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8. 9명의 친구들이 시산제를 지내고자 오서산에 오르는데 명대계곡 쪽으로 오르는 길이 눈이 많이 쌓여있어 만만치가 않았다.
가쁜 숨을 헐떡이며 정상에 올라 간단한 제물을 차려놓고 시산제를 올린 다음 금자동 쪽으로 하산하였다.
내려오는 길은 음지라서 눈이 더 쌓여 무릎을 넘는 곳도 많았다. 게다가 경사까지 심해 일행들은 조심에 조심을 거듭하면서 내려왔다. 이윽고 어려운 코스를 벗어나 완만한 산길로 접어들었고 200m정도만 더 가면 임도로 이어지므로 위험한 코스는 다 끝난 셈이었다.
한편 산길이 끝나 임도로 이어지는 부분은 2m정도의 언덕이므로 통나무를 잘라 몇 개의 계단을 만들어 편리하게 해 놓았다.
먼저 임도에 도착하는 대로 친구들은 아이젠을 풀기 시작하였고 맨 뒤에 오던 나는 계단을 접어드는 순간 앞으로 고꾸라지면서 얼굴을 아래로 한 채 주르륵 미끄러져 내렸다.(그러나 넘어진 기억도 나지 않고 심지어 계단이 있었는지조차 생각이 나지 않는다)
정신이 있었다면 손이라도 짚었을텐데 의식이 없는 상태이므로 얼굴이 계단에 닿은 채 흘러내린 것이었다.
임도에 떨어져 쓰러진 나를 친구들이 황급히 달려들어 일으켜 앉혔다. 그제서 정신이 든 내가 침을 뱉으니 피가 나왔다. 혀를 움직여 이빨을 더듬어 보니 세 개가 없었다. “에이 이빨이 나갔네.” 라고 내가 중얼거렸다.
친구들이 119에 신고하고 나를 부축하여 임도를 따라 휴양림 관리소까지 200m정도를 내려와서는 119구급차를 기다렸고 얼마 후 구급차가 도착하여 보령아산병원까지 후송해주었다. 오른쪽 이마를 비롯한 광대뼈와 입술부위를 심하게 부딪혔고 그 충격으로 목이 몹시 아팠으나 CT 및 X레이 촬영결과 다행히 머릿속과 목뼈에는 이상이 없었다.
그러나 윗 잇몸뼈가 금이가고 이빨이 5개나 상했으며(3개 부러지고 2개 신경손상) 얼굴 여러 군데에 찰과상을 입은 큰 사고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는 임도를 약 5-60m 남겨 놓은 지점부터 사고 당하는 순간까지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왜 그랬을까?
사고가 난 후 정신이 들었을 때, 꿈결 같이 아련한 기억에 산길을 내려오는 장면이 떠올랐는데 아마 그 때 정신이 혼미해졌던 것 같다. 그렇게 정신이 없는 상태로 걷다가 계단에 접어들자 발에 찬 아이젠이 계단에 걸렸을 것이고 그로 인해 앞으로 고꾸라졌던 것 같다.
그러면 왜 정신이 혼미해졌을까? 그것은 과로가 겹친 때문인 것 같다.
이틀 전(금요일) 옥마산 눈길산행 2시간에 이은 탁구운동 2시간, 하루전(토요일) 물탕골 눈길산행 2시간여, 그리고 사고당일(일요일) 오서산 눈길등산까지 3일 연속으로 어렵게 눈길산행을 하였던 것,
아닌 게 아니라 산을 오를 때 옛날에 비해 너무 어려워 내년부터는 나는 시산제에 동참 못하는 것 아니냐는 농담반 진담반 말을 하기도했다.
체력을 감안하지 않고 너무 무리하게 한 운동, 과로로 인하여 정신을 잃고 쓰러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