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인 이야기/살아가는 이야기

어느 노인의 고종명

구슬뫼 2011. 10. 23. 15:54

 오병설씨는 농촌에서 태어나 평생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대농(大農)은 아니지만 대천간척지에 적지 않은 농토를 가지고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하지 않을 만큼 살면서 자녀들 잘 키웠고, 부부금슬도 좋고, 건강도 유지하면서 큰 걱정 없이 살아온 분이었다. 5남매의 자녀들도 부모의 가르침대로 훌륭하게 자라서 서울 등 객지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효도를 게을리 하지 않았고 특히 둘째아들은 집에서 농사를 지으며 부모를 불편 없이 모셨다.

 

 그 분은 70세가 넘자 자식에게 농사 등 일을 모두 넘기고 친구들과 어울려 약주를 즐기며 놀러 다니고 심심풀이삼아 조상묘역을 자주 다니며 잔디를 손질하는 게 기쁨이요 건강유지의 수단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분이 손질한 묘역은 언제나 잡풀 한포기 없는 싱싱한 잔디로 덮여 있었다. 용돈도 넉넉하고 마음도 너그러워 친구들과 어울릴 때 대개는 술값을 내는 바람에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짱이었다. 그렇다고 돈을 펑펑 쓰거나 호화롭고 사치스런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었고 건전하게 살면서 나름대로 인생을 마음껏(?) 즐기며 건강도 좋은, 복 많은 시골노인의 표본이었다.

 

 그런 그분이 8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낮에까지만 해도 멀쩡하게 활동하시던 분이 갑자기 저녁에 머리가 조금 아프다면서 내일 병원에 가봐야겠다고 하시더니 아침 일찍 병원으로 가던 중 차안에서 숨을 거두었다. 유족들은 애석해 하며 오열했지만 사람들은 그가 생전에 복을 누리더니 죽음 복까지 타고난 분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옛날이야기 한토막이 생각난다.

염라대왕이 잘못 찾아온 사람 3명을 불러놓고 너희들은 아직 올 때가 안 되었으니 다시 인간세상으로 가라. 다만 여기까지 왔으니 너희 원대로 보내주마 소원을 말해보라고 했다.

 

첫 번째 사람이 말하기를 한 나라의 임금님이 되고 싶습니다. 하여 임금으로 보내주고

둘째사람은 나라에서 제일가는 갑부가 되고 싶습니다. 하니 갑부로 태어나게 해주었다.

세 번째 사람이 말하기를 저는 임금님도 싫고 갑부도 싫고 한적한 농촌에서 논밭 적당히 가지고 머슴 두어명 두고, 하녀(식모)두고 걱정 없이 한평생 살고 싶으니 그런 곳으로 보내주십시오. 라고 말했다. 염라대왕이 눈을 지그시 감고 말을 다 듣고 나더니

예끼 이놈아! 그런 자리가 있으면 내가가겠다.”라고 했다는 우스개소리이다.

 

 출세를 원하는 사람, 돈 많이 벌기를 원하는 사람. . . 모든 사람들은 갖가지 행복을 꿈꾸며 많은 것을 가지려 욕심을 부린다. 그러나 그것은 바람일 뿐 그 바람을 이루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무엇이 진정 행복일까? 작은 행복에 만족하며 세상을 살다가 적당한 나이에 세상을 떠난 오병설씨야말로 꿈을 이룬 사람이 아닐까? 특히 오복 중에 마지막 고종명(考終命)은 제 명()대로 살다가 편안하게 죽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 분은 바로 고종명까지도 누린 분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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