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큐슈(九州)여행기
2006. 3. 31- 4. 3까지 회갑기념으로 일본 큐슈지방 여행 에 다녀왔다.(음력 3월 5일, 즉 4월 2일이 회갑이었음) 부산에서 배편으로 하카다항으로 가서 오호리 공원과 구마모 토성, 아소산, 벳부, 다자이후텐만구 등을 구경하고 돌아오는 코스로 경비는 아내와 둘이서 90만원이고 천일관광을 이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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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1 맑음> -출발: 아침 8시까지 하상주차장에 모인 관광객은 120명이 넘었으나 아는 사람은 열 명이 채 되지 않았다. 8시 30분, 3대의 버스로 출발하는데 우리 부부는 2호차에 배정되었다. 이 차에는 아는 분이 둘 탔다. 서해고속도로를 통하여 군산에 진입하니 구시에서 왔다는 20여 명의 친목회원들이 돼지고기, 떡 등을 소주와 함께 돌리며 먹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예의 한국의 관광버스문화가 시작된 것이다. 아침밥을 먹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부터 저렇게 먹고들 야단일까? 과연 우리나라의 관광은 먹는 것 빼놓고 무엇이 남을까? 또 술을 빼 놓으면 무엇이 남을까?
-촉석루(矗石樓)관광: 12:30분, 진주(晉州) 촉석루에 닿았다. 임진왜란 때 논개(論介)라는 의기(義妓)가 왜장(倭將)을 끌어안고 물속으로 뛰어들어 자신도 죽고 왜장도 죽도록 만들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기리는 문화유적, 논개의 충절이 살아 숨 쉬는 촉석루에 올라보니 그녀의 충절이 가슴 아프도록 절절하다. 논개가 왜장과 함께 떨어진 의암(義巖), 그녀를 모셔 놓은 의기사(義妓祀)등을 둘러보니 비록 기생이라는 하찮은 신분이면서도 나라를 지키고자하는 우국충정! 당시의 조정중신이나 장수, 그리고 미관말직에 이르기까지 그 누구도 따르지 못할 훌륭한 논개의 충성심이 느껴져 숙연해진다.
13:00까지 촉석루 앞에 있는 초가집이라는 식당으로 오라는 여행사 직원의 말에 따라 유적을 한 바퀴 돌고 10분전에 음식집에 와 보니 벌써 대부분 식사를 마치고 우리 부부는 맨 나중에 먹는 여섯 명 중에 끼어 비빔밥으로 점심을 먹었다. 금강산도 식 후경이라드니 먹는 동작들 한 번 빠르군, 음식의 질도 관광지에서의 음식이라는 게 늘 그렇듯이 마음에 별로 들지 않는다.
-뉴 카멜리호: 18:00에 부산항에 도착하여 국제 여객터미날 2층에서 출국수속을 하고 기다리기를 한 시간여 19시가 되어서야 하카다(博多)항으로 가는 ‘뉴 카멜리아호’에 오를 수 있었다. 상당히 큰 배라서 안정감이 있고 또한 매우 깨끗하여 좋은 인상을 준다. 배정받은 선실은 435호(아내는 여자호실인 434호), 11명이 함께 쓰는 곳이었는데 교장선생님 출신인 이석근씨와 우체국 공무원 출신 이봉규씨가 함께 배정받았고 나머지는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구시와 녹문 등 가까운 곳에 사는 분들이었다. 배에는 식당과 목욕탕까지 갖추어져 있다. 육개장으로 저녁을 먹고 간단히 목욕을 한 후 잠자리에 들었다. 23시가 되자 배가 출항한다. 선실 내에는 전원을 차단시켜 TV까지도 볼 수 없게 만들어 놓아 잠자려는 승객들의 편익을 제공해준다. 일부 사람들은 갑판에 나가 술을 먹기도 하고 친분이 있는 사람들끼리 이야기도 하는 등 들락거리며 여행의 즐거움을 만끽한다.
<4.1 맑음> -씨사이드 모모치 해변: 새벽 5시가 넘었을까 배가 하카다항에 도착하였다. 난생처음 맞는 일본의 아침이 밝아 온 것이다. 이곳 하카다는 일본 큐슈(九州)지방의 8개현 중 하나인 후쿠오카(福岡)현 지역이라고 한다. 06:35분 시래기국으로 아침식사를 끝내고 07:10 배에서 내리니 일본에서 우리를 안내할 가이드와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처음간 곳은 씨사이드 모모치해변, 일본 최대의 인공해변이라는 이곳에서 저만큼 후쿠오카 탑이 보였다. 높이는 234M, 일본에서 두 번째 높이라고 하며 1889년에 세웠던 것을 1989년 100주년을 기념하여 다시 세웠는데 지진 7-8도에도 견딜 수 있게 설계가 되었으며 실제로 몇 년 전 일본에 있었던 4도 지진에 이 탑은 끄떡없었다는 것이다. 사진 몇 장을 찍고 다음 행선지로 향한다.
-오호리(大濠)공원: 옛날에 후쿠오카성을 두 지역으로 나누어 서편은 사무라이들이 살고 동편은 신분이 낮은 상인들이 살았다고 한다. 이곳은 그 성의 해자(垓字)를 이용하여 만든 물의 공원으로 1927년 중국의 서호를 모방하여 만들었다고 하며 2km의 산책로가 있다.. 잉어 등 물고기가 많이 보이고 갈매기와 오리 등 야생 새들이 친근함을 더 해준다. 군데군데 “낚시금지” 팻말을 세워 놓고 호수의 특정부분은 낚시를 즐길 수 있도록 한다. 우리나라의 일산 호수공원을 연상케 하는데 그 규모는 그보다 좀 작게 보이나 오랜 역사가 있어서인지 오밀조밀한 맛은 그보다 나은 것 같다. 아무튼 일본에서는 옛 문화유적을 공원화하여 시민들이 그 숨결을 느끼며 즐길 수 있도록 하는데 우리나라에서 문화유적을 보존하려고 출입을 통제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다자이후텐만구(太宰府天滿宮) 신사(神祀):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일본에는 800개의 신사가 있다고 하는데 인터넷을 검색하면 12,000개의 텐만구(天滿宮)가 있다고 하며 이곳 다자이후 텐만구는 그 총본산이라고 하는데 스가와라 미찌자네(菅原道眞)라는 사람을 학문의 신으로 모시고 있는 곳이다. 신사에 들어가기 전에 손과 입을 닦고 들어간다고 해서 얼떨결에 손을 닦는 시늉을 따라서 했더니 다른 사람들은 입까지도 닦는 시늉을 하는 게 아닌가, 에이 이게 무슨 짓이냐 싶어 그만두었다. 무신론자인 내가 더구나 일본의 신에게 그런 격식을 갖출 필요가 있을까?
아무튼 합격을 기원하는 사람들 특히 어린학생들이 끊임없이 찾아와서 기원을 하고 또 기원하는 에마(글을 쓴 조각)를 붙여놓고 가기 때문에 에마가 주렁주렁 달린 게 신기하기도 했다. 또 합격 을 기원하는 제례의식도 하는데 마침 의식이 거행되고 있어 한참을 구경하려니 한켠에서는 기모노를 입은 처녀가 일본 술을 작은 잔에 한잔씩 딸아 관광객들에게 주는 곳이 있어 한잔 얻어먹어보니 정종 맛이 난다. 신사구경을 마치고 나와서 그 앞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구마모토(熊本)성: 이어서 찾은 곳은 구마모토성은 오사카성, 나고야성과 더불어 일본 3대 성의 하나라고 한다. 이곳은 임진왜란 때 침략군의 선봉장이었던 가토기요마사(加藤淸正)가 1601년부터 7년간에 걸쳐 세운 성이나 2대(44년간)를 지나서 다음 실권자의 손에 넘어 갔다고 한다. 가토는 우리나라에 쳐들어와서 갖은 만행을 저지른 작자인데 . . . 생각하니 괘씸한 생각이 든다. 한편 임진왜란 중 사명대사와 가토가 4회에 걸친 회담을 할 때 나누었다는 대화의 한 토막, 가토가 묻기를 “조선의 보물은 무엇인가?” 사명대사가 답하기를 “조선에는 보물이 없고 그대의 머리가 보물이다” 가토가 되묻기를 “그게 무슨 말인가?” 대사가 답하기를 “그대의 머리를 잘라 가면 나라에서 큰 상이 내릴 것이니 보물이 아니고 무엇인가”라고 당당히 말해 가토의 기를 제압했다는 일화가 생각나 대사의 늠름한 모습을 연상해 본다. 성의 규모는 매우 컸고 특히 성주가 머물렀다는 성루인 천수각(天守閣)은 1877년 전쟁 때 불타고 1960년 지었다고 하는데 그 규모가 웅장하
구마모토 공원에서고 내부를 통하여 꼭대기까지 오르니 사방팔방으로 전망이 매우 좋다. 또 하나의 천수각이 있는데 그 규모는 작지만 역사는 400년이나 되었다고 한다. 전자는 대천수각, 후자는 소천수각이라고 한다.
성벽은 자연석이 아닌 깬 돌로 면을 잘 맞추어 쌓은 방식이 우리나라의 석축양식과 다르다. 우리나라의 축성방식은 가로로 돌들이 나란히 되도록 줄을 맞추어 쌓은데 비해 일본의 축성방식은 견치 돌 쌓듯이 면만을 잘 맞추어 쌓은 형식이다. 특이한 것은 지붕꼭대기 양쪽에 물고기 꼬리 모양을 한 장식을 두 개 만들어 놓았는데 일본에는 벼락이 많아서 높은 건물에는 벼락의 위험이 많으므로 신에게 “여기까지 바다라서 물고기가 살고 있으니 벼락을 내리지 말라”는 기원을 담은 풍습이라고 하여 씁쓸한 미소를 머금게 한다.
-하라즈루 그랜드 스카이호텔: 온천으로 유명한 하라즈루의 그랜드 스카이호텔 415호에 여장을 푼 다음 호텔식으로 저녁을 먹고 온천욕을 한 다음 잠자리에 들었다. 꽤 고급스런 호텔이다. 유카다라고 하는 일본식 복장을 입고 보니 우습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아내가 입은 모양을 사진에 담고 나서 나를 찍으려 했더니 그만 사진기의 밧데리가 다 닳아버려서 섭섭하게도 사진을 더 찍을 수 없었다.
<4.2 비온 뒤 개임> -아쉬운 아소산 관광: 호텔에서 아침을 먹은 후 07:50 버스를 타고 1,592m높이의 아소산(阿蘇山)으로 향했으나 비는 부슬 부슬 내리고 안개가 자욱하여 말 그대로 오리무중, 바로 앞을 볼 수가 없어 관광은 엉망이 되고 말았다.
로프웨이를 편도 탑승하여 활화산을 올라 분화구를 볼 참이었는데 무산되고 만 것이다. 이 산에는 세계최대의 분화구(남북 27km, 동서 16km, 둘레 114km)가 있다고 하며 아직도 화산이 살아 있어 연기와 수증기가 나온다고 하는데 그놈의 안개 때문에 아무것도 볼 수가 없으니 짜증이 난다. 내가 언제 또 이곳에 올지 모르는데 분화구를 보지 못하다니 . . .
-원숭이 쑈: 할 수 없이 다음 차례인 원숭이 쑈 극장으로 갔다. 남자 조련사가 원숭이 한 마리, 여자 조련사가 새끼 원숭이 한 마리씩 데리고 나와 죽마타기(장대 2개로 걷기), 재주넘기, 높이뛰기, 허들 점프, 숏 꽁트 등 재주를 부리는데 내용이 단순하고 기교의 질이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어린이들이나 보는 쑈지 어른들에게는 별 흥미를 주지 못하는 것 같다.
원숭이 쑈 구경을 마치고 하산하니 산 아래에는 비도 그치고 안개도 걷혀 시야가 탁 트이는 게 아닌가, 도로 올라 갈 수도 없고 아쉬움이 많이 남는 관광이 되었다. 야트막한 산자락은 넓은 목장지대가 많다. 목장에는 주로 소를 방목한다는데 넓은 산판을 불태워 검게 그으른 구릉에 새 풀들이 돋아나고 있었다. 신기한 것은 목장부분은 불을 놓아 탔는데 사이사이로 초원이 아닌 부분은 타지 않고 남았으니 어떻게 그렇게 골라가며 태웠는지 궁금하다. 날씨 탓인지 소떼는 보이지 않고 불과 몇 마리만 눈에 띈다.
-긴린코: 다음으로 간곳은 긴린코(金鱗)호수, 석양에 물고기가 수면위에 떠오르면 비늘이 금빛으로 보인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자그마한 방죽이라서 별로 인상 깊지 않았다. 다만 호수를 둘러싼 풍경들이 정겹고 주변 마을의 가게며 집들이 전통 그대로 보존되고 있어 시골 풍경을 만끽할 수 있어 좋았다. 특히 어떤 집에는 옛날 우리나라 시골처럼 씨앗으로 매달아 놓은 듯 마른 옥수수가 주렁주렁 달려 있는 것을 보고 잠시 옛 생각에 젖어 보았다.
-가마도 지옥: 일본의 대표적인 온천지역으로 벳푸(別府)가 있는데 이곳에는 9개의 지옥이라 해서 우미지옥(解地獄), 지노이케지옥(血地獄), 다스미케지옥(龍券地獄), 혼보즈지옥(本坊主地獄), 긴류지옥(金龍地獄), 야마지옥(山地獄), 가마도지옥(밥솥지옥), 오니야마지옥(鬼山地獄), 시라이케지옥(白池地獄), 등 각 온천별로 특색 있는 이름을 지어 부르고 있다. 그중 가마도 지옥은 옛날에 이곳 온천의 열기를 이용하여 신사나 사찰의 밥을 지었다고 하는데 그 상징으로 입구에 커다란 가마솥을 걸어놓고 있다. 가마도 지옥을 다시 6개의 지옥으로 나누어 붉은 온천, 푸른 온천, 흰 온천 등 특색 있는 온천으로 개발, 관리 하고 있으며 온천연기에 담배를 갖다 대면 불이 붙을 정도로 뜨거운데 이상한 것은 온천에서 계속 품어져 나오는 수증기에 담배연기를 입으로 후- 하고 불어 넣으면 갑자기 수증기의 양이 많아지는 것이 아닌가, 무슨 원리일까? 안내에게 물어봐도 신통한 답변이 없다.
마을 내에서는 온천으로 관리 하지 않는 이곳저곳에서도 수증기가 품어져 나오는가 하면 뽀글뽀글 온천수가 나오는 곳이 있는 등 그야말로 지역 전체가 온천지이다. 벳부 전체에서 1일 분출되는 온천수가 14만 톤에 이르나 그를 모두 사용치 못하며 그나마 너무 뜨거워 식혀서 사용한다고 한다.
왜 지옥이라 했을까? 안내원의 말에 의하면 온천수가 너무 뜨겁고(100도 이상) 사방에서 연기와 수증기가 나오니 과연 지옥과 같은 풍경이고 실제로 천주교 박해 시 신도들을 잡아다가 너희들이 천당과 지옥을 말하니 지옥을 한번 맛보라고 온천물에 넣어 죽였다는 것이다. 그러던 것이 세계 2차 대전 시 미군들이 들어와 휴양지로 사용하게 되었고 그들이 철수하자 신혼여행지로 이용하다가 다시 일반관광지로 발전, 지금은 벳부에 45만명 인구가 사는데 연간 관광객은 3천만 명이 찾는다고 하니 저주받은 지옥이 지금은 축복받은 관광지로 탈바꿈 했다고나 할까?
-유노하나(硫黃花)재배단지: 유노하나는 벳부 온천중에서도 널리 알려진 명반온천의 유명 특산품으로 300여 년 전 에도시대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전통적인 채취방법에 의해 생산되는 순수 온천 성분이다. 이 독특한 방법은 벳부시의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초가 안에서 자갈, 청점토, 짚 등으로 일정 시설을 갖추고 재배하는 유황 꽃은 마치 곰팡이균 비슷하다. 다량의 미네럴과 청정토가 만나 하루에 1mm씩 자라 4~5개월이 지나야 채취할 수 있다는 유황의 실체. 땅속에서 분출하는 온천 수증기를 따라 나온 유황성분이 응고된 유노하나(유황꽃)에서 몸에 해로운 물질을 제거한 후 천연의 입욕제라 하여 관광상품으로 파는데 각종 피부병과 기저귀 발진, 무좀, 류마티스, 근육통, 신경통에 효과가 있다고 하며 관광객들에게 꽤나 인기 있는 상품으로 팔린다고 하는데 우리 일행에게는 특별한 설명이 없고 팔려고 하는 행동도 보여주지 않아 구경만 하고 나왔다.
-벳부만 로얄호텔: 정통일식집에서 난생처음 접하는 일식(정식)으로 저녁을 먹은 다음 호텔에 들어가 517호에 여장을 풀었다. 어제 묵은 호텔보다 더 고급이다. 별이 다섯 개나 되는 특급호텔, 그것도 일본의 전통식 다다미방에 들고 보니 기분이 참 좋다. 1층 온천탕에 푹 몸을 담그니 피로가 싹 풀리고 노천탕에 나가 얼굴만 내놓고 누으니 기분이 더욱 좋다. 탈의실에 나오니 아줌마 한사람이 벌거벗은 남자들을 아랑곳 하지 않고 돌아다니며 청소를 하는 것도 이색적인 광경이다. 객실에 돌아오니 호텔 종업원이 어느새 이불을 깔아놓았다. 기모노 입은 여자가 이불을 깐 다음 깍듯이 절을 하고 간다는데 못 본 게 섭섭하다.
일행들이 옆방에서 소주를 먹으면서 부른다. 남의 나라에 와서 먹는 소주 맛은 참 좋았으나 외국여행까지 소주를 싸 가지고 다니면서 먹어야 할까, 하는 부정적인 생각이 든다. 술을 며칠간 안 먹으면 병이라도 난다는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약간 씁쓸하다. 외국여행 때는 그 나라의 술을 맛보는 게 좋지 않을까? (한편 나는 가져오지 않고 얻어먹기만 하니 미안한 생각도 든다.)
아침에 일어나 호텔식당에서 뷔페식으로 아침을 먹는데 내가 음식을 가지고 두리번거리니 일행들이 가까이에 보이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어떤 부부 한 쌍이 먹는 테이블에 앉았더니 그 부인이 내 모습을 찬찬이 살피다가 “혹시 한국 분 아니신가요?” 하고 말을 건넨다. 그래서 이야기를 해 본즉 동경에 사는 우리나라 교포 부부였다. 남편은 우리말을 하는 데 약간 발음이 이상했지만 부인은 전남 보성이 고향이라고 하며 우리말에 어색한데가 전혀 없다. 뜻밖에 만난 교포들과 잠시 이야기 하며 식사할 수 있었던 것도 작은 기쁨(?)이랄까?
<4.3 맑음>-관광객 주머니 털기: 관광지는 어디를 가나 안내원의 교묘한 수작에 넘어가 관광객들이 생각지 않았던 기념품들을 많이 사게 된다. 일본의 관광지는 중국이나 제주도에 비해 덜하지만 이번 여행에서도 어김없이 안내원의 교묘한 술수는 쇼핑이라는 이름으로 기념품판매소에 데려가서는 많은 물건들을 사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원래 계획은 오늘 다자이후텐만구신사를 구경토록 되어 있었으나 관광회사 마음대로 변경하여 첫날 구경해 버린 터이라 남은 관광계획이 없다.
07:50호텔에서 나온 버스는 곧장 쇼핑장소로 이동하면서 안내원의 작전이 시작되는데 자신이 소개하고 싶은 물품이라면서 3-4가지 물건의 내용과 좋은 점(단점은 빼고)을 침이 마르도록 설명하는 것이다. 이윽고 면세라고 간판을 붙인 자그마한 가게에 도착하여 여권을 대리한 표찰이라는 것을 한 개씩 목에 걸어주고는 물건을 살 때 마다 표찰까지 체크를 한다. 관광객들은 충동구매랄까, 안내원이 칭찬한 물건을 얼떨결에 사가지고 나오는 게 보통이다. 나중에 그 가게에서는 해당안내원에게 상당율의 이익을 분배한다고 한다는 사실을 희미하게 짐작하는 사람, 전혀 모르는 사람 할 것 없이 한 두 가지씩 기념품을 사는 것이다.
-돌아오는 길: 귀국하는 배는 12:00에 출발하였다. 푸른 물결이 잔잔한 현해탄, 사람들은 배정된 선실에 모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하고, 혹은 잠을 청하기도 하고, 일부 사람들은 술을 마시기도 하면서 여행을 마무리 한다. 6.25 때 월남한 나이 지긋한 분의 북한에서의 경험담, 왜정시대 양귀비재배를 하여 아편을 채취하여 중국으로 장사를 다니던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 재배법과 아편채취법 등 . . . 평소에 접해보지 못한 이야기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저마다 한마디씩 던지는 질박한 삶의 이야기들을 들으며 비행기여행에서 맛보지 못한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저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노라니 시간가는 줄 모르게 17:30분이 되어 부산항에 도착하였다.
배에서 내리니 관광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여행 첫날 점심을 먹었던 진주 초가집식당에 들러 저녁을 먹고 돌아오니 새벽 1시 30분, 3박4일의 여행이 이렇게 막을 내렸다.
○여행을 마치고
일본은 과연 듣던 대로 질서 있는 나라다. 특히 눈에 띄는 교통질서, 도심이나 한적한 도로나 빨리 달리는 자동차가 없고, 앞지르기 하는 자동차도 없고, 빵빵대는 경적도 없고, 교통경찰도 눈에 띄지 않는다. 고속도로를 버스가 달릴 때 서있는 사람이 있거나 차창 밖으로 휴지 등을 버리면 벌금을 물어야 한단다. 그래서 이를 어기는 사람이 없다는데 누군가가 뒤에 하는 말, “한번 걸리면 처벌이 무겁기 때문에 잘 지킨다나?” 글쎄, 한국에서는 처벌규정이 없어 안 지키는가? 대로변이나 좁은 길이나 골목길이나 자동차를 불법으로 주차 한곳도 없다. 좁은 골목이나 사이 길에 있는 집들도 교묘하게 주차공간을 만들어 놓고 사용하고 있어 길에 대 놓은 차는 한 대도 없다. 가정집에 담장이 없으니 주차공간을 만들기가 편리한 것 같다. 안내원의 말에 주차장이 없으면 차를 살 수 없다던가?
귀국 후 같이 여행했던 분과 동대동 저녁거리를 걷다보니 일본과는 정반대로 여기저기 무질서하게 차를 대어 놓은 것을 보면서 참으로 대조적이라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과연 우리나라는 주차천국이군요.” 내가 던진 농담에 우린 둘이서 껄껄 웃었다.
일본은 참으로 깨끗한 나라다. 자기 집안은 물론 집 앞까지 깨끗이 청소한다. 거리에 휴지 한 조각 뒹굴지 않고, 도로변도 깨끗이 정리 되었고, 심지어 농경지주변에 비닐 한 조각 나르지 않는다. 가정집, 상가, 공공시설 할 것 없이 모두들 깨끗하고 간판들도 요란하지 않다. 다만 건물들이 밝은 색, 화려한 색이 없이 대체적으로 회색빛으로 거무충충한 것이 도시전체가 어두워 보이는 게 흠이라면 흠이라고 할까?
일본은 공중도덕을 잘 지키고 남을 배려하는 문화가 국민들 사이에 배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욕설이 별로 없다고 하며 좀 도둑이나 작은 폭행사건도 별로 없다고 한다.(물론 조직적인 야쿠자 등 단위가 큰 범죄는 있지만) 교통사고도 없어서인지 찌그러졌다거나 흠이 있는 자동차가 다니는 것을 볼 수가 없다. 온천탕에 들어가 봐도 모두들 조용히 목욕을 즐기는 사람들뿐 소란을 피우지 않는다. 벽에 걸린 글이 있어 살펴보니 욕탕 내에서 지켜야 할 공중도덕에 관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온천탕에는 지하 000m에서 퍼올린 00성분의 지하온천으로 어디에 효과가 좋다는 등의 선전 문구를 붙여 놓는데 . . .
일본사람들은 절약이 생활화 되어 있는 것 같다. 음식집에서 밥을 먹는데 아주 조금씩 자기가 가져다 먹고 가져간 만큼 돈을 낸다. 반찬도 모두 잘게 썰어 조금씩 먹을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 놓았다. 그래서 남기는 음식이 없으니 자연 음식물쓰레기가 생기지 않으며 음식집에서 하루 쓰고 남은 음식은 노숙자 등에게 줄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추어 놓았다는 것, 다만 더치페이(Dutch pay) 문화가 발달하여 함께 밥을 먹어도 각자 밥값을 내고 영수증까지 사람 수대로 끊는다 하니 우리식으로 보면 너무 야박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화장실에서 변기의 물도 소변을 본 후에는 오른쪽으로 돌려 물이 조금만 나오고 대변을 본 후에는 왼쪽으로 돌려 물이 많이 나오도록 되어있고, 식수나 차를 타 먹을 때 나오는 정수기의 물도 한번 누르면 반 컵 정도밖에 나오지 않는다.
전통을 중요시 하는 점도 눈여겨 볼만하다. 아버지의 가업(보잘 거 없는 우동가게)을 잇기 위해 대학교수를 그만두고 돌아오는 사람도 있다는 말을 들은 바도 있다. 그런 전통 때문인지 일본에는 100년이 넘은 가게, 500년이 넘은 가게가 상당수 있고 심지어 1000년이 넘은 가게도 있다고 한다. 반면 우리나라의 가게는 수명이 평균 3년이라고 하니 비교가 되질 않는다.
일본의 장묘문화는 화장이다. 화장한 유골을 집 근처에 납골 탑으로 모시는데 우리 의식으로는 유골을 꺼림직 하게 집근처에 두랴마는 그들은 조상이 자손을 지켜주시리라 믿고 기꺼이 집근처에 두는 게 상례라는 것, 아무튼 납골 탑으로 가까이 모시기도 하지만 가족 공동묘지에는 수많은 납골 탑들이 다닥다닥 세워져 있어 일본의 장례문화 역시 개선할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해 보았다. 이밖에도 일본인들의 친절, 작은 가게까지 물건 값을 표기하는 정찰제, 자기일은 끝까지 책임지는 철저한 책임 의식 등 그들에게서 배워야할 점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일본에 대하여는 그동안 많이 들어왔고 책에서도 읽어보았지만 막상 가보기는 처음이었다. 짧은 여행, 그것도 일본의 남쪽 한구석 큐슈(九州)지방을 주마간산(走馬看山)식으로 다녀오고서 어찌 일본을 말할 수 있으랴만 그래도 잠깐이나마 보고 느낀 점이 많다.
흔히 일본을 가리켜 멀고도 가까운 나라라고 한다. 거리상으로는 지척에 있지만 의식상으로는 가까워지지 않는 그 무엇이 있는 나라, 그들이 은근히 우리를 얕보고 얌체처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얄미운 언행이나 정책을 펴기도 하며, 역사적으로 볼 때 그들이 우리나라에 몹쓸 짓을 많이 했기 때문에 국민정서가 그들에게서 거리를 두고 그래서 그들을 배척하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우리에게는 그들을 가리켜 왜놈이니 섬놈이니 하면서 업신여기는 의식도 없지 않아 있다. 하지만 그들이 우리보다 나은 점은 많지 않은가, 그게 무엇인가. 똑바로 보고 좋은 점은 배워서 우리 것으로 만드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하겠다. 그래, 배워야 한다. 일본의 좋은 점, 일본이 선진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방법을 우리는 배우고 더욱 발전시켜 머지않은 장래에 그들을 따라잡고, 나아가 그들을 제치고 세계 속에 우뚝 서는 대한민국을 세우는데 온 국민의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실은 곳: 2006발행 향토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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