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과 관련한 이야기
밥의 역사는 원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될 것 같다. 처음에는 토기에 물을 붓고 곡물을 익혀 먹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차츰 문명이 발달하면서 철로 그릇이 만들어 짐으로서 밥 짓는 법이 더욱 발전 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중국, 일본, 베트남 등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일찍이 밥을 주식으로 하였고 특히 기후가 쌀농사에 적합한 우리나라의 남부지역에서는 쌀을 이용한 밥이 식생활의 주를 이루어왔다.
그러나 좁은 땅덩어리에서 생산되는 쌀의 생산량은 한정되어 있는데 인구는 불어나고 그것은 식량부족으로 이어졌으며 게다가 쌀농사는 물을 반드시 필요로 하기 때문에 가뭄이라도 심하게 들어 생산량이 적어지면 그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서 보리, 콩, 조, 수수 등의 잡곡을 섞기도 하고 밤, 감자, 고구마, 시래기, 나물 등을 섞어짓기도 하였으며 죽이나 수제비, 국수 등 밀것으로 식사를 대체하기도 하였다. 특히 지독한 흉년이 들거나 난리가 나서 식량난이 더욱 심해지면 초근목피로 연명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수 천 년을 함께 해 온 밥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살펴보고자 한다.
1. 우리 민족과 함께 해온 밥
1)밥의 종류
○일반적인 밥: 쌀밥, 찰밥, 보리밥, 콩밥(강낭콩밥, 방콩밥, 풋콩밥, 동부콩밥, 완두콩밥), 팥밥, 오곡밥, 잡곡밥(조밥, 강냉이밥, 수수밥, 기장밥)
○식량절약용 밥: 콩나물밥, 시래기밥, 우거지밥, 무밥, 나물밥(쑥, 곤드래, 기타나물, 해조류), 감자밥, 고구마밥, 밤밥, 비지밥
○먹기 좋게 만든 밥: 비빔밥, 김밥, 볶음밥, 주먹밥
○영양밥: 대통밥, 굴밥, 대추밥, 돌솥밥, 장국밥(쇠고기를 잘게 썰어 양념하여 장국을 끓인 후 쌀을 넣어 지은 밥), 잡채밥
○행사용 밥: 약밥, 제삿밥(젯메), 사자밥
○상태로 본 밥: 흰쌀밥, 현미밥, 메밥, 찰밥, 반식기, 꽁보리밥, 누른밥, 서른밥, 삼층밥, 고두밥, 된밥, 진밥, 찬밥, 쉰밥,
○풍자적인 밥: 눈칫밥
2)밥에 얽힌 추억
(1)쌀밥이야기
쌀밥에 고기국은 부자의 상징이었으니 서민들은 쌀밥을 제삿날이나 추석, 설날 등 특별한 날이나 먹어보는 귀한 존재였다. 부자들도 쌀을 아끼기 위해 평상시에 쌀밥을 먹지 않고 보리나 잡곡을 반 정도 섞어서 지은 밥, 즉 반식기를 먹었다. 대개의 집에서 평소에 밥을 지을 때 쌀을 맨 위에 올려놓고 지은 다음 할아버지나 아버지 등 남자 어른들의 밥은 쌀을 좀 더 들어가도록 푸고 나머지 식구들은 쌀을 조금씩만 들어가게 펐으며 맨 나중에 푸는 어머니나 며느리의 밥은 거의 쌀이 없는 보리밥을 푸곤 하였다. 그렇게 아끼는 귀한 쌀이지만 어쩌다 귀한 손님이라도 오시면 그 귀한 쌀을 꺼내어 쌀밥을 해서 대접을 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쌀밥은 누구나 항상 그리워하는 선망의 대상이었고 오죽하면 꽃이 쌀밥처럼 하얗게 수북하다고 해서 이팝나무(쌀밥을 이밥이라고 하며 이밥이 이팝이 됨)라는 나무이름도 생겼다.
또 쌀밥나무라는 것도 있는데 이 나무가 세 번 꽃 피면 쌀밥을 먹게 된다고 해서 붙어진 이름이다. 이 나무는 일 년에 연거푸 세 번을 꽃피우는데
그 기간이 약 3개월, 즉 백일 정도 걸린다. 벼가 한창 자라나는 7월부터 꽃이 피기시작하면 8월을 거쳐 9월까지 꽃이 피고 9월 말이 되면 벼를 수확 할 수 있어 쌀밥을 먹게 되니 쌀밥나무라고 한 것이다.
표준말로는 배롱나무 또는 백일홍라고 하는데 이 나무 이름에도 가난한 서민들의 쌀밥을 그리는 염원이 담겨있음을 엿볼 수 있다.-
쌀밥과 관련한 우스갯소리가 있어 소개한다.
어느 집에 반가운손님이 오셔서 귀한 쌀을 한줌 꺼내다가 하얀 쌀밥을 해서 대접을 하였는데
그것을 본 꼬마가 평소에 그렇게 먹고 싶던 쌀밥을 보자 엄마에게 자기도 달라고 조르는 것이었다. 엄마는 쌀밥의 여분이 없는지라 “애야 손님이 이따가 남기거든 너를 줄게 기다려라”라고 달래었더니 꼬마가 침을 꼴깍꼴깍 삼키면서 문구멍으로 손님이 식사하시는 걸 보며 밥을 남기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를 알 턱이 없는 손님은 마침 시장하던 참이라 맛있게 먹다가 밥이 조금 남으니 이를 다 먹기 위해 물을 말아 버렸다. 이를 본 꼬마는 밥을 남기기는 틀렸는지라 “엄마 물 말았다. 으-앙” 하고 울음보를 터뜨렸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쌀밥이 얼마나 귀한 존재이며 선망의 대상이었는지를 짐작케 하는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2)꽁보리밥이야기
쌀을 전혀 넣지 않고 보리로만 지은 밥을 꽁보리밥이라 한다. 보릿고개를 넘긴 여름철에는 쌀이 이미 다 떨어졌으니 보리만 가지고 밥을 지을 수밖에 . . . 그것도 도정공장에서 잘 찧은 보리가 아니라 절구통에 넣어 절구로 대충 찧은 보리로 지은 밥은 거칠고 시커먼 꽁보리밥이다. 우선 보리를 한번 삶아 보리쌀을 만든 다음, 대바구리(소쿠리)에 넣어 시원하게 바람이 통하는 곳에 걸어놓고 끼니때가 되면 한 끼 분량씩 꺼내어 밥을 짓는데 그렇게 한 번 삶았던 보리로 지어도 꽁보리밥은 웅실거려 짤 씹히지가 않는다.
그래도 많은 농가에서 점심은 고구마로 때우고 저녁은 죽을 끓여 먹기를 예사로 하던 시절이었기에 꽁보리밥은 고급(?)에 속했다고나 할까? 싱싱한 열무김치와 뻘건 고추장을 넣고 척척 비벼서 먹는 그 맛이 일품이었다. 지금은 보리가 건강식이니 뭐니 해서 일부러 보리밥집을 찾아 별미로 먹는 사람들도 많지만 꽁보리밥은 가난한 서민들의 애환이 깃들어 있는 추억속의 밥이다.
(3)잡곡밥
쌀을 절약하기 위해 콩‧팥 종류와 조, 강냉이, 수수, 기장 등 잡곡류를 밥에 섞어짓기도 했지만 그래도 잡곡밥은 비교적 고급에 속했다. 농사의 시작인 못자리를 하는 날에는 찰밥을 해서 일꾼들을 먹여야 한해농사가 잘 된다며 찹쌀에 조와 팥을 섞어 밥을 해냈고. 모내기나 벼베기, 바슴(벼타작) 하는 날에는 콩이 듬성듬성 섞인 흰쌀밥을 해냈으며 생일날에는 팥밥을, 그리고 정월 대보름날에는 오곡밥을 해먹었다.
(4)나물밥
식량을 절약하기 위해 밥에 섞어서 지을 수 있는 것들은 모조리 이용하였다. 콩나물, 무우, 감자, 고구마, 밤은 흔히 밥을 해먹었고 시래기, 우거지, 쑥, 나물, 비지도 밥을 해먹었는데 무엇인가 섞어서 밥을 해먹을 수만 있어도 다행이었고 그나마도 형편이 닿지 않는 사람들은 쑥 등 나물에 밀가루를 슬슬 뿌려 이른바 쑥버무리를 해 먹었다. 어렸을 때 들은 바에 의하면 같은 마을의 이모(李某)라는 사람의 집에서는 쌀 한 되를 가지고 쑥을 뜯어다 버무려 먹으며 한 장도막(5일)을 살았다는 말도 있었을 정도였다. 그 집의 식구가 5-6명이나 되었으니 그 어려움이야 가히 짐작 할 만 하지 않은가?
미역 등 바다에서 나는 식물도 쌀에 섞어 밥을 해 먹었으니 바다 식물 중 우리고장에서 고말, 지름말 등으로 부르는 바닷말(톳)은 값이 싸서 서민들이 많이 사다가 밥에도 넣고, 된장도 끓여 먹었는데 밥이 부족하니 그것만 잔뜩 먹은 사람들은 변비로 고생을 하였고 그래서 막힌 어린이의 항문을 엄마들이 막대기로 파냈다는 이야기들을 흔하게 들을 수 있었다.
(5)기타 밥과 관련한 이야기
○가족을 식구(食口)라고 하였다. ‘밥을 먹는 입’이라는 뜻이다. 가난한 살림살이에는 “먹매가 제일 크다”는 말이 있었으니 먹고사는 게 생활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며느리를 맞아들이거나 아기가 태어나면 식구가 하나 늘었다 하고, 딸을 시집보내거나 아직 소년기에 있는 아들이 양자(養子)를 가거나 취직하여 객지에 나가면 식구하나 줄었다고 표현하였다. 오죽하면 식구를 줄이기 위해 어린 딸을 민며느리로 보내는 일까지도 있었으니 가난한 살림에 식구를 줄인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움을 더는 일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대가족제도였던 옛날에는 많은 식구가 한집에서 생활하였음으로 매끼니 마다 밥을 하는 양도 엄청났다. 큰 가마솥에 밥을 가득하게 한 다음 집안의 어른부터 차곡차곡 밥을 푸고 맨 나중에 며느리의 밥을 펐는데 식구 수에 꼭 맞추어 밥을 짓기 때문에 밥이 약간 누르거나, 풀 때 자칫 잘못하면 맨 나중에 푸는 며느리의 밥은 부족하기 일쑤였다. 밥을 많이 지으면 문제가 없겠으나 식량을 절약해야 하기 때문에 그럴 수도 없고 . . .
어떤 집에 식구 수에 비해 작은 솥에 밥을 해먹다보니 며느리의 밥은 언제나 부족했다고 한다. 결국은 고생 끝에 며느리가 죽었고 그 며느리는 솥이 적어 배고팠던 게 한이 되어 한 마리의 새가 되어 밤마다 구슬프게 울었는데 그 새가 “솥 적, 솥 적, 솥 적다” 하고 우는 소쩍새라는 이야기가 전설이 되어 전하고 있다.
○옛날 어른들은 “밥 먹을 때 말을 하면 복이 달아난다.”고 해서 식사시간에는 조용히 하도록 하였다. 또한 밥을 거의 먹고 조금 남으면 물을 말아 먹는 게 상례였다. 물을 말지 않고 마른밥그릇을 수저로 긁어 먹기라도 하면 “복이 달아난다.”고 하면서 반드시 물을 말아 먹도록 시켰다. 그리고 밥알을 흘리지 말고 먹을 것이며 혹시 흘리는 밥알은 주어먹도록 가르치었다. 모두가 한 알의 밥알이라도 소중히 여겨 남기지 않도록 하기위한 것이었다.
○온가족이 밥알을 남기지 않으려고 노력하여도 설거지를 하려면 적잖은 밥알들이 나오게 된다. 부엌일을 도맡은 주부들은 이런 경우에 밥알을 버리지 않고 모아서 활용하였다. 그런데 갓 시집온 며느리가 이를 소홀히 하여 수채 구멍(하수구)에 버려 허옇게 널려 있으면 비상이 걸렸다. 어떤 시아버지는 그 밥알을 일일이 주어다 깨끗이 씻어 말려서 며느리에게 주었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어떤 부잣집에서 허옇게 버리는 밥알을 이웃집 사람이 주어 말렸다가 그 부자가 망하고 흉년이 들었을 때 그 말린 밥알을 가져다 주었더니 잘 먹더라는 이야기도 전한다.
○어릴 때 선친께서 들려주신 이야기 한 토막, 어떤 마을에 천석꾼이 살았는데 그 아들이 됨됨이가 아주 못되었다. 그 도령이 밥을 싸가지고 글방에 다녔는데 어느 날 점심시간에 밥을 먹다보니 하얀 쌀밥에 어쩌다 보리가 한 알 섞여있었다. 그는 보리알을 젓가락으로 들어 올리면서 “에-잉, 내 밥에 보리가 웬 말이냐?" 하면서 버리더라는 것, 그가 집에 돌아와 보니 일꾼을 여럿 사서 농사일을 하는데 마침 쉬는 시간이라서 일꾼들이 술참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먹는 반찬 중에 맛있는 애호박나물이 있지 않은가? 그는 큰 소리로 "에-잉, 생일꾼이 무슨 애호박 나물이냐?"하면서 못 먹게 하더라는 것이었다. 그는 어른이 되어 부모로부터 많은 재산을 물려받았으나 결국 얼마 못가서 망하고 말더라는 이야기였다.
○김삿갓의 이야기 중에도 밥이 나오는 게 있다. 김삿갓이 어느 집에 하룻밤 묵게 되었는데 인심을 크게 쓰는 척 하면서 차려내온 밥상을 받아 먹어보니 밥이 쉬었더라는 것, 사는 모습을 보아 제법 밥술이나 먹는 집안 같은데 나그네에게 밥 한 그릇 주기가 아까워 쉰밥을 주는 주인이 괘씸하기 이를 데 없다. 식사를 먹는 둥 마는 둥 끝내고 잠자리에 들기 전 주인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누어 보니 무식한 놈이 건방만 잔뜩 떠는 게 아닌가? 다음날 김삿갓은 주인에게 밥도 잘 얻어먹고 하룻밤 신세도 졌으니 “이 집은 인심이 후하여 나그네에게 대접을 잘하여 기리 복은 받을 지어다”라는 글을 써준다고 하였다. 주인은 약간의 노자까지 내어 놓으면서 좋아하였다. 김삿갓을 붓을 들어 십자가오십식(十者家五拾食=망할 놈의 집이라 쉰밥만 먹는다)라고 써서 주고 떠나버렸는데 그 주인은 글씨를 모르는지라 오랫동안 벽에 붙여놓고 사람들에게 자랑하더라는 이야기이다.
2. 밥의 대체음식
1)죽
(1)죽의 종류
○밥대신 먹은 죽: 흰죽, 보리죽, 콩죽, 팥죽, 잡곡죽, 나물죽, 밀기울죽, 푸레미, 호박죽
○보양죽, 별미죽: 닭고기, 쇠고기 등을 넣은 고기죽, 붕어 등 민물고기를 넣은 어죽, 조기, 홍합, 전복 소라 등을 넣은 어패류죽,
○환자죽: 녹두죽, 전복죽, 잣죽, 깨죽, 채소죽, 우유죽(타락죽: 찹쌀을 갈아 우유를 넣고 쑨 죽), 장국죽, 한약재를 넣은 한약죽
○쑤는 방법에 따른 죽: 쌀을 통으로 쑨 응근죽, 쌀알을 굵게 갈아서 쑨 원미죽, 완전히 곱게 갈아서 쑨 무리죽(또는 비단죽)
○아기들의 이유식으로 쑨 죽: 암죽(쌀이나 밤을 으깨어 쑨 죽)
(2)죽에 얽힌 추억
밥을 해 먹을 수 없는 사람들은 할 수 없이 죽을 끓여 먹어야 했으며 살림이 웬만한 집에서도 양식을 절약하기위해 저녁은 죽을 먹는 게 일반적이었다. 죽도 죽 나름, 쌀이나 잡곡을 많이 넣고 톱톱하게 끓인 죽은 맛도 있고 요기도 되지만 곡식을 조금 넣고 끓인 희멀건 죽은 그야말로 물로 배를 채우는 격이라 한 그릇을 먹어봐야 물 한 그릇 먹은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그것을 먹고 기운을 차리기는 어려웠다. 오죽하면 삐쩍 마른 사람이 비실비실하면 “이사람 피죽도 한 그릇 못 먹었나?” 하고 핀잔 겸 안쓰러움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그나마 쌀이나 곡식이 없으면 곡식 가루를 넣고 묽게 쑤었으니 이를 푸레미(메밀가루를 넣고 묽게 쑨 메밀푸레미가 대표적임)라 하였고 이는 씹을 것도 없었으며 갖가지 나물을 넣은 나물죽도 많이 끓여먹었다.
청빈한 선비가 죽 그릇을 앞에 놓고 거울로 표현했다든지 죽속에 보름달이 보인다고 하였다든지 하는 옛이야기도 전해오고 . . . 죽은 가난의 상징이었다.
2)밀것
(1)밀것의 종류
○수제비: 밀가루를 반죽하여 널빤지에 올려놓고 두께 5-6mm 정도가 되도록 홍두께로 민 다음 칼로 기다랗게 썰어 수제비가락을 만들고 애호박과 여린 호박잎 그리고 양념 등을 함께 넣고 끓여 만든다. 반죽한 다음 칼로 썰지 않고 손으로 조금씩 떼어 넣고 만드는 일명 뚝떡수제비도 해 먹었다.
○칼국수: 수제비보다 좀 더 정성이 많이 들어간다. 밀가루 반죽한 것을 수제비보다 더 얇게 두께 2-3mm 정도로 민 다음 칼로 길게 썰어 국수가락을 만든다. 기타 넣는 재료는 수제비와 비슷하나 여린 호박잎은 넣지 않는 게 보통이었다.
○기계국수: 국수집에서 기계로 빼는 국수를 사다가 집에서 끓여 먹었다. 대개 멸치 삶은 물로 맛을 내고 파 등 양념을 곁들여 먹었고 수제비나 칼국수보다 번거롭지 않아 많이 애용하였다.
(2)밀것의 추억
수제비, 칼국수, 국수 등을 통틀어서 밀것이라고 했다. 식사대용으로 밀것을 많이 해먹었지만 ‘혼인집’이나 ‘두레 먹는 날’ 등 마을잔치에서는 손쉬운 국수를 사용하였다. 그래서 요즈음도 결혼을 앞둔 사람에게 국수는 언제 주느냐고 물어보는데 혼인집에서 국수를 내어 놓는 풍습에서 유래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아무튼 집에서 해먹는 밀것은 밀가루를 절약하느라 넉넉히 해먹지 못하지만 잔치마당에서야 양껏 먹는 게 보통이었다. 어떤 사람이 잔칫집에서 국수를 일곱 그릇을 먹고 문지방(문턱)을 넘어가다가 걸려 넘어지고는 “밀것은 헛것이여” 라고 했다는 우스개소리가 있는가하면, 국수를 매우 빨리 먹는 사람이 막걸리 한 사발 마시기와 빨리 먹기 내기를 했는데 국수 먹는 사람이 이겼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3) 기타
○호박범벅: 잘게 썬 호박을 물에 넣고 밀가루나 밥 등과 함께 섞어 휘휘 저으며 끓인다. 너무 묽지 않도록 뻑뻑하게 끓여내면 맛 좋은 호박범벅이 된다. 게다가 얼쑥덜쑥한 강낭콩이나 풋콩을 까 넣으면 더욱 맛이 좋은 범벅이 되었다.
○개떡: 쑥개떡, 보리개떡, 밀개떡, 밀기울개떡, 쌀겨개떡 등도 끼니를 때우는 음식 중의 하나였다.
○쑥버무리: 쑥에다 밀가루를 뿌려 버무린 다음 쪄서 먹는 음식이었다. 쑥 뿐이 아니고 각종 나물, 느티나무, 무궁화나무, 모시 등의 여린 잎이나 아카시아 꽃도 밀가루와 섞어 버무려 먹었다.
○술빵: 밀가루 반죽에 술약(이스트를 그렇게 불렀음)을 섞어 채반(대나무로 엮어 만든 동글납작한 소쿠리)에 올린다음 쪄내면 잘 부풀어 올라 훌륭한 식빵이 되었다. 풋콩을 드문드문 섞어 찌면 더욱 맛이 좋았고 다른 대용식에 비하여 고급(?)스런 별미에 속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품을 사서 일을 할 때 술참으로 국수나 밥 대신 술빵을 내어 놓으면 일꾼들이 좋아하기도 하였다.
○고구마, 감자: 고구마와 감자는 가난한 사람들이 끼니를 때우는데 가장 많이 이용되었다.
○독사풀씨: 논에 난 독사풀의 씨가 익는 5월말이면 씨를 훑어다가 볶아서 먹었다.
3. 음식점에서 사먹던 밥
1)사 먹던 음식의 종류
음식점에서 먹는 밥은 크게 한식류와 면류로 나누는데 한식류에는 고급스런 한정식을 비롯하여 서민들이 즐겨 사먹던 백반에 각종 찌개를 덧붙인 찌개백반이 있었고 곰탕, 설농탕, 생선탕, 삼계탕, 보신탕(개장국) 등 각종 탕이 있었으며 이밖에 육개장, 국밥 등이 있었다.
면류는 국수(칼국수, 잔치국수)와 그리고 중국집의 우동과 자장면을 비롯한 짬뽕 등이 서민들이 즐겨 찾는 음식이었다.
이밖에도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중식류, 일식류 양식류에 많은 파는 음식이 있었으나 서민들이 즐겨 찾지 않는 것이거나 시대적으로 뒤떨어지는 것들임으로 생략한다.
2)음식점의 추억
(1)국밥(국말이)
시골장터의 쇠전(牛市場)머리에 허름한 포장을 쳐놓고 국밥을 파는 곳이 있었다. 김이 무럭무럭 나는 큼지막한 가마솥에서는 여전히 국물이 부글부글 끓고 얼굴 두툼한 아주머니가 바쁜 중에도 연신 맘씨 좋은 웃음을 헤헤 흘리며 투박한 투가리(뚝배기)에 넉넉히 담아 내놓는 국밥은 장꾼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먹거리였다. 뜨끈뜨끈한 국물 속에 밥과 함께 너절한 우거지, 뭉털뭉털한 선지덩어리, 간간히 섞인 양, 허파 등 쇠 내장고기들, 생각만 해도 군침이 넘어가고 게다가 텁텁한 막걸리라도 한잔 곁들이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였던 것이다.
(2)개장국
여름에 돼지고기는 잘 먹어야 본전이라는 말이 있었다. 실제로 여름에 돼지고기를 몇 점 먹으면 배탈이 나기 일쑤였다. 영양가 적은 보리밥에다 푸성가리(푸른 채소 등)만 먹어 허약해진 몸속에 갑자기 기름기 많은 고기가 들어오면 소화기관이 감당을 못해 배탈이 났던 것이었다. 그래서 서민들은 여름에 아예 돼지고기를 먹지 않았다.
그러나 개고기는 먹어도 탈이 없었다. 왜 그런가 하는 문제는 차치하고, 그래서 사람들은 삼복더위에는 복달임이라고 해서 개를 잡아먹는 게 보통이었다. 마을공동으로 개를 잡아 잔치를 하기도 하였고 몇 집이 합동으로 개를 잡아 나누어 먹기도 하였는데 여름철에 시장에는 개장국만 전문으로 파는 곳이 있어 장꾼들이 손쉽게 사먹을 수 있었다. 요즈음은 보신탕이라고 하는 개장국, 뻘건 기름이 둥실둥실 뜬 톱톱한 개장국 한 그릇을 땀을 뻘뻘 흘리며 먹고 나오면 한여름의 더위를 이길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3)장터국수
국말이나 개장국은 돈푼이나 만지는 소장수 등 부유계층(?)이나 사먹는 음식이었고 일반 장꾼들은 장터국수에 만족해해야 했다. 시장골목 후진 곳에 허름한 포장을 치고 국수를 파는데 국수를 삶아 건져서 수북이 쌓아놓고 한쪽에선 멸치로 맛을 낸 국물이 펄펄 끓는 가마솥에서 김이 무럭무럭 나면 그 구수한 냄새에 오가는 장꾼들이 침을 꿀꺽꿀꺽 삼키면서 잘도 모여들었다. 하얀 사기대접에 넉넉히 말아낸 국수를 젓가락으로 휘휘 저어 게눈 감추 듯 후딱 먹어치우고 국물까지 후루륵 마시고는 아쉬운 듯 입맛을 쩝쩝 다시며 일어서고 또 다음 장꾼들이 들어서고 . . . 그렇게 북새통을 이루는 붐비는 장터국수집이었다.
(4)꿀꿀이죽
1950년대- 1960년대 우리나라의 경제사정은 그야말로 최악의 수준이었다. 오죽하면 1961년 일어난 5.16군사정변(당시에는 군사혁명이라 했음)의 혁명공약 제2조에서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한다.”고 하였을까? 이때 나온 것이 바로 꿀꿀이죽인데 이 죽을 실제로 먹어 보았거나 본 게 아니고 말로만 들은 것이다. 우리나라에 주둔했던 미군들은 주식이 빵과 씨레이션, 고기 등이었기 때문에 식사 후 남는 음식이 그 부스러기들이었고 미군부대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 남은 음식들을 얻어다가 보리를 조금 넣고 개죽처럼 끓여 팔았는데 이게 바로 꿀꿀이죽이었다. 비록 남은 음식으로 끓인 죽이지만 고기조각이나 햄조각 등(왕건이라고 불렀음)이 섞여 영양가가 높고 맛도 좋았으며 게다가 값도 싸서(1961년: 5원) 막노동자들에게 인기 있는 음식이었다고 그 당시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5)자장면
이 이야기는 가난한 시절을 다루는 이야기가 아니지만 지금생각하면 우스운, 그러나 일반적인 사회현상이었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1980년 5월 5일 어린이날에 있었던 이야기이다. 유치원에 다니는 아들아이와 4살짜리 딸아이를 데리고 우리부부는 대천해수욕장에 바람을 쏘이려 나갔다. 해수욕장을 한 바퀴 돌고는 점심시간이 되어서 모처럼 나왔으니 온가족이 싱싱한 생선회라도 한 접시 먹을까 하고 평소에 잘 아는 ‘대구 횟집’이라는 곳에 들어갔는데 아들 녀석이 자장면을 먹고 싶다는 거였다. 생선회와 생선탕 그리고 기본으로 나오는 서비스 음식 등 훌륭한 음식을 마다하고 무조건 자장면을 달라는 것, 주인아주머니도 오늘은 어린이날이니까 아들의 말을 들어주는 게 좋겠다고, 자기네 음식점에는 다음에 팔아 달라고 하여 할 수 없이 자장면 집으로 자리를 옮겼던 생각을 하면 지금도 웃음이 난다. 그때는 그랬었다. 요즈음 아이들은 무슨 음식을 제일 좋아하는지 모르겠지만 옛날에는 그랬었다. 오죽하니 “장관 집 아이도 자장면을 좋아한다.”는 말이 있었으니 그 시절에 자장면은 아이들에게 최고의 인기가 있던 음식이었다.
4. 밥과 관련한 말 말 말
1)밥과 죽이 들어가는 속담 및 관용구
○고양이 죽 쑤어 줄 것 없고 새앙쥐 볼가심할 것 없다: 고양이가 먹을 얼마 안 되는 죽을 쑤어 줄 만 한 거리도 없고 조그만 생쥐가 볼가심할 만한 양식도 없다는 뜻으로, 너무 가난해서 아무것도 먹을 것이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곶감 죽을 쑤어 먹었나?: 곶감으로 죽을 쑤어 먹어 그리 기분이 좋으냐는 뜻으로, 실없이 웃는 사람을 핀잔하는 말
○곶감 죽을 먹고 엿목판에 엎드러졌다 : 곶감으로 쑨 맛있는 죽을 먹었는데 또다시 엿을 담은 목판에 엎어져서 단 엿 맛까지 보게 되었다는 뜻으로, 잇따라 먹을 복이 쏟아지거나 연달아 좋은 수가 생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굶기를 밥 먹 듯 하다: 굶는 날이 밥 먹는 날 보다 많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아무리 재미있는 일이라도 배가 불러야 흥이 나지 배가 고파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눈치 밥을 먹고 바늘방석에 앉다: 몹시 송구스럽고 난처한 처지에 있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다 된 밥에 재 뿌리다: 다 이루어진 일을 잘못되도록 훼방 놓다.
○다 된 밥에 코 빠치다: 다 된 일을 망가뜨리다.
○뒤주 밑이 긁히면 밥맛이 더 난다: 쌀이 떨어지면 더 밥이 먹고 싶어진다. 무엇이 없어지면 더 그리워진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먹고살기 위하여, 해서는 안 될 짓까지 하지 않을 수 없음을 이르는 말.
○밀것이 헛것이다: 밥에 비하여 밀것을 비하하는 말.
○밥그릇 앞에서 굶어 죽을 놈: 밥그릇을 앞에 놓고도 움직이기 싫어 굶어 죽을 놈이라는 뜻으로 몹시 게으른 사람을 비꼬는 말
○밥그릇이 높으니까 생일만큼 여긴다.: 1.조금 나은 대접을 받고 우쭐해하는 사람을 비꼬는 말. 2.못사는 처지에 어쩌다가 잘 먹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밥그릇만 높으면 제일인 줄 안다.: 먹는 것밖에 모르는 미련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밥그릇이나 축내다: 하는 일 없이 그저 밥이나 먹으며 하루하루 지내다.
○밥 먹는 개도 안 때린다: 밥 먹을 땐 건드리지 않는 것이다.
○밥 빌어다 죽 쑤어 먹는다: 밥이 없어서 남한테 겨우 빌어다가는 그대로도 못 먹고 죽을 쑤어 먹을 사람이라는 뜻으로, 게으른데다가 지견마저 없는 어리석은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밥상에서 인심 난다: 손님 밥상은 풍성하게 하라.
○밥술이나 먹는다: 돈푼이나 있고 먹고살만하다.
○밥줄이 끊어지다: 벌어먹고 사는 일터를 잃다.
○밥이 보약이다: 보약을 찾지 말고 밥만 잘 먹어도 건강하다.
○밥통이 떨어지다: 벌어먹고 사는 일터를 잃다.
○비단이 한 끼라: 1.호화롭게 살다가도 구차하게 되면 아무리 귀중한 것도 밥 한 끼와 바꾸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2.한번 몰락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사람은 일을 해야 입맛이 난다: 활동해야 밥맛이 난다는 뜻으로 놀면서 밥맛없다고 하는 사람을 비난할 때 씀.
○사흘에 피죽 한 그릇도 못 얻어먹은 듯하다: 비실비실하여 맥이 없는 상태를 표현하는 말.
○사흘에 한 끼도 못 먹은 듯하다: 비실비실하여 맥이 없는 상태를 표현하는 말.
○사흘에 한 끼 입에 풀칠하기도 어렵다: 늘 굶고 살 정도로 살림이 매우 가난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산 목에 거미줄 치랴: 산 사람은 쉽게 굶어 죽지 않는다.
○손자 귀여워하면 코 묻은 밥 먹는다.- 손자를 너무 예뻐하면 손자의 코가 묻은 밥을 먹게 된다는 뜻으로, 어리석은 이와 친하면 이익은 없고 손해만 입게 됨을 이르는 말
○쉰밥 고양이 주기 아깝다: 내가 갖기는 싫어도 남 주기도 싫다.
○시장이 반찬이다: 배가 고프면 반찬이 없어도 밥이 맛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식은 죽 먹기: 손쉬운 일을 일컬음.
○십시일반- 밥 열 술이 한 그릇이 된다는 뜻으로, 여러 사람이 조금씩 힘을 합하면 한 사람을 돕기 쉬움을 이르는 말
○어린애 친하면 코 묻은 밥 먹는다: 못된 사람과 친하면 해로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얻어먹는 놈이 된밥 찬밥 찾으랴. - 아쉬운 사람 조건을 따지지 않는다.
○염불에는 맘이 없고 잿밥에만 맘이 있다. - 하는 일에 마음을 두지 않고 이익만 계산한다.
○입에 풀칠하기: 겨우 먹고살기
○절에 간 색시 재에는 뜻[마음]이 없고 잿밥에만 눈이 간다.: 자기가 마땅히 하여야 할 일에는 마음을 쓰지 아니하고 잇속을 채울 일에만 관심을 기울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제 밥그릇 높은 줄만 안다: 수북한 제 밥그릇에 만족하여 우쭐대며 저만 제일인 듯이 어리석게 생각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종과 상전은 한솥밥이나 먹지: 종과 상전의 차이보다 더하다는 뜻으로, 너무 차등이 커서 한데 어울려 말도 할 수 없음을 이르는 말.
○죽 그릇에 그림자가 얼른 거린다: 죽이 매우 묽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죽 끓듯 한다. : 변덕이 심하다.
○죽도 밥도 아니다: 어중간하여 이것도 저것도 안 되다.
○죽 쑤다: 일을 망가뜨리거나 실패하다.
○죽 쑤어 개 준다: 애써 한 일을 남에게 빼앗기거나, 엉뚱한 사람에게 이로운 일을 한 결과가 되었음을 이르는 말.
○죽이 되 든 밥이 되 든: 일이 제대로 되든지 안 되든지 어쨌든.
○찬밥으로 점심하기라: 있는 찬밥으로 점심을 차린다는 뜻으로, 일이 매우 쉽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찬밥 더운밥 가리다: 어려운 형편에 있으면서 배부른 행동을 하다.
○찬밥 두고 잠 아니 온다: 대수롭지 아니한 것에 미련을 두고 단념하지 못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찬밥에 국 적은 줄만 안다: 가난한 살림에는 없는 것이 당연한 것인 줄 모르고 무엇이 부족하다고 하여 마음을 씀을 이르는 말.
○찬밥에 국 적은 줄 모른다: 살림이 가난하면 이것저것 없는 것이 많기 때문에 오히려 별로 불편하지도 아니하다는 말.
○콩밥 먹고 싶으냐?: 징역가고 싶으냐?
○콩밥 쉽게 먹은 놈 똥 눌 때 알아본다: 일을 거칠게 처리하면 뒤에 나타난다.
○한솥밥 먹고 송사한다: 한집안 또는 아주 가까운 사이에 다투는 경우를 이르는 말.
○한솥밥 먹고 한자리에서 자다: 침식을 같이 하다. 부부가 되다.
○한솥밥을 먹다: 같은 식구로 생활 한다.
○한술밥에 배부르랴: 1. 무슨 일이든 초반에 큰 효과를 얻을 수가 없다는 말. 2. 힘을 조금 들이고 많은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말.
2)밥의 비유
○개밥에 도토리: 함께 섞이지 못하고 따돌림을 당한다.
○눈치 밥: 남의 눈치를 보아 가며 얻어먹는 밥.
○밥값 -밥을 먹은 만큼의 일이나 대가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밥그릇 - 밥벌이를 위한 일자리를 속되게 이르는 말.
○밥도둑 - 1.일은 하지 않고 놀고먹기나 하는 사람, 2.밥맛을 돋우어 밥을 많이 먹게 하는 맛있는 반찬.
○밥맛없다: 아니꼽고 기가 차서 정이 떨어지거나 상대하기 싫다
○밥맛이다: 밥맛없다와 같음.
○밥버러지 - 일은 하지 않고 놀며 밥이나 치우는 사람
○밥벌이 - 먹고살기 위해 하는 벌이, 겨우 먹고 살만큼의 벌이
○밥보 - 밥을 많이 먹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밥주머니 -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밥이나 축내는 쓸모없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밥줄- 벌어 먹고살 수 있는 방법이나 수단을 속되게 이르는 말.
○밥통- 밥만 축내고 제구실도 못하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찬밥- 중요하지 아니한 하찮은 인물이나 사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철밥통- 신분보장의 확실함을 믿고 최선을 다하지 않는 공무원을 비꼬는 말.
○코 묻은 밥- 어린아이의 밥.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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