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 명언

도둑을 감동 시킨 이야기

구슬뫼 2025. 3. 12. 11:55

조선 후기 홍기섭(洪耆燮)이라는 문신이 있었다.

그가 참봉직에 있던 젊은 시절 너무 가난해 끼니를 걱정할 정도였으나

청념하기론 그를 따를 자가 없었다고 하며

그의 다음과 같은 일화가 청구야담에 실려 후세에 전한다고 한다.

 

어느 날 밤 그의 집에 도둑이 들었다.

집안에 들어 온 도둑은 아무리 둘러 봐도 훔쳐갈 만한 게 없자 솥단지라도 떼어가려고 부엌으로 향했다.

방안에서 인기척 소리를 들은 홍기섭의 부인은 도둑이 부엌에 들어와 솥단지를 떼려고 한다며 남편에게 귓속말로 속삭이자~

홍기섭은 "그것을 떼어 가려고 하는 것을 보니 우리보다 형편이 더 어려운 사람 인 것 같소 그냥 가져가도록 하십시다". 하면서 태연하게 다시 잠을 청했다.

부엌에 든 도둑은 솥단지를 떼어가려고 솥뚜껑을 열어 보니, 한동안 밥을 해먹은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집주인이 측은하고 가엾단 생각을 하게 된 도둑은 낮에 다른데서 훔친 일곱 냥의 엽전 꾸러미를 솥단지 속에 넣어 두고 나왔다.

이튿날 아침에 홍기섭의 부인이 부엌에 들어가 보니

떼어간 줄로 만 알았던 솥단지가 제자리에 있을 뿐만 아니라 솥안에 누런 엽전까지 들어 있는 게 아닌가.

부인은 이는 필시 하늘이 우리 부부를 불쌍히 여겨서 내려준 것이 분명하니,

우선 땔나무와 식량이며 고기를 사면 어떠냐고 남편에게 묻자

홍기섭은 정색을 하면서 아내를 나무라는 것이었다.

이게 어찌 하늘이 내려 준 것이겠소? 이 돈은 틀림없이 잃어버린 자가 있을 터이니

돈의 주인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가 돌려주는 게 좋겠다며

돈을 잃어버린 사람은 빨리 와서 찾아가기 바란다고 방을 써서 대문에 붙였다.

이윽고 해가 질 무렵이 되어 지난밤 그 도둑이 그 집의 동정도 살펴 볼 겸 왔다가

대문에 써 붙인 글을 보고 이상한 생각이 들어 홍기섭 부인에게 물었다.

"이 집이 누구 댁이오?"

"홍참봉 댁이오."라고 대답하자, 다시 도둑이 저기 대문에 써 붙인 글은 무슨 뜻이오?"라고 물었다.

이에 부인은 그간의 이야기를 소상히 알려 주자

도둑은 무엇인가를 결심을 한 듯 홍참봉을 만나 뵙기를 청하였다.

홍기섭을 만난 도둑은 바닥에 엎드려 공손하게 절을 올리고

바로 자신이 어젯밤에 들렸던 도둑임을 밝혔다.

남의 집 솥 안에 돈을 잃어버릴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라면서

자신이 돈을 놓고 가게 된 사연을 자세히 설명하고 정중하게 돈을 받아줄 것을 청하였다.

그러자 홍기섭은 "나의 물건이 아닌데 어떻게 갖겠는가. 당장 가져가기 바라네." 라며 완강히 거절하였다.

도둑은 오늘 비로소 양반다운 양반을 보았다며

앞으로 절대 도둑질을 하지 않겠다고 맹세하여 도둑질 습관을 고치고 홍참봉의 하인이 되기를 자청했다.

이 같은 인연으로 인하여 홍기섭과 도둑은 서로 상부상조하며 서로의 가세(家勢)를 불려갔다.

그후 ​홍기섭은  한성판윤, 예조판서, 형조 판서 등 주요 벼슬을 두루 거쳤으며

유씨 성을 가졌던 도둑 역시 많은 덕을 쌓아서 유 군자로 불리게 되었다.

 

후세에 그의 손녀가 헌종 (憲宗)의 계비가 되었고 아들 홍재룡(洪在龍)은 익풍 부원군이 되는 바람에 사후에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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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검색해보면>

홍기섭(17761831)은 남양홍씨로 1802(순조 2)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810년 수찬이 되었으며, 1812년 교리로 승진하였다. 이듬해 사은정사(謝恩正使) 이상황(李相璜)과 함께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에 다녀왔으며, 1818년 대사간, 1821년 대사성을 거쳐, 다시 대사간이 되었다. 1823년 승지가 된 뒤 이조참의·예모관(禮貌官대사성·대사간 등을 거쳐, 1827년 산실청부제조(産室廳副提調)가 되었다. 같은 해 한성부판윤·형조판서·예조판서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1828년 부사 유정양(柳鼎養), 서장관 박종길(朴宗吉)과 함께 동지정사(冬至正使)로 다시 청나라에 다녀와 예조판서가 되었다. 내의원제조(內醫院提調)로서 왕세자가 병으로 죽자 양사(兩司)의 탄핵을 받았다. 1831년 대호군으로 재직 중 죽었다.

한편 손녀딸이 헌종(憲宗)의 계비가 되어 아들(洪在龍)이 부원군이 되었고, 홍기섭도 사후에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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