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4일 성묘를 갔다가 고향마을에 혼자 사시는 집안의 형수(10여촌) 한 분을 만났다. 남편은 오래전에 사별하고 자녀들은 모두 결혼하여 외지에 나가 살기 때문에 홀로 사는 70대 후반의 노인인데 냉장고가 고장이 났으니 보아 달라는 것이었다.
아내와 내가 들어가서 살펴보니 손쉽게 고칠 수 있는 게 아니라 서비스센터에 전화하여 6일 15시에 출장을 나오겠다는 약속을 받아주었다.
김치냉장고도 보아달라고 했다. 나는 밖으로 나오고 아내가 살펴보니 김치 통이 얼어붙어 꺼내지 못하고 오랫동안 사용도 않고 있어 칼로 얼음을 조사 내고 오래되어 못 먹게 된 김치를 꺼내 버리는 등 정리를 다시 하여드렸다.
그분은 가난한 농부였지만 남편과 함께 5남매(아들4, 딸1)를 모두 고교이상 대학까지 가르치는 등 잘 키웠다. 크게 출세를 한 자녀는 없으나 서울, 안양 등지에서 공장운영, 건설업, 학원경영 등으로 돈을 상당히 벌어 마을에서는 성공한 자녀들이라고 소문이 쩡한 집안이다. 몇 년 전에는 자녀들이 아버지(그분의 남편)산소에 치석을 잘 해드리기도 했다.
남매들끼리 우애도 좋고, 돈도 벌었으며, 아버지산소에 치석도하고, 집안의 대소사에도 자주 참여하는, 그래서 나는 그들을 칭송하고 부러워(?)하기도 하였는데 . . .
오늘 그 집의 김치냉장고는 많은 것을 생각케 해주었다.
다섯이나 되는 자녀들이 가끔 어머니를 찾으면서 김치냉장고가 저리 될 때까지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니? 그것은 어머니의 애로를 헤아리지 않은 결과다. 어머니에게 애로를 털어놓을 여유를 드리지 않은 때문이다. 아니 어머니가 애로를 털어놓을 자녀가 없을지도 모른다.
지난여름 그분과 그의 둘째아들을 함께 만난 자리(喪家)에서 한 모자의 대화가 생각났다.
아들: 어머니가 무슨 걱정이 있으세요?
어머니: 얘는 . . .참, 얘는 . . .걱정 없는 사람이 어딨어?
아들: 세상에 어머니처럼 걱정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나는 나이 든 분의 투정정도로 알고 “그렇지, 걱정 없는 사람은 없지”하고 얼버무렸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그분은 가슴에 늘 자녀들에 대한 서운함이 배어 있었던 것 같다.
용돈이나 넉넉하게 주고는 어머니는 아무 걱정이 없는 분이라고 단정 짓는 자식보다는 어머니의 애로를 헤아려 김치냉장고나 기타 집기들을 살펴보고, 어머니가 지금 어디가 아픈가를 구체적으로 살피는 자식이 절실하다는 표현이었던 것 같다.
옛 이야기 하나가 떠올랐다. 한마을에 두 아들이 사는데 어머니는 잠만은 꼭 가난한 아들네 집에서 주무시는 것이었다. 서운한 마음이 든 부자 아들이 묻자 어머니 왈 “네 동생은 잘 때 늘 등을 긁어 준단다.”
어제 만난 노인의 자녀들이 이글을 읽어 보았으면 좋겠다.
아니 이 시대를 사는 젊은이들이 모두 이 글을 읽고 자신을 돌아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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