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인 이야기/살아가는 이야기

휴대폰에서 친구의 이름을 지으며

구슬뫼 2013. 11. 1. 19:06

 휴대폰에서 한 친구의 전화번호를 지우려니 만감이 교차한다.

 그는 한평생 같은 직장에서 일한 동료였다. 나이는 나보다 두 살 아래지만 공무원에 입문한 것은 나보다 6개월이 빨랐고 풋내기 공무원 시절 웅천면사무소에서 3년여를 함께 근무하면서 자연스레 친구가 되었다, 자전거를 타고 같이 출장 다니던 일, 복잡한 업무로 짜증이 날 때 함께 대폿잔을 기울이며 푸념하던 일, 공휴일에 그를 포함한 젊은 직원들끼리 소섬(牛島)로 놀러 갔던 일, 낚싯배를 타고 바다에 나갔다가 멀미로 죽게 고생했던 일 등 갖가지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특히 내가 공무원 생활을 그만 두겠다며 사표를 내던진 일이 딱 한 번 있었는데 그때 그가 또 다른 직원과 함께 집에까지 찾아와 재고할 것을 종용하여 공무원 생활을 계속하게 되었던 일은 잊지 못할 일 중의 하나이다.

 

  그와 나는 12년 간격으로 군청으로 영전하여 다시 한 청사에서 줄곧 함께 근무하였는데 세월이 흘러 군()이 대천시와 통합해 보령시가 되었고 우리는 일선기관장이 되어 내가 먼저 웅천읍장으로 근무했고 그는 내 뒤를 이어 웅천읍장을 역임하였다. 이어서 그도, 나도 시청 과장을 거쳐 차례로 정년퇴임을 하였고, 같은 대천에 살면서 퇴직공무원 모임에서 만나 옛날의 우정을 이어가는 사이였다.

 

 그런데 갑자기, 정말 갑자기 그가 세상을 떠났다. 췌장에 무슨 문제가 있어 병원에 입원하더니 엉뚱하게도 심혈관이 막혀 죽음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갑자기 환자가 통증을 호소하였는데 의사가 빨리 달려오지 않아 그렇게 되었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 친구의 부음을 듣는 순간 아찔하면서 눈앞이 캄캄한 현기증을 느꼈다. 아니 이럴 수가??? 아니겠지 . . . 그 친구의 장인(丈人)이 오랜 중병으로 병원에 계시니까 그분이 아닐까? .

 그러나 믿을 수 없는 그의 부음은 사실이었다

왜 그렇게 급히 가야만 했을까, 한번 오면 반드시 가는 게 인생이라지만 참으로 허망하다.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갑자기 가는 사람들이 더러 있기는 하지만 막상 친구가 그런 죽음을 당했다는 말을 들으니 뭔가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멍해진다.

  그러나 어찌하랴. 자신의 의사에 관계없이 태어났다가 역시 의사에 관계없이 돌아가는 게 자연의 순리인 것을. . . 갑작스런 죽음도, 누구나 바라는 고종명(考終命)도 인간의 힘으로 선택할 수 없는 자연의 영역이 아니겠는가?

 

 옛말에 거자일소(去者日疎)라 했는데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 속에 간 그 친구도 세월이 흐르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차츰 잊혀 질 것이다.   그 친구가 떠난 지 한 달, 휴대폰에서 그 이름을 지우려니 만감이 교차하여 몇 자 적어보았다. 친구여! 부디 영면하소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