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분야/향토사랑

한자 말에 가려진 우리말 지명들

구슬뫼 2007. 6. 3. 17:20
 

  한자(漢字)말에 가려진 우리말 지명(地名)들


1 머리말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산마을로부터 굽이굽이 물줄기를 끼고 앉은 강가마을, 드넓은 들녘마을, 출렁이는 바닷가마을 등 우리가 사는 마을들은 예로부터 지역특성, 지형, 역사적 사실, 유명인의 출생, 풍수지리설, 전설, 기타 여러 가지 원인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름이 지어지고 변화하면서 오랜 세월을 전해 내려오고 있다.

 ○○골(골짜기라는 뜻, 굴이라고도 발음), ○○말(마을의 준말), ○○실, ○○뜸 등 전국 어디서나 비슷비슷하게 붙인 이름으로부터 아주 독특한 이름까지 고을마다, 마을마다 조상들의 지혜와 정감어린 사연과 때로는 애환을 간직한 채 산 역사를 지켜보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그 중에는 한자 문화권의 영향을 받아 한자말로 지어진 이름도 많이 있으나 순수한 우리말로 된 아름다운 이름들이 많음을 살펴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아름답고 정겨운 우리말이름들을 ‘골’을 곡(谷) 또는 동(洞)으로 한다든지 ‘새터’(새말, 새뜸)를 신기(新基), 신평(新坪), 신대(新垈)로 하는 등 한자로 표기하여 사용함으로서 그 순수함을 잃고 있을 뿐 아니라 노루목을 장항(獐項), 삿갓재를 약현(篛峴), 새재를 봉성(鳳城)이라고 좀 더 어려운 말로 바꿈으로서 세월이 흐름에 따라 본래의 우리말이름은 사라지고 한자로 표기된 이름만이 전해지는 경우가 많아 뜻있는 이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여기서는 이렇게 한자로 표기하여 순수함을 잃어가는 중에도 아직까지 우리말이름이 사라지지 않고 함께 사용되는 우리고장의 마을 이름들을 더듬어 그 아름다움을 되새겨 보고자한다.

 

2 우리말 이름을 가진 마을들

□ 대천(大川)을 ‘한내’라고해서 모를 사람은 별로 없다.

 일찍이 우리나라의 수도를 한양(漢陽)이나 경성(京城)이라 하지 않고 ‘서울’이라고 하였지만 이로 인한 불편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쓰기 쉽고 부르기도 좋아 더욱 정감이 가는 게 사실이다.

 이렇게 볼 때 대천시도 ‘한내시’라고 하였다면 어떨까하는 아쉬움은 나 혼자만의 부질없는 생각일지......

-새터 : 신평(新坪)   

-군들이(군두리) : 군입리(軍入里)

-나무장터 : 목장리(木場里)  

- 갓바위(까패) : 관암(冠岩)

- 굼마을→굼말→궁말 : 궁촌(宮村) 

- 굿고개(꽃고개) : 화현(花峴)

- 으름내 : 이천(伊川)

- 울바위 : 명암(鳴岩) ※ 명암과 이천의 이름을 따서 명천(鳴川)

- 소래, 안소래, 밧소래 : 내송(內松), 외송(外松)

- 노루목이 : 장항(獐項), 녹문(鹿門) ※내송과 장항을 합해 內項

- 쪽실, 족실 : 남곡(藍谷) 

- 거먹개 : 흑포(黑浦), 현포(玄浦)


□ 주포지역은 오랫동안 대천을 포함한 보령북부지역이 소재지였던 곳으로서 우리말 이름과 한자말 이름이 병행하여 전해 오는 게 다른 지역에 비하여 적은 것 같다. 역사가 깊어 먼 옛날부터 마을이름을 한자로 표기해온 때문일까?

- 말우리 : 마명(馬鳴)

- 강수리, 안강수리, 밧강수리 : 강술(江述), 내강(內江), 외강(外江)

         ※ 마명과 내강의 이름을 따서 마강리(馬江里)

- 칡머리 : 갈두리(葛頭里) 

- 가줄, 가지울 : 지동(枝洞, 芝洞)

- 배재산 : 주계산(舟繫山)

 ※ 옛날에는 이 산밑까지 바닷물이 들어와 이산에 배를 매어 놓았기 때문에 배재산 이라고 하였다 하는데 요즈음 이 산기슭에 전문대학이 들어설 계획이 서자 일부사람들은 배재산(培才山), 즉 인재를 길러낼 산이라고 그럴듯하게 꾸며 말하는 이도 있으나 ‘배재산’은 순수한 우리말임을 알아야하겠다.


□ 주교는 면이름 자체가 우리말인 ‘배다리’를 한자로 표기한 말이다. 옛날에는 이곳까지 바닷물이 들어왔으므로 배다리, 즉 배로 이어서 만든 다리가 있었던 곳이라서 이곳 마을이 그대로 배다리가 되었고 이를 한자로 주교(舟橋)라고 한 것인데 1988년 주포면에서 분리하여 면으로 독립할 때 주교를 면이름으로 정했던 것이다.

-배다리 : 주교리(舟橋) 

- 벌말 : 벌리(伐里)

- 울개 : 명계리(鳴溪) - 개울물이 소리를 낸다하여 붙인 이름

- 솔섬 : 송도(松島) 

- 대섬 : 죽도(竹島) 

- 은개 : 은포리(隱浦)

- 나물 : 목리(木里) 

- 노루목이 : 장항(獐項) 

- 안터 : 내기(內基)

- 대섶말 : 죽림리(竹林), 죽촌(竹村) 

- 새말 : 신촌(新村)


□ 오천면은 육지와 많은 섬으로 이루어진 곳으로서 마을이름도 다양하게 전해지고 있으며 따라서 우리말을 한자로 표현한 것도 많이 있음을 찾아볼 수 있다.

-솟재, 큰솟재, 작은솟재 : 우치(牛峙), 대우치(大牛峙), 소우치(小牛峙)

- 풋살이 : 초전(草箭) - 고기잡이 살을 많이 매던 곳

- 심기댕이 : 신촌(新村) 

- 가승구지 : 진곳지(津串之) 

- 밤까지 : 율변(栗邊) 

- 섯바탱이 : 석소탕(石所湯)

- 소해, 수해 : 우포(牛浦)

- 가그말 : 오암(烏岩), 오동(烏洞) - 가그매(까마귀)바위 아랫마을

- 매미골 : 선동(蟬洞) - 매미 바위 아랫마을

- 지픈골 : 심동(深洞)

- 여수해 : 여소포(如所浦), 호포(狐浦) - 여수(여우의 사투리)처럼   생긴 지형이라 함.  ※ 오암과 호포의 이름을 따서 오포리(烏浦)

- 돌고개 : 석현(石峴)  ※ 주포면 연지리로 편입된 갈두와 석현의   이름을 따라 갈현리(葛峴)

- 웅개, 안웅개, 밧웅개 : 웅포(雄浦), 내웅(內雄), 외웅(外雄)

- 돼미망 : 도미항(道美項)

- 도투머리 : 저두(猪頭) - 돼지머리처럼 생겨 지은 이름(원산2리)

- 시루섬 : 증도(甑島) 

- 빼섬 : 추도(錐島) 

- 검은여 : 흑도(黑島)

- 나무섬 : 목도(木島) 

- 왁새섬 : 목도(鶩島)

- 달월이 : 월도(月島) 

- 누렝이 : 황도(黃島) 

- 빗갱이 : 횡견도(橫犬島) 

- 빈섬, 빈육도 : 허육도(虛陸島)

- 사슴이 : 녹도(鹿島) 

- 여슴 : 호도(狐島)


□ 천북지역은 우리고장의 맨 북쪽에 자리하여 옛날에는 그 소속이 홍성지방과 보령지방으로 교차하면서 조선말에는 오천군 시대를 거쳐 1914년 보령군 소속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두룸개 : 학포(鶴浦) - 개(바다)가 둘러있다는 뜻

- 마룻들 : 종평동(宗坪洞)

- 밤섬 : 율도(栗島) - 학성리지역, 섬이 간척공사로 육지가 됨.

- 오랑캐골 : 호동(胡洞) 

- 저뜨기 : 혜독동(惠篤洞)

- 늘문이 : 판문(板門) 

- 열문이 : 열호동(烈湖洞)

- 무쇠점 : 수철리(水鐵里) 

- 밀파실 : 밀포동(密浦洞)

- 수문개 : 은포동(隱浦洞)

- 진구지 : 장곳(長串)※ 장곳과 은포를 합해 장은리(長隱里)

- 텃골 : 화곡동(禾谷洞) 

- 곰내 : 웅천동(熊川洞)

- 덕머리(덩머리) : 덕두(德頭) 

- 숫골(숙골) : 수곡(水谷)

- 농고개 : 농현(農峴) 

- 말마리 : 마촌(馬村) 

- 새터 : 신촌(新村)

- 댓고개 : 죽현(竹峴) ※ 신촌과 죽현을 합해 신죽리(新竹里)

      

□ 청소지역은 예로부터 물이 좋고 토지가 비옥하여 살기 좋은 고장이었다고 하는데 우리말 이름을 한자로 표기하여 같이 전하는 마을이 다른 지역에 비하여 많지 않다.

- 참나무정이 : 진목정이(眞木亭) 

- 대숲말 : 죽하(竹下)

- 뱀골 : 사동(巳洞)※ 진목정과 죽하를 합해 진죽리(眞竹里)

- 늑적골 : 능동(陵洞) 

- 시드물 : 풍정(楓井) 

- 대숲말 : 죽림리(竹林) 

- 돌캐 : 석포(石浦)  

- 망굴 : 마동(麻洞)

- 옷밥리→옷뱀이 : 의식(衣食) - 옷과 밥이 넉넉한 마을이란 뜻

- 거누물 : 건정(乾井) 

- 새터 : 신대(新垈)

- 느랏골, 안느랏골, 밧느랏골 : 어전(於田) -건정과 어전을 합해   정전리(井田里) 

- 새재 : 봉현(鳳峴) 

- 성골 : 성곡, 성동(城谷, 城洞)

- 통골 : 통곡(桶谷) 

- 돌판 : 석반(石磻) 

- 따블 : 뇌곡(耒谷)


□ 오서산(烏棲山 : 791m)과 성주산(聖住山 : 680.4m)사이에 분지를 이룬 청라면은 예로부터 풍수지리설을 믿는 사람들의 큰 관심을 모아온 곳이다. 오성지간에 만세영화지지(烏聖之間萬世榮華之地) 즉, ‘오서산과 성주산사이에 영원토록 영화를 누릴 땅이 있다’하여 많은 양반들이 이곳에 낙향하여 살아왔다고 하는데 아무튼 일찍이 유식한 양반들이 많아 한자로 된 마을 이름만을 사용하여 왔는지는 모르지만 이 지역도 우리말과 한자말이 같이 사용되는 마을이름이 많지 않다.

- 다리재→다리티 : 월치(月峙) 

- 울티 : 명대(鳴垈), 운대(雲垈)

- 스므고개 : 스므티(스므峙) 

- 안골 : 내곡(內谷)

- 휘유고개 : 백현(白峴)※ 내곡과 백현을 합해 내현리(內峴)

- 밥산 : 박산(朴山) - 산모양이 밥그릇처럼 수북한 모습이란 뜻

- 개미벌→갬발 : 의평(蟻坪) 

- 가느실 : 세곡(細谷)

- 버듯골 : 유곡(柳谷) 

- 벌정자 : 평정(坪亭)

- 여술 : 호동(狐洞) 

- 담안 : 장내(墻內 長內)

- 장굴, 윗장굴, 아래장굴 : 장동(長洞, 上長洞, 下長洞)

 ※ 장동과 서산(西山)을 합해 장산리(長山里)

- 장밭, 윗장밭, 아래장밭 : 장전(長田, 上長田, 下長田)

- 우수고개, 위수고개 : 위현(渭水峴)

 ※ 장전과 위현의 이름을 따서 장현리(長峴里)

- 시루성이 : 증성(甑城) 

- 누르실 : 황곡(黃谷)

- 돌모루 : 석우(石隅) 

- 용머리, 윗용머리, 아래용머리 :용두(龍頭)

     ※ 황곡과 용두의 이름을 따서 황용리(黃龍里)


□ 남포의 ‘남(藍)’자는 쪽풀남으로서 옛날에 쪽풀이 많이 자생하였던 지역이 아닐까하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봉덕리에는 ‘쪽골’이라는 골짜기가 있고 인근 대천시에는 남곡동(藍谷=쪽실)이 있어 더욱 그런 생각을 떠올리게 하는데, 하지만 ‘쪽개’라든가 ‘쪽포’또는 이밖에 이와 비슷한 이름이 전하지 않아 너무 비약적인 가정에 불과하다고 단정 지으면서도 못내 아쉬운 심정은 무슨 때문일까.

※ 쪽풀 : 마디풀과(蔘科)에 속하는 한해살이풀로서 잎은 남빛 물을 들이는 물감으로 사용함.

- 다리을, 달을, 달월, 큰달월, 작은달월 : 달산(達山, 大達, 小達)

  ※ 뒷산이 달처럼 생겨 붙인 이름이라함.

- 번던말 : 평촌(坪村)

- 불뭇골 : 야동(冶洞) - 지금은 불뭇골(남포중학교 근처)은 없어지고 그에서 비롯된 ‘야동’이란 말이 남아 전해지고 있다.

- 점말 : 점촌(店村)

- 고두머리 : 환리(環里)- 지형이 고두(고리)처럼 생겨서 붙인 이름

- 산줄→삼줄 : 삼현(三鉉→三賢)

- 새말, 윗새말, 아래새말 : 신흥(新興, 下新, 上新), 신촌(新村)

- 골말 : 곡촌(谷村)

- 텃골, 위텃골, 아래텃골 : 기동(基洞, 上基, 下基)

  ※ 양촌(陽村)과 기동의 이름을 따서 양기리(陽基里)

- 개목 : 의항(蟻項) 

- 밤섬 : 율도(栗島)  - 독골 : 옹곡(雍谷)

- 말굴 : 마동(馬洞) 

- 대섬 : 죽도(竹島) 

- 보리섬 : 맥도(麥島)

- 용머리 : 용두(龍頭) 

- 대자울 : 척동(尺洞)


□ 곰내는 구룡리에서 노천리의 가라티와 사그내 사이로 흐르는 냇물의 이름이다. 이 냇물의 이름을 한자로 표기하여 웅천(熊川)이라 하였고 이 이름을 따서 웅천면이라고 하게 된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서부지역만이 웅천면이었고 동부지역은 고읍면(古邑面)이었는바 1914년 통폐합되어 지금의 웅천면이 된 것인데 이를 순수한 우리말로 ‘곰내면’이라고 하였다면 어땠을까하는 욕심(?)도 가져보게 된다.

※ 지금 웅천천이라고 부르는 하천은 원래 한내(남포한내)라고 하던 것을 근래에 와서 행정편의상 웅천면에 있으므로 웅천천(熊川川)이라고 한 것임.

- 벌말 : 평리(坪里) 

- 새터 : 신기(新基)

- 성굴, 밧성굴, 안성굴 : 성동리(城洞, 外城, 內城)

- 한내 : 대천리(大川) 

- 두루니 : 두명리(杜鳴)

- 곳부래 : 화망(花望) 

- 갓굴 : 관동(冠洞) 

- 홀뫼 : 독산(獨山)

- 낫물 : 오수(午水) 

- 배다리 : 주교(舟橋) 

- 너분들 : 광암(廣岩)

- 가랏티(갈밭) : 노전(蘆田)


□ 주산면에는 시루뫼라는 마을이 있는데 이를 한자로 표기하여 증산(甑山)이라고 한다. 어떤이들은 마을모양이 둥그스름한 시루(떡을 찌는 그릇)처럼 생겨서 그리 부르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매우 잘못된 것임을 지적하고자 한다.

 지난 1990년 당시 부여박물관 신○○관장의 특강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분 말에 의하면 여러 지방을 돌아다녀보면 ‘시루’ 또는 ‘증(甑)’이라는 말이 들어간 지명을 가끔 만나게 되는바 그런 곳에는 반드시 성(城)이 있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시루(甑=시루증)’라는 말은 성과 통한다는 말이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이 시루뫼 마을에는 옛 성터의 흔적이 남아 전하고 있으며 이 마을 옆으로 성너머라는 마을도 있다. 또한 그뿐이 아니다. 청라면 향천리의 시루성이(甑城 : 증성)에도 옛 성터의 흔적이 남아있으니 더욱 확실하지 않은가. 다만 오천면 원산도 옆에 시루섬(甑島 : 증도)이 있는데 이곳에는 성터의 흔적이 아직 발견되지 않았고 위치 또한 성이 있었을 것 같지 않아 이곳만은 모형을 따라 지은 이름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이곳 시루섬에도 성터의 흔적이 발견되었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 시루뫼 : 증산리(甑山)  

- 돌고개 : 석현(石峴)

- 소이섬(쇠섬) : 우도(牛島) 

- 버들 : 유곡(柳谷) 

- 숫골(숙굴) : 수곡(壽谷) 

- 짓재 : 지치(芝峙) 

- 거북뫼 : 구산(龜山) 

- 제배(제비바위) : 연암(燕岩)

- 밤나무골 : 율동(栗洞) 

- 샘실 : 정곡(井谷)

- 동실 : 동곡(東谷) 

- 삿갓재 : 약현(蒻峴) 

- 곰재 : 웅치(熊峙)


□ 미산과 성주지역은 높은 산들의 줄기를 따라 이루어진 분지와 골짜기로 마을들이 형성된 곳으로서 우리말과 한자말이 함께 전해지는 마을이름이 매우 적은 것 같다.

더구나 지금 한창 진행 중인 보령댐건설공사가 완료되면 미산면 소재지인 평라리를 비롯하여 용수리, 풍계리, 늑전리 일부등 4개 법정리 6.44㎢가 물에 잠길 계획으로 있어 많은 마을이름들이 사라져 버릴 것이다.

-용바위 : 용암(龍岩)

- 물줄 : 수현(水絃) ※ 용암과 수현의 이름을 따서 용수리(龍水里)

- 자라실 : 별곡(鼈谷)

- 새재, 윗새재, 아래새재 : 봉성(鳳城), 조령(鳥嶺, 上鳥, 下鳥), 조치(鳥峙)

- 구리앗, 굴앗, 구리말 : 늑전(勒田), 동달이(銅達)

- 안터 : 내기(內基) ※ 내기와 평촌(坪村)의 이름을 따서 내평리(內坪里)

- 깊은골 : 심동(深洞) 

- 띄목이(뜸부기) : 모항(茅項)

- 은고개 : 은현(隱峴)


3 맺는 말

 위와 같이 우리지역 지명들 중에 우리말과 한자말이 함께 사용되는 마을이름들을 찾아보았다.  이 글을 쓰면서 새삼 느낀 것은 내가 태어나서 지금껏 살아오고 있는 내 고장에 대하여 나 자신도 모르는 게 너무도 많다는 것이다.

 대천의 명천(鳴川)을 울음내(으름내를 울음내가 변한말인줄 잘못 안 것)의 한자표기일 것이라고 생각하였으나 명암(鳴岩)과 이천(伊川)의 이름에서 비롯된 것이라든지 내항(內項)은 항구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생각을 하였으나 내송(內松)과 장항(獐項)의 합해진 이름임을 알게 되었으며 또한 우리말이름을 한자로 표기할 마땅할 글자가 없을 때는 소리 나는 대로 아무글자나 부친 예도 있고 본래의 뜻과는 엉뚱한 뜻의 한자말로 쓴 경우도 많이 있음을 찾아볼 수 있었다.

 주산면 소재지인 ‘간재’를 간치(艮峙)로 한 것, 동오리와 미산 늑전리에 걸친 ‘멍덕봉’(벌의 멍덕처럼 생겨서 붙인 이름)을 명덕봉(明德峯)으로 한 것, 청라면 라원리의 일부인 ‘자잣골’을 자자동(自紫洞)으로 한 것 등이 모두 소리가 비슷한 글자를 붙여 만든 것으로 짐작되고 본래의 말뜻과 엉뚱한 한자말로 표현한 것은 수렁이 많아 ‘수랑골’을 주동(酒洞=주산면 야룡리 일부) 또는 주항동(酒缸洞=천북면 장은리 일부)으로 표기하여 술항(술항아리)골로 만든 경우, 파도가 밀려든다는 ‘밀파실’을 밀포(密浦)로 한 것 등이 그 대표적인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옛날에는 기록에 모든 지명을 한자로 표기하려 하였고 특히 글줄이나 읽었다는 양반님네들은 더욱더 고상(?)한 한자를 사용하려는 경향이 있다 보니 아름다운 우리말 마을이름이 자꾸만 사라진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근래에 와서는 설상가상으로 행정기관에서 행정편의 위주로  ○○1리, ○○2리, ○○3리 등으로 부름으로서 고유의 우리말 마을이름이 사라져가는 추세에 부채질을 하는 격이 되고 있다.  배다리, 시루성이 자라실을 주교2리, 향천2리, 평라2리라 부르고 옷밥리, 가그말, 밤나무골을 죽림3리 오포1리, 황율2리라고 해서야 정겨운 맛이 안 나는 것은 비단 나 혼자만의 느낌은 아니리라.  오랜 세월동안 한자의 틈바구니에서 이리저리 뒤채이며 사라지다가 일제시대를 거치는 동안 수모를 당하고 이제 우리 것을 되찾을 시기이건만 획일적인 행정용어식 이름에 다시 그 순수함을 잃어서야 되겠는가. 우리 모두 고유의 우리말 마을이름을 찾는데 앞장서야하겠다.

 지명을 고찰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로서 어떤 단면적인 시각으로 보아서는 안 되고 역사학, 언어학, 지리학, 민속학, 역학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공동으로 연구해야 비로소 올바른 조사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하는데 체계적인 조사연구도 없이 마구잡이식으로 마을이름을 나열하고 보니 우스운 글이 된 것 같다.

 다만, 보잘것없는 이 글이 어떤 자료로서의 가치보다는 이 글을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고장 고유의 이름을 찾아야 하겠다는 마음을 들게 하고 나아가 우리말 마을이름을 아끼고 지켜나가는데 작은 보탬이라도 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크게 만족할 따름이다.

※실은 곳: 1994년 발행 대보문화 제 3집 /2006년 발행 향토사랑

덧붙임: 이글은 보령시의 지명만을 다룬 것이며 이 글을 쓴 1994년에는 대천시와 보령군이 따로 있다가 1995년에 보령시로 통합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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