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 명언

열국지30-32

구슬뫼 2025. 3. 3. 08:51

 

열국지 30

"혈맹의 의식을 거행함에 대왕께서 피를 먼저 드신 뒤에, 중신들에게도 골고루 나눠 마시게 하시옵소서. 평원군과 저희들은 그 다음에 들기로 하겠습니다."

이렇게 군사 동맹의 의식이 끝나자, 초왕은 모수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내 오늘, 선생의 깨우침을 듣지 못했다면 나는 언제까지나 비겁한 왕이라는 조소를 면하기가 어려웠을 것이오. 그런 의미에서 선생은 우리나라의 귀객이기도 하오."

 

모수는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과찬의 말씀,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은 다만 조초(趙楚) 양국의 국운을 걱정하는 마음에서 대왕전에 무례를 저질렀사오니, 너그럽게 용서해 주시옵소서."

초왕은 크게 웃으며 말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는 그것이 바로 충성심이거늘 내 어찌 충신에게 벌을 내릴 수 있으리오. 만약 이후에 또다시 진군이 귀국을 침략한다면, 우리는 춘신군(春申君)으로 하여금 10만 대군을 이끌고 달려가 귀국을 도와 드리도록 할 것이오."

 

사태가 이렇게 되자, 모수를 경멸해 오던 19명의 수행원들은 얼굴을 들지 못할 지경이 되었다. 평원군이 군사 동맹에 성공하고 돌아오자, 조왕은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공자가 아니었던들 이런 어려운 일은 누구도 해내지 못했을 것이오." 그러자 평원군은

"아니옵니다. 이번 일은 모두가 모수선생의 공로 입니다. 모수 선생이 동행하지 않았다면, 저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왔을 것이옵니다." 하고 모든 공을 모수에게 돌렸다.

 

그리고 모수를 따로 모셔다가 융숭하게 대접하며 "오늘날까지 나는 사람을 보는 눈에 자신이 있다고 자부해 왔건만 선생을 너무도 잘못 보아 왔으니, 이런 부끄러운 일이 없소이다. 선생의 세치 혀는 백만 대군보다도 강했고, 선생의 비범한 기상은 천하를 덮고도 남음이 있었습니다. 나에게 섭섭한 마음이 계셨다면 잊으시고, 나를 바른 길로 인도해 주소서."

"무슨 말씀을 그리 하시옵니까! 공자께서 평소 고매하신 의리를 베풀어 주시지 않았던들 저 같은 것이 무슨 성명이 있으오리까."

의리로 맺어진 두 사람의 겸손은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열국지 31 : 위나라의 신릉군

 

초나라와 군사 동맹을 체결하고 나자, 이번에는 위나라와 군사 동맹을 추진해야 할 차례였다.

하지만 평원군은 위나라와의 교섭은 그다지 어렵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이유인즉, 현자 '四公子' 중의 한사람인 신릉군은 위왕의 아우로서 왕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는데다 평원군과는 평원군의 손아래 동서가 되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비록 국적은 다르지만, 평원군이 신릉군의 고매한 인격에 매료되어 자신의 처제와 혼인을 시켜 동서지간이 되었던 것이다.

 

평원군이 신릉군을 찾아가 군사 동맹의 필요성을 강조하니 신릉군은 즉석에서 찬성하고, 위왕의 허락을 간단히 받아 왔다. 위왕은 군사 동맹을 체결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을 했다. "진비(晋鄙)장군으로 하여금 국경 지대에 10만의 군사를 주둔시켜 두었다가, 진이 귀국을 침범하기만 하면, 즉각 병력을 출동시켜 귀국을 돕겠소." 그리하여 평원군은 큰 성과를 거두고 조나라로 돌아왔다. 그러면 신릉군이란 어떤 인물인가?

 

신릉군은 본시 병학가(兵學家)로서, 식객 3천 여 명을 거느리고 있는 현인 <四公子>의 한 사람으로, 백성들의 신망이 매우 두터웠다. 그는 누구에게나 겸허하였고, 어딘가 현사가 있다는 말을 들으면, 천리를 마다 않고 몸소 찾아가 집으로 모셔오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한 번은 대량성의 문지기를 하고 있는 '후생'이라는 70세 된 노인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말을 듣고, 일부러 그를 찾아가 자기 집으로 모셔 오고자 애쓴 일이 있었다.

그러나 후생노인은 정중하게 거절하면서,

"다 죽게 된 소인이 무슨 쓸모가 있다고 공자께서 저를 데려가려고 하시오. 찾아 주신 뜻은 고마우나, 저를 이대로 내버려 두시오." 신릉군은 자신의 집으로 모시겠다는 뜻을 거듭 요청했으나, 후생노인은 막무가내였다.

신릉군은 하는 수 없어 목로 집에서 술이라도 한잔씩 나누고 헤어지자고 했는데, 신릉군은 그 자리에서도 후생노인을 깍듯이 상좌에 모셨다. 그러자 후생 노인은 신릉군의 겸손한 태도에 깊이 감동되었는지 술이 몆 잔 들어가자 이런 말을 했다.

 

"소인은 너무 늙어 공자를 따라갈 생각이 없지만 , 그 대신 좋은 사람을 한 분 소개해드리리다" 신릉군은 그 말을 듣고 크게 기뻐했다. "그분이 어떤 분인지는 모르오나, 선생이 천거하시는 분이라면 꼭 찾아가 뵙겠습니다. 그 어른은 지금 어디에 계시옵니까?" "여기서 동쪽으로 10 리쯤 가면 푸줏간이 하나 나올 것이오. 그 푸줏간에서 칼잡이 노릇을 하고 있는

주해(朱亥)라는 사람이오. 세상이 그를 몰라주어 비록 푸주간 칼잡이를 하고는 있지만, 그 사람이야 말로 쓸 만한 인물일 것이오."

 

푸줏간에서 칼잡이를 하고 있다면 백정(白丁)이다. 백정이란, 누구나 멸시하는 최하층 천민이다. 그러나 신릉군은 평소부터 직업에 대한 귀천 관념 같은 것은 추호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아무리 귀족이라도 정신이 썩어빠져 있으면 그 사람이 바로 천민이요, 아무리 천민이라도 정신과 그에 따른 행동이 살아있으면 그 사람이 바로 귀족이라고 생각해 오고 있던 터였다.

 

열국지 32,

그러기에 백정이라는 직업은 신릉군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더구나 후생노인이 천거하는 사람이라면 예사인물이 아닐 것 같아서, 신릉군은 그 길로 주해라는 사람을 찾아 나섰다. 동쪽으로 10리쯤 가니 과연 푸줏간이 나왔다. 40쯤 되어 보이는 건장한 청년이 고기를 썰고 있었다.

"말씀 좀 물어 보겠습니다. 이곳에 혹시 주해라는 분이 계십니까?" "내가 주해요. 무슨 일로 나를 찾아오셨소?" 주해의 대답은 퉁명스럽기 짝이 없었다. 자기를 찾아 온 손님이 귀찮다는 듯 한 태도였다. 그러나 주해의 인상은 무척 순박하게 느껴져서 신릉군은 미소를 지으며 "실은 후생노인의 소개로 선생을 일부러 찾아 온 것입니다."

하고 말을 하며 , 자기소개를 한 뒤, 자기 집으로 동행해줄 것을 간곡히 요청하였다.

 

그러나 주해는 콧방귀만 뀔 뿐 상대조차 하려고 하지 않았다. "후생 노인이 망령이 드신 모양이구려. 내가 왜 당신을 따라갑니까? 그렇게 할 일이 없으시거든 집에 돌아가 낮잠이나 자시오. 나는 바쁜 사람이오."하며 아예 접근조차 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었다.

 

신릉군은 어쩔 수 없이 빈손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웬일인지 주해라는 인물에 이상한 매력이 느껴져서 신릉군은 그 후에도 4, 5차례 찾아 갔었지만, 주해는 번번이 퉁명스럽게 내 밷더니 나중에는 아예 묻는 말에 대답조차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 일이 있은 지 얼마 후의 일이었다.

 

진나라 장양왕은 위나라가 조나라와 군사동맹을 맺고, 자기네 국경 지대에 위군 10 의 병력을 주둔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크게 분노하면서 위왕에게 다음과 같은 협박장을 보내 왔다. "우리는 머지않아 군사를 일으켜 조도(趙都), 한단성을 점령하려 하는데, 위나라가 조나라를 돕기 위해 우리 국경에 10만의 병력을 주둔시켜 두고 있다고 하니, 만약 귀국이 조나라를 돕고자한다면 우리는 방향을 돌려 위나라부터 정벌할 것이오. 그런 줄 알고, 귀국이 망하지 않으려면 일체의 군사 행동을 삼가시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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