴 것이라며 저녁식사를 같이 하자고 하니 과장은 총무국장을 모시고 나오겠다고 했다.

그날 저녁 총무국장과 과장을 모시고 저녁을 먹으면서 우리들의 협의 사실을 밝히고 결정을 부탁했다.

두 분이 흔쾌히 그러마고 하면서 여러분은 시험 준비나 잘하라고 하였다.

다음날 다시 교육원에 들어가서 소정기간 교육을 마치고 돌아오니 인사부서에서는 양보대상자로 J2씨를 선정해 놓고 있었다.

 

나는 양보한 J2씨에게 미안해 교육에서 돌아온 날 불러내어 술을 곁들여 저녁식사를 사 주고 노래방까지 가서 한바탕 놀아주었다.

이렇게 양보한 J2씨는 우리 4명보다 6개월 늦은 다음기회에 시험에 응시하여 승진하였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