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분야/향토사랑

두란이 마을

구슬뫼 2011. 4. 10. 09:28

 보령시 주산면 주야리에 두란이라는 마을(사진참조)이 있다. 한자로 두란(杜蘭&斗蘭)이라고 표기하여 왔다.

내가 태어나 17세까지 살던 고향마을인데 마을 이름이 언제부터 그렇게 불리었는지는 또 왜 두란이라고 불렀는지 두란이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다.

어느 마을 유래 집에는 옛 중국의 선비 두보(杜甫)가 세상풍파를 버리고 난초를 가꾸며 놀던 신선계곡과 닮은 마을이라 두란(杜蘭)이라고 한다.”라고 실려 있긴 하지만 전혀 공감이 안가는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마을 뒤(서쪽)에 야트막한 산 구릉이 장작골 마을과 경계를 이룰 뿐 남쪽과  북쪽, 동쪽(마을 앞) 등 삼면이 들로 싸인 남북으로 길다란 모형의 마을이다. 말하자면 계곡이 없는 마을이니 두보 운운하는 것은 사실과 맞지 않는, 누군가 마음대로 상상하여 꾸며낸 말이 아닌가싶다.

 

 그러면 두란이가 무슨 뜻일까? 왜 두란이라고 했을까? 짐작해보고자 한다.

마을 앞 들 건너 약 500m 지점에 한길이 있었다. 지금은 농로로 이용하는 작은 길이지만 옛날에는 비인현(庇仁縣)에서 남포현(藍浦縣)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길이었고 비인장(지역에 5일마다 서는 市場: 이하 같다)과 웅천장을 연결하는 장꾼들이 많이 이용하던 길이었다. 그래서 옛날부터 사람의 왕래가 많았다. 또한 간재장과 판교장을 웅천장과 연결하는 길이 제배마을 앞에서 이 한길과 합류함으로서 이곳부터는 이용객이 더욱 많았는데 이 지점은 두란이 마을에서 북동쪽으로 약 1.5km 떨어진 곳이다.

이 지점, 즉 제배마을에서 볼 때, 그리고 한길에서 볼 때 두란이 마을은 들 안에 있는 마을이다. 그러니 두란이 마을을 말 할 때는 들  안 마을그리고 두란이 마을사람을 일컬을 때는 들 안 마을사람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또한 제배마을이나 한길에서 만난 두란이 마을사람에게 어디서 사시유? 하고 물으면 "들 안이서(들 안에서) 살어유" 또는 "들 안서 살어유"라고 하고, 어디서 왔시유? 하고 물으면 "들 안이서(들 안에서) 왔시유" 또는 "들안서 왔시유"라고 대답하였을 것이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지나다보니 마을이름이 들 안 마을→들안마을두란마을이 되고 들 안이→들안이두란이가 되지 않았을까?

 

 

 마을 이름은 자연스럽게 생겨 오랜 세월동안 변하고 또 변하며 전하는 것이기에 함부로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섣불리 건드렸다가 잘못을 저지를 수 있고 그 잘못된 정보를 마치 사실인양 믿어버리는 사람, 그리고 그 잘못된 정보를 자료로 활용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두란이 마을에 대한 나의 생각도 그런 잘못 된 정보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농로로 이용하는 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