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인 이야기/살아가는 이야기

벌초풍습 언제까지?

구슬뫼 2010. 9. 15. 11:56

벌초풍습 언제까지?

해마다 추석이 다가오면 사람들은 조상묘역의 풀을 말끔히 깎고 정리하는 벌초를 한다.

풀을 옛날에는 낫으로 정성스럽게 깎았다. 1980년대 말경 농촌에 예초기가 들어오기 시작하였지만 그 값도 만만치 않아 사는 사람도 적었을 뿐 아니라

조상의 묘역에 요란한 소리를 내는 예초기를 사용하기가 송구스러워 낫을 사용하는 게 보통이었다.

그러나 요즈음은 누구나 예초기로 깎기 때문에 벌초시기가 되면 산골짜기마다 예초기 돌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진다.

 

벌초풍습도 많이 바뀌었다. 옛날에는 고향에 사는 형제들이 으레 벌초를 하는 것으로 되어 있어

 객지에 나가 있는 사람들은 별 신경을 쓰지 않고 명절 때 귀향하여 성묘나 하면 되었었다.

그러나 이제는 모두들 도시로 나가 살기 때문에 고향에 사는 형제가 있는 집은 극히 드물어서 객지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짬을 내어 벌초를 하기 때문에 추석이 가까워지는 토요일이나 일요일이면 조상묘역을 찾는 차량들로 고속도로가 붐비기도 한다.

자손의 수가 적은 집은 조용히 와서 벌초를 하고 돌아가지만 자손이 많은 묘역은 벌초하는 날 전국에 뿔뿔이 흩어져 사는 삼촌, 조카, 사촌, 당숙, 육촌들이 모두 모여 벌초도 하고 잔치도 하는 벌초하는 날행사를 푸짐하게 하기도 한다.

이런 집안들은 자손들 모두 참석함을 원칙으로 하되 부득이 못 오는 사람은 돈으로 얼마씩 내도록 하여 행사경비에 보태기도 한다.

어떤 집은 노약자만 있어 품을 사서 벌초를 하기도 하나 농촌에는 품팔이 하는 일꾼도 없다.

그래서 농협이나 산림조합 등에선 묘1기당 얼마씩 돈을 받고 벌초를 해주는 대행사업을 한다.

추석 전에 벌초를 한 사람들은 막상 추석 때 성묘를 위해 또다시 고향을 찾기엔 불편함으로 아예 벌초 겸 성묘를 하고 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렇게 가을에는 벌초를 하느라 야단법석이지만 벌초를 하지 않는 묘역들이 한해가 다르게 늘어가고 있다.

자손이 죽어 찾을 사람이 없는 것인지, 이민을 간 것인지, 아예 묘역을 잃어버린 것인지, 알 수 없으나

벌초 철이 지나도 수북하게 풀이 있는 묘역들은 보기에 영 좋지 않다.

한때는 일선행정기관이 주선하고 새마을 봉사조직들이 나서서 무연분묘 벌초해주기 사업을 전개하기도 했었지만 그것도 일시적이었고

지속한다 해도 늘어가는 무연분묘를 감당하긴 역부족이다.

그렇게 한해 두해 묵으면 묘역엔 나무가 자라고 나무가 굵어지면 완전히 주인 없는 무장이 되고 만다.

등산을 하다보면 여기저기 무장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옛날에는 힘께나 썼던 집안인지 커다랗게 봉분을 만들고 그럴싸한 석물까지 갖춘 묘역도 있고, 그러지 못한 작은 묘역도 있지만

수북한 풀 더미에 덮였거나 다리통 보다 굵은 나무들이 봉분에 나 있는 묘역을 볼 때면 영 기분이 개운치 못하다.

이런 추세라면 벌초풍습도 얼마 못 가고 사라질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게 언제일까?

지금 60대들이 극 노인이 되면? 아니 50대들이 극 노인이 되면?

기껏해야 15-20여년 후엔 그리 될 것도 같다.

그리 되기 전에 벌초문화 아니 장묘문화에 획기적인 변화가 있어야 될 것 아닌가?

오늘도 벌초를 끝내고 앉아 부질없는(?)생각 한 번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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