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인 이야기/살아가는 이야기

아들이 보고 싶다.

구슬뫼 2010. 12. 19. 18:23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아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아들, 목숨이 다 하도록 한결같이 사랑한 아들, 내 너를 두고 어찌 눈을 감을 수 있을까? 그러나 저 하늘에서 오라고 하는구나. 23년 전에 가신 네 아버지가 부르는구나. 이제 할 수 없이 가야할 때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널 한번만 보고 싶구나. 그분의 마지막 소망은 그것이었다. 그러나 그 소망은 끝내 이루지 못했다. 2010.12.11아침 6시경 낙상하여 병원으로 옮겼으나 두어 시간 후 인사불성이 되고, 아들이 달려왔으나 아는지 모르는지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오후 6시 끝내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가셨다. 움직이지 못하는 어머니의 몸을 흔들며 딸들이 오열하고 아들도 꺼억꺼억 흐느꼈다.

 

 세상에 아들을 사랑하지 않는 어머니가 있을까마는 그 분의 아들사랑은 유별났었다. 전통적인 남아선호사상이 뼛속 깊이 배어있는 시골 옛 노인들이 대개 그렇듯이 그분의 아들사랑은 병적이라 할 만큼 심했다. 평생을 애성 바쳐 사랑하시면서 딸들은 농사일도 시키고 궂은일 다 시켰지만 아들은 절대 시키지 않고 키웠으며 좋다는 것은 모두 거두어 아들에게만 먹였다.

재산이 얼마 되진 않지만 몽땅 아들에게 준 것은 말할 것도 없으려니와 아들이 결혼즉시 분가하여 시내에 나가 잘 살고 있어도 힘에 부치게 텃밭을 가꾸어 콩팥 등 잡곡이며 고추 참깨 들깨, 호박을 비롯한 각종 채소까지 계속해서 대주었다. 심지어 정부에서 지원하는 노령수당도, 출가한 딸이나 사위들이 가끔 드리는 용돈도 모았다가 주면서 70이 다된 아들을 마치 어린아이처럼 걱정하며 온갖 정성 다 기우려 사랑하였다.

 그렇게 애지중지하는 아들인데 수년 전에는 며느리가 집을 나가고 늙은 아들 혼자서 살게 되자 밥이나 제대로 해먹는지? 반찬은 어떻게 하는지? 빨래를 또 어떻게 해 입는지? 안쓰러워 늘 가슴이 메어지던 어머니였다. 자신은 아들보다 더 열악한 시골집에 혼자 살면서 90나이에 여기저기 아프고 불편한 곳도 많았지만 그런 기색 나타내지 않고, 아들이 노모의 불편을 살피지 않아 속상하기도 하련만 불평한마디 안하고 어쩌다 딸들이 오라비가 (어머니한테)잘못한다고 할라치면 부르르 떨면서 아니다’ ‘잘한다.’ 극구 변명하고, 행여 다른 사람들이 아들이 잘 못한다고 할까봐 전전긍긍하던 어머니였다.

 

 그런 그분이 2개월 전 침대에서 떨어져(?) 병이 났다. 입원-퇴원-재입원-퇴원, 그렇지 않아도 가뜩이나 노쇠한 몸인데 크게 다치고 식사도 시원찮아 몸이 말이 아니게 쇠약해졌다. 병원에서 뼈를 비롯해 장기 등 이상이 없다고 했고, 몸이 약간 회복되는 듯하자 퇴원하여 아픈 몸으로 홀아비인 아들네 집에서 21일을 살다가 그것도 부담이 된다고 당신의 빈집으로 옮기니 막내딸이 추운 겨울동안이라도 따뜻하게 지내시자고 자기 집에 모셔갔다.

 그분은 그곳에서도 아들타령이었다. ‘아들이 보고 싶다’ ‘아들과 통화하고 싶다조르는 어머니! 그것은 저 세상으로 갈 때가 된 예감 때문에 한 마지막 소원이었든가 보다. 하지만 돌아가실 줄 꿈에도 생각 못한 딸은 오빠도 얄밉고 오빠만 찾는 엄마도 야속하여 당분간 통화를 시켜드리지 않았다. 아들도 막내에게 가신 어머니에게 전화를 드리지 않았다. 그러나 어찌 알았으랴 막내딸에게 간지 엿새 만에 낙상하여 12시간 만에 유명을 달리 하였으니 . . .

 

 수의가 입혀지고 얼굴이 가려지고 꽁꽁 묶여 관속에 들어가는 어머니를 보면서 딸들은 대성통곡을 하였다. 아들은 꺼이꺼이 흐느꼈다. 특히 막내딸의 새소리(울음과 섞어 하는 푸념)가 듣는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엄마, 엄마, 이럴 줄 알았으면 오빠와 통화를 시켜드리는 건데 마지막으로 엄마에게 그것도 못 해드린 게 한이 되네. 아이고 엄마, 어흐흐윽 . . .’

아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울고 있을까? 큰딸은? 작은 딸은? 셋째 딸은? 각각 무슨 생각을 하면서 저토록 슬피 우는 것일까? 생전에 못해드린 것을 후회하며 울겠지, 하지만 이제 울어 봐도 소용없고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인 것을 . . .

 

 

 겨울날씨답지 않게 푸근하긴 하지만 사랑하는 아들을 떨쳐놓고 가기 어려워 흘리는 어머니의 눈물인가? 지적지적 내리는 궂은 비가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착잡하게 하였다. 구슬픈 요령잡이의 가락에 맞춰 상여는 비를 맞으며, 흔들거리며, 질퍽거리는 농로를 따라 산으로 갔다. 드디어 먼저가신 남편 옆에 같이 묻혔다. 시신을 덮으면서 한차례, 모든 작업을 마치고 봉분제를 지내며 또 한 차례 상주들의 통곡이 듣는 이들의 눈시울을 적셨고 막내딸의 새소리가 또 다시 심금을 울렸다. 큰딸의 흐느낌이 마지막을 길게 장식했다. 저들은 어떤 후회를 하며 울고 있을까? 아들은? 큰딸은? 작은 딸은? 셋째 딸은? 그리고 막내딸은? 아마 막내딸의 귀에는 돌아가시기 전날까지 하시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리겠지. 그리고 그 목소리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들리겠지?

아들이 보고 싶다” “아들과 통화하고 싶다

 

 

명복을 빕니다. 부디 영면하소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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