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분야/생활민속

짱아집 이야기

구슬뫼 2007. 5. 26. 10:02
 

 짱아집 이야기

  1 짱아집이 있던 웅천천

 웅천읍 노천리에는 웅천천의 하류와 간지천이 만나 서해로 흘러가는 곳이 있는데 이 두 하천이 만나는 곳을 속칭 ‘완장내’라고 부르며 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고깃배가 드나들던 포구였다.

 노천리 간척지가 생기기 전인 일제시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포구가 상당히 커서 중선급 고깃배까지 드나들었다고 전하며 그보다 더 거슬러 올라간 시절, 즉 조선시대의 지도를 보면 이곳이 ‘청연포(靑淵浦)’라고 표기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옛날엔 중요한 포구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던 것이 지난 1980년대에는 부사지구 간척공사로 인하여 바다물길조차 막아버림으로서 지금은 그저 평범한 준용하천으로 관리되고 있으며 하류(갈마수, 피골)쪽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아 드러난 둔치(고수부지)에는 묘포장, 운동장, 잔디포 등을 조성하여 사용하는 등 옛 모습과는 많이 달라졌음을 볼 수 있다.

 이곳 완장내에서 하천을 거슬러 올라가 노천교(속칭 두루다리 : 옛날에 징검다리를 놓았는데 돌을 한 줄로 놓은 게 아니라 두세 줄로 놓음으로서 오고가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두루두루 다닐 수 있도록 놓았다 해서 두루다리라고 하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징검다리의 흔적은 없어지고 튼튼한 시멘트 다리가 세워졌음)밑을 통과하면 대창리와 대천리를 잇는 웅천대교 아래를 지나게 되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철교 밑을 거쳐 속칭 노천보라고 하는 농업용보를 지나 수부리로 올라가게 되는데 이곳 완장내에서부터 노천보에 이르기까지 약 2km에 걸쳐 짱아집이 많이 있었고, 그 중에서도 특히 완장내에서 두루다리 부근까지에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었다.

 하천 폭은 100m정도 되지만 큰물이 흐르지 않는 평시에도 물의 폭이 30~50m에 이르는데 깊이는 그리 깊지 않아 50㎝~1m정도 된다. 이곳 하천바닥 중 두루다리 아랫부분에 4~5개의 돌무더기를 볼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짱아집이라고 하는 것이다.


2 짱아집은 무엇인가

 짱아란 장어(뱀장어)의 이 지역 사투리로서 뱀장어들은 돌무더기 속으로 몸을 잘 숨기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돌을 쌓아놓고 뱀장어들이 많이 들어간 후 이를 허물어서 잡아내는 고기잡이의 한 방법으로 아주 오래 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것인 바 이 돌무더기를 짱아집이라고 한다.

 이 짱아집들은 크기가 지름 1m ~ 1.5m정도, 높이는 1m정도 되는데 하천변에 굴러다니는 길이 20㎝정도의 크기의 둥글넓적한 돌들을 주워 모아서 만든 것으로서 밀물 때는 완전히 물속에 잠기고 썰물 때는 반 정도 물속에 잠긴다.  지금은 불과 몇 개의 짱아집밖에 없지만 부사간척지가 막아지기 전인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100개정도, 한창 전성기에는 200여개의 짱아집이 있어 주민들의 소득원 노릇을 톡톡히 하였던 것이다.

 바닷물이 두루다리(사리때는 웅천대교)까지 들어왔다 나가고 웅천천 상류에서는 사시사철 맑은 물이 끊이지 않고 흘러내리므로 민물과 갯물이 만나는 곳으로서 이곳을 통하여 천연기념물인 은어와 뱀장어들이 내륙과 바다를 오가며 번식하였고 참게들이 짝짓기를 하고 산란하는 장소였다.

 민물고기와 갯물고기들이 함께 섞여 살므로 물고기의 종류도 다양하고 그 수도 상당히 많아 물속이 고기 반, 물 반이었다고 하면 너무 지나친 표현일까? 아무튼 물 빠진 뻘땅을 걷다보면 참게가 뻘 속에서 눈만 내놓고 숨어 있는 걸 잡기도 하고 농게(항바리), 칠게(능쟁이), 똘장게, 기타 작은 종류의 게들이 설설 기어 다니고 물속에는 크고 작은 수많은 물고기들이 우글거리는 그야말로 물고기의 천국이었던 것이다.

3 짱아집에서 잡히던 물고기

 물고기들이 살기 좋은 환경이고 또 바다와 민물을 오가는 고기들의 통로였기에 그 종류가 여러 가지였지만 돌무더기에 숨는 습성이 없는 물고기는 짱아집으로는 잡을 수 없었고 또 값이 나가지 않는 물고기는 놓아주었으므로 실제로 잡는 물고기는 뱀장어, 메기, 참게를 비롯하여 빠가사리, 돌고기(돌고치), 망둥어, 징게(새우종류), 숭어, 깔때기(농어), 바다망둥어, 검은망둥어(퉁건이), 붐치(멍챙이)등이 주로 많이 잡혔다.

 붕어와 은어는 많이 살기는 하였으나 돌무더기에 숨지 않는 성질이 있어 짱아집으로는 잡지 못하고 그물 등을 이용하여 잡았다.


4 짱아집에 얽힌 이야기

 짱아집은 보통 한 달에 두 번 조금때를 이용하여 허물어 고기를 잡는데 홍수가 져 큰물이 한번 휩쓸고 지나면 2~3일 후에 허물어도 고기들이 많이 잡힌다. 한창 짱아집이 잘 될 때는 전적으로 짱아집만 관리하며 사는 전업가구가 세 집이 있었고 누에골이나 사그내(이상 노천2리)사람들, 일부 가라티(노천 1리)에 사는 사람들이 부업으로 짱아집을 관리함으로서 농외소득을 올리는 중요한 소득원이었다.

 한창 벌이가 잘 될 때는 짱아집 한 개를 허물면 한 번에 보리 한 가마에 해당하는 소득이 나왔다고 하니 열 개만 관리하면 한 번에 보리 열 가마씩, 한 달에 두 번 헐 수 있으니깐 스무 가마를 거뜬히 벌 수 있는 짱아집이 얼마나 큰 재산(?)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수익이 좋다고 하니까 너도나도 무분별하게 짱아집을 설치하는 바람(어떤 사람은 혼자서 30개까지도 설치하였다고 함)에 포화상태에 이르러 물고기들이 분산됨으로서 별 소득이 없는 시기도 있었다. 한편 같은 크기, 같은 모형의 짱아집이라 해도 어느 위치에 지어야 고기가 많이 드는가를 잘 파악하여 어로를 따라 기술적으로 설치해야만 남보다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는 것이다.

 고기를 잡으려면 작살, 다람치, 그릇, 물안경 등 간단한 도구가 있어야 한다. 우선 짱아집의 돌을 살며시 한 개씩 들어서 한쪽으로 옮기면 물고기들은 돌무더기 깊숙이 들어가게 되고 돌에는 이끼 또는 흐리(미세한 흙가루 등)가 묻어 있으므로 고기가 들어갈 때 흐릿하게 자국이 남는데 사람들은 이 자국을 보고 물고기의 진로를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이다. 물고기가 들어간 돌을 살짝 들어내면 물고기가 다른 곳으로 나가거나 더 깊숙한 돌 밑으로 들어가는데 이 순간을 포착, 한 손에 들고 있던 작살로 재빨리 물고기를 잡게 되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어려울 것 같지만 숙달된 고기사냥꾼들은 절대 실수 없이 100% 잡아낸다.

 물이 흐릴 때에는 고기가 도망치는 것이 잘 보이지 않으므로 물안경(물안경이래야 얇은 판자로 틀을 만들고 유리를 붙인 허술한 것임)을 사용하는데 한 손엔 작살을 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돌을 들어내야 하므로 물안경은 입에 물고 사용한다. 입에 물면 얼굴에 물안경이 덮어 씌워지도록 만들어서 사용하였던 것, 그래서 오래 사용한 물안경은 이빨로 무는 부분이 움푹 패어진 것을 볼 수 있다. 오늘날 수영장에서 사용하던 물안경이 있었다면 얼마나 편리하였을까?

 물이 더욱 흐려 물안경마저 곤란하면 감각으로 고기의 진로를 짐작하여 잡는데 그래도 큰 실수 없이 잘 잡아냈으니 수 년, 수십 년 이 일에 종사해온 때문으로 가히 그 방면에 도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작살을 다루는 솜씨 역시 익숙하다보니 어쩌다 고기가 빠져나갈 때 보지 못하고 1m~2m정도 달아난 뒤에야 발견하면 즉시 창을 던지는데 여지없이 백발백중 명중시켜 잡아내는 등 그 실력이 대단하였다고 한다. 허물면서 드러내는 돌은 돌무더기를 옆으로 옮겨놓은 격이 되어 다시 손질을 안 해도 다음에 잡을 때까지 짱아집이 되는 것이다.

 어쩌다 고기 잡는 시간을 잘 맞추지 못하여 썰물시간이 임박하면 빠져나가는 물을 따라 고기도 빠져나갈 우려가 있어 고기를 잡아내는 속도도 그만큼 빨라야 하므로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짱아집을 관리하는 어가(漁家 : 이런 표현이 맞을지 모르지만)에서는 열 살 안팎의 어린아이들도 한 몫을 하였다. 어른들이 고기를 잡을 때 다람치, 작살 등을 가지고 뒤따라 다니다가 “작살”(작살을 달라)하면 빨리 작살을 건네주고 “다람치”(다람치를 달라)하면 재빨리 다람치를 대어 잡은 고기를 받아야만 하는데 어린아이인지라 고기잡이에 집중치 않고 다른데 정신이 팔려 있다가 어른의 요구에 빨리 응하지 못하고 꾸물거려 고기를 놓치는 경우 꾸지람을 듣곤 하였는데 꼬마들은 이렇게 어른들을 따라다니며 직접 보고 배움으로서 청소년기가 되면 훌륭한 고기잡이꾼이 되었던 것이다.

 어떤 일이고 언제나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다. 짱아집을 관리함에 있어서도 어쩌다 불량한 사람이 몰래 짱아집을 허물고 고기를 잡아갈 때도 있는데 허물었으면 잘 쌓아놓기라도 하면 좋으련만 아무렇게나 돌을 흩어버리고 가는 것이 예사라 고기를 잃어버린 것도 억울한데 다시 짱아집을 쌓아야하는 번거로움까지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남의 짱아집을 훔치는 사람이 잘 쌓을 시간이 어디 있겠는가, 고기 잡을 욕심에 닥치는 대로 돌을 집어 내버리면서 고기만 잡으려고 하지만 숙달된 사람이 아니고 또 주인이 올까봐 빨리 서두르는 통에 고기는 몇 마리 못 잡고 짱아집만 망쳐 놓는 결과를 초래하기 일쑤였다. 이렇게 허물어진 짱아집을 보수하려면 보리 한 가마가 날아갔다고 몹시 서운해 하면서도 다음 조금때 고기를 잡기 위해서는 정성스럽게 돌을 쌓을 수밖에 없었다.

 또한 짱아집을 허무는 발아래에 쪽대그물을 대고는 도망 나오는 고기를 잡는 얌체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물고기를 잡아서 그릇에 담아 놓고는 다른 짱아집을 허물러 간 사이에 몰래 고기그릇을 통째로 훔쳐가는 도둑, 아예 고기를 내놓으라고 협박해 빼앗아가는 깡패에 이르기까지 짱아집을 관리하는 데도 어려운 일들이 많이 있었다.


5 짱아집 시절 다시 올 수 없을까

 짱아집은 완장내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대천천에도 있었고 어느 지역이건 넓고 깨끗한 냇물에는 대개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던 것이 인구가 늘어나고 산업이 발달함에 따라 오염이 심해져서 이제는 웬만한 도시지역의 냇물에서 잡히는 물고기는 먹지 못하고, 아니 먹기는 고사하고 물고기 자체가 서식치 못하는 심각한 오염에 시달리는 냇물이 허다한 게 오늘의 현실이 아닌가? 따라서 짱아집도 우리 주위에서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지금 있는 몇 개의 짱아집은 그나마 없어졌던 것을 보령댐이 완공된 후 웅천천의 유수가 많아짐에 따라 물고기의 수가 늘어남으로 옛날 번성기의 추억을 못 잊는 한 주민이 혹시나 하고 두어 개 설치해 놓았고, 2001년 여름에 웅천읍사무소에서 복원차원에서 추가로 두 개를 더 설치 한 것이다. 설치 목적도 옛날처럼 생계유지수단으로 한 것이 아니라 옛 정취를 느껴보고자 짱아집을 재현한 것에 불과하고 실제로 잡히는 물고기의 종류나 수도 형편없다.

 옛날처럼 완장내에 바닷물이 드나들고, 웅천천에 깨끗한 물이 흐르고, 짱아집이 생겨나도록 할 수는 없을까? 뱀장어도 잡고, 참게도 잡고, 망둥어와 숭어도 잡을 수 있는 짱아집! 그 꿈같은 소망을 이룰 길은 없을까?

 (도움말씀 주신 분 : 웅천읍 노천리 신대인 56세, 김중권 56세)

※실은 곳: 2002년 발행 보령문화 제 11집 / 2006년발행 향토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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