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인 이야기/살아가는 이야기

할아버지와 꼬까

구슬뫼 2014. 7. 3. 18:07


 세살 꼬마가 어찌나 영특한지 어른들을 깜짝깜짝 놀라게 한다.

두 돌을 20일 정도 앞둔 어느 날 엄마를 따라 할아버지가 입원한 병원에 위문 왔을 때의 일이다.

할아버지가 입은 환자복을 가리키며 할아버지 꼬까 입었다고 하자 하비! 꼬까 아니야(할아버지 입은 게 꼬까 아니야/ 할아버지라는 발음이 어려워 하비라 부름)라고 했다.

아이의 눈에도 환자복은 표 나는가 보다. 두 돌도 안 된 녀석이 그걸 알아보다니 . .

 

  그 후 두 돌을 맞았고 다시 보름쯤 지나 할아버지 집에 와서 며칠을 묵어갔다.

하루는 공원에 놀러 가기 위해 할머니와 저는 옷을 갈아입는 등 준비하는데 같이 가려는 할아버지는 입고 있던 그대로 검은색 계통의 옷에 쥐색 잠바만 하나 걸쳐 입자

하비 꼬까 없어?”라고 물었다.

할아버지는 이게 꼬까야라고 대답하자 아기가 꼬까 살 거야.”라고 한다.

아기 돈 있어?’ 하고 물으니 , 엄마랑 같이 살 거야.”라고 했다.

아이의 눈에 할아버지는 꼬까도 없어 칙칙한 옷만 입고 있는 게 측은했던가 보다. 그래서 제가 사주겠다는 것이다. 이거 참 . . .

 

저희 집에 돌아갔다가 한 달쯤 후에 또 할아버지 집에 다니러 왔다.

할아버지는 밝은 색 계통의 옷을 입고 있었기에 그 옷을 가리키며 이건 꼬까지? 할아버지 꼬까 입었지?’ 라고 묻자 , 누가 사줬어?”라고 되묻는다.

숙모가 사줬지(외숙모가 생일 때 사준 옷)’ 그리고는 한 달 전에 그 아이가 사준다고 한 말을 생각하면서

아기도 사 줄 거야?’ 라고 묻자 한다. ‘아기 돈 있어?’ 얼마 있어?’ 천만 원

엄마도 전혀 알려주지 않았다는데 어떻게 천만 원이란 말을 알까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 모두 깜짝 놀랐다.

다음날 다시 아기 돈 얼마 있냐고 물으니 천만 원이라고 대답한다.

그럼 어디 가서 할아버지 꼬까 사 줄 거야?’ 물으니 마트에 가서 살 거야

얼마짜리 사줄 거야?’ 하고 물으니 “5천원이라고 대답한다.

두 돌 하고 달포쯤 된 아이가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니 . . .

 

그로부터 두 달이 더 지나 6월이 되었다.(이제 하비가 아니고 할아버지라 부름)

통화에서 아기가 할아버지 꼬까 사 준다고 했는데 언제 사 줄 거야?’ 하고 물으니 사 줄 거야. 엄마와 같이 가서 사 줄 거야.”라고 대답하였고

다음날 아침 일찍 아이가 엄마에게 오늘 어디 갈 거야라고 물었다. ‘오늘은 어디 안 갈 거라고 대답하니                                                               기차 타고 가자. 할아버지 빠방타고  꼬까 사러 가자하는 게 아닌가?

전에 약속했고, 어제 전화로 말했으니 꼬까를 사주러 가자는 것이다.

수원에 사는 아이는 평소 엄마와 둘이 올 때 기차로 왔고 보령의 할아버지 집에 와서는 승용차를 타고 마트도 가봤고 공원이나 휴양림도 가봤기 때문에 기차타고 가자. 할아버지 빠방타고 꼬까 사러 가자고 한 것,

 

그 후부터는 어린아이가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부담을 가질까봐 다시는 꼬까이야기를 하지 않기로 했는데, 한달여가 지난 7월말 엄마가 할아버지 메리야스를 사드리려 옷가게에 갔다. 할아버지 꼬까를 산다니까 이녀석이 이것저것 마구 집어들면서 모두 사자고 하더라는 것이다. 결국 3장만 사가지고 할아버지집에 왔다. 도착하자마자  할아버지 꼬까 사왔다며 그 옷을 내어 놓기에 얼른 하나를 입었더니 "할아버지 좋아?"하면서 묻고 다음날에도 입고 있으려니 "할아버지 이거 누가 사줬어?" '응 아기가 사줬지' 하고 대답하자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세 살이면 늦은 아기들은 말도 제대로 못하는데, 그래서 말을 하는 것만도 기특한데 이 녀석은 그런 생각까지 하고 이렇게 대화가 가능하다니,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이 녀석이 커서 무엇이 되려고 이러는 것일까? 자못 기대가 되기도 하려니와 한편 걱정이 앞선다. 영특한 아이들을 제대로 교육시키지 못해 오히려 비정상적인 사람으로 성장하는 사례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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