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분야/향토사랑

굴고개 주변이야기

구슬뫼 2011. 6. 8. 17:52

 

 부여 쪽에서 지방도 606호를 따라 무창포해수욕장으로 가다보면 웅천읍 대천리를 지나 구룡리로 넘어가는 고개가 있는데 이 고개를 굴고개 또는 국구개라고 한다. 굴고개(국구개)가 무슨 뜻일까? 옛날에는 꽃()을 곳이라고 발음했다. 이곳은 애초에 꽃()이 들어간 곳고개였다. 곳고개란 이름은 다른 곳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바, 보령시 화산동에서 청라면으로 넘어가는 고개도 곳고개로서 화현(花峴)이라고 한자로 표기하고 있다. 이곳 굴고개도 곷고개였던 것이 세월이 흐르는 동안 국구개로 변하고 국구개는 다시 굴고개로 변하여 전하는 것이다.

 

 이 고개를 위시하여 주변에는 꽃과 관련된 이름들을 여러 곳 찾아볼 수 있다. 우선 이 고개가 속한 산이 화락산(花落山)이다. 화락산 북쪽자락이 굴고개로서 용안이마을의 테메산으로 이어진다. 화락산 동쪽아래에는 화정리(花汀里)라는 지명이 있었다. 지금은 구장태 또는 대천리라고 부르지만 옛날에는 화정리라 하여 1918년 이곳에 처음 개교한 보통학교를 화정공립보통학교(花汀工立普通學校=웅천초등학교 전신)라 하였고, 일제시대에 이 마을을 끼고 흐르는 냇물에 철근콩크리트로 다리를 놓고 花汀橋라 하였는데 낡고 좁아 1988년 다시 건설한 후에는 한글로 화정교라 표기하였으며, 몇 년 전까지 영업하던 화정식당이 아직도 간판은 남아있다. 화정리 남쪽에는 화락매라는 마을도 있다. 또한 굴고개를 넘어 500m정도 가면 고뿌래(花望)라는 마을도 있다. 1983년 보령군에서 발간한 내고장보령1998년 보령시에서 발간한 보령의 지명에 보면 고뿌래마을은 화락산을 바라본다는 뜻으로 화망(花望)이라 전한다고 하며 화락산은 풍수적으로 떨어진 꽃과 같다고 전한다고 하였다.

 

 

 고뿌래마을곷고개·화락산화정리, 무언가 연결된다는 느낌을 가지게 한다. 이 지역에 왜 꽃이 들어간 이름들을 붙였을까? 곷고개나 화락산에 꽃이 유난히 많았었을까? 그러나 그보다는 명당과 관련한 이름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짐작해본다. 옛날 사람들은 흔히 명당을 꽃으로 표현했다. 가까운 예를 보면 성주산에 여덟 개의 명당 즉, 성주8모란이 있다는 것이 그렇고, 주산면 화평리의 화산(花山)도 명당과 관련한 이름이다.

 

그러면 이곳의 꽃은 어떻게 명당과 연관 지었을까? 고뿌래를 화망이라고 해서 꽃()을 바래()본다는 뜻이라 전한다고 했지만 그보다는 꽃의 뿌리()라는 뜻이 아닐까 한다.  우리지역사투리로 뿌리를 뿌래기라고 하며 뿌랭이라고도 한다. 말하자면 고뿌래를 곳바래(花望)가 변한 것으로 보기보다는 곳뿌리고뿌래로 변했거나 곳뿌래기(뿌랭이)고뿌래로 변했을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1911년 조사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의하면 이 마을을 곳부래(+ · + ㅣ)라고 기록한바 그런 생각(곳뿌리곳부래 또는 곳뿌래기<곳뿌랭이>곳부래로 변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더욱 강하게 들게 한다. 고뿌래는 꽃의 뿌리요, 굴고개는 꽃이 피는 고개요, 화락산에서 꽃이 지면, 그 산자락에 있는 마을은 꽃잎이 흐르는 물가()마을 즉, 화정리(花汀里), 참으로 그럴듯하게 연관 지어 붙인 이름들이 아닌가? 실제로 화정마을은 냇가에 자리하고 있고 그 냇물(화정교가 있는)은 웅천천으로 흘러간다.

 

 그렇다면 명당은 어디일까? 화락산은 말 그대로 꽃이 떨어지니 명당이라 하기는 무리일 것이고, 굴고개에 명당이 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으며, 화정리에도 화락매에도 명당이 있다는 말은 못 들었으나 꽃의 뿌리인 고뿌래는 명당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이 마을은 예로부터 명당이라서 많은 인물이 난다는 것이다. 지나가는 지관이 이 마을을 보고 이 마을에서는 제법 잔 인물(과히 크지 않은 인물)이 나오겠는 걸 . . .”하며 말하더란 이야기도 전하고, 풍수를 안다는 사람들은 이 마을이 지리학적으로 참 좋은 곳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이 마을에서 큰 인물을 내진 못했으나 판사, 도교육감을 비롯하여 중앙단위 공무원, 도청과장, 시군교육장, 읍면장, 초중학교장, 법무사 등 시골마을치고는 비교적 웬만한 인물들이 줄을 이어 나오고 있다. 또한 다른 지역 출신이지만 돈을 많이 번 어떤 재력가는 명당을 찾아 20-30년 전부터 이 마을 뒷산에 묘역을 장만하여 조상을 모셔놓고 잘 가꾸는 사람도 있다. 그 재력가는 서울에 살면서도 이 마을 대소사에 적극 참여하고 마을발전을 위해 기금도 희사하는 등 정성을 기울인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 이 마을 주변에 큰 변화가 왔다. 서해안고속도로가 개설되고 무창포해수욕장 간이 나들목이 생기면서 마을 앞을 지나는 지방도를 10m정도 높이고 고속도로 진입로를 연결함으로서 마을 경관이 크게 변하고 어수선하게 바뀌었다. 더구나 앞으로 몇 년 사이에 지방산업단지가 마을 앞산에 들어설 계획이어서 옛 시골의 정취는 더욱 멀어지게 될 것이다.

명당이란 게 정말 있는 걸까? 있다면 이렇게 주변에 변화가 와도 명당의 효력엔 지장이 없는 것일까? 나는 풍수지리에 문외한이라서 이 마을이 명당인지 보아도 알 수 없고 또한 명당이란 것이 있는지 없는지 그 자체를 믿고 싶지도 않지만 마을주변에 너무 큰 변화가 일어나니 무언가 서운한 생각이 든다. 세상은 발전하는데 시골이라고 옛날 그대로 변하지 않고 있다면 그것도 문제이긴 하지만 명당으로서 오랫동안 사람들의 머릿속에 자리해온 고뿌래마을의 이미지가 바뀌지 않았으면 좋겠다. 굴고개, 화락산, 화정이라는 이름도 오랫동안 정감 어리게 남아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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