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인 이야기/더불어 사는 삶

봉사활동을 다녀와서

구슬뫼 2007. 12. 19. 20:12

  태안앞바다 유조선 기름유출사고로 몸살을 앓고 있는 서해안의 섬지역 오염물질을 제거하는 작업에 자원봉사활동을 다녀왔다.

 2007년 12월 18일 아침 7시, 아직 어둠이 걷히기 전 쌀쌀한 바람을 맞으며 집합장소로 나가니 김상우선배가 승용차로 허성만, 조성찬 두 선배와 함께 나와 계셨다. 곧 이어 이용희회장님이 도착하여 자신은 다른 사람을 태우고 갈 터이니 오천면 대천어항출장소(鰲川面 大川漁港出張所)로 가라기에 그곳으로 갔다. 잠시 뒤 회장님과 김태환, 이상윤 두 선배가 도착하고 전민용, 김종하, 조창식씨가 또 한 대의 승용차로 도착하였다. 모두 10명이었다.

 

 어항출장소에서 우리 일행이 어디로 가야하는지 확인해 보니 고대도(古垈島)라 하여 유람선을 타는 부두로 나갔다. 배 턱에는 남자, 여자, 일반인, 학생 등 각계각층에서 몰려나온 자원봉사자들로 인해 몹시 북적였다. 보령시청(保寧市廳)에서 나온 직원으로부터 점심도시락과 방제복 등 물품을 지급받아가지고 지정 된 배에 오르니 우리 일행 외에도 아는 사람들이 제법 눈에 띄었다.

 남포중학교(藍浦中學校) 황의호 교장과 교직원, 학생들이 탔고 보령교육청(保寧敎育廳) 소속 공무원들, 한나라당 당직자들, 미산면(嵋山面)에 사는 윤인희씨와 그 일행들, 그리고 알지는 못하지만 감리교회 희망 봉사대라고 쓴 단체복을 입은 사람들도 10여 명 무리를 지어 탔고 그 밖에도 많은 자원봉사자들로 배 안은 앉을 자리가 없어 상당수의 사람들이 서서 가야만 했다.

 

 배를 타고 40분정도 고대도라는 선내 방송에 따라 우리 일행들은 배에서 내렸다. 우리를 내려놓은 배는 장고도, 삽시도로 떠났고 우리 행정동우회(行政同友會=전직행정공무원 모임) 10명을 포함한 150명 정도의 자원봉사자가 마을회관 앞에 모여 방제복으로 갈아입고 바닷가로 나갔다.

 바닷가에는 어제 다른 봉사자들이 모아 마대자루에 넣어 놓은 오염물질들이 쌓여있었다. 타르가 묻은 자갈과 타르 묻은 바위를 씻어 낸 부직포들로서 자루의 무게는 20-40kg정도, 도로가 없어 자동차나 경운기도 못 다니고 암초가 많아 배도 닿지 않은 섬의 뒤편 구석이므로 모두 사람 힘으로 구릉너머 경운기가 닿는 곳까지 운반해야 했다. 거리는 약 50여m, 경사도는 20%정도로 가파른 편이다. 우리는 일렬로 서서 오염자루를 이어 받는 방법으로 언덕위로 올리는 데 이만 저만 어려운 게 아니었다.

 가벼운 것들이야 괜찮지만 40kg도 넘을 것 같은 자루를 받아 다음사람에게 전하려면 허리가 휘고 갈비대가 휘청이는 기분이다. 나도 어려운데 대부분 70이 넘은 우리 회원들은 얼마나 더 어려웠을까? 30분 정도를 정신없이 이어받아 전달하다보니 자루가 모두 언덕위로 옮겨졌다. 봉사자들의 방제복이며 고무장갑은 온통 기름 때로 얼룩이 저 엉망이 되어버렸다. 얼굴이 가려워도 긁을 수 도 없고 옷 속에서 휴대폰이 울려도 꺼내지 못해 받을 수가 없다.

 

 또다시 긴 산길을 넘어 가파른 산비탈을 밧줄을 타고 내려가자 오염된 후 한 번도 손길이 미치지 않은 바닷가가 나왔다. 오염상황이 심각하다.

 자그마한 몽돌로 이루어진 바닷가는 질척한 타르 덩어리가 수없이 흩어져 있다. 그것들을 걷어내야 하는데 모래밭에 떨어진 것은 인절미에 콩고물이 붙듯이 또르르 말려 걷어내기가 쉽지만 자갈에 석인 것은 자갈까지 몽땅 자루에 걷어 넣어야 함으로 여간 어려운 게 아니고 특히 울퉁불퉁 거친 바위에 묻은 타르를 부직포로 씻어 내려면 좀처럼 능률이 오르질 않는다.

 봉사자들은 농땡이를 치는 사람 없이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다. 그들 중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사람들이 있어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더니 경남(慶南)의 고성, 통영, 거제 등지에서 낚싯배를 운영하는 유선협회(遊船協會)회원들이라고 하는데 70 여명이 새벽 3시에 출발하여 이곳에 왔으며 오늘 끝나서 돌아가면 밤 12시는 될 것 같다면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가까이 사는 나도 벼르고 별러서 처음 나왔는데 먼 경남에서까지 이렇게 자원봉사를 나오다니  . . . “참으로 대단 하십니다.” 라고 인사를 했더니 “뭐 별거 아입니더. 우리가 무슨 일 당하믄  예서도 와주실거 아입니꺼?” 경상도 억양의 사투리가 금방 날라 온다. 우리는 마주 보며 껄껄 웃었다. 아- 우리나라는 아직 이렇게 훌륭한 국민들이 많으니 저력이 있는 나라가 아니겠냐 싶어 마음이 흐뭇해진다.

 

 12시가 되자 작업을 멈추고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마을창고까지 걸어 나와야 했다. 갈 때는 산을 넘어 갔으나 나올 때에는 물이 빠진 바닷가를 돌아서 나왔다. 거리가 1.5km는 넘을 성 싶은데 오염물 자루를 한 개씩 가지고 나와야 했다. 경운기나 배가 닿지 않아 사람이 일일이 한 개씩 들고 나오는 수밖에 없는 곳이기 때문, 모두들 20-40kg 정도 되는 자루를 한 개씩 둘러메고 길 아닌 돌밭을 줄지어 나오는 데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나는 오른쪽 무릎관절에 이상이 있어 요즈음 침 치료를 받는 형편인데 무거운 짐을 메고 험한 돌밭을 나오려니 걱정이 많이 되었다. 그렇다고 70이 넘은 분들도 들고 나오는데 나만 빈손으로 나올 수는 없는 터라 한 개를 메고는 “괜찮겠지, 좋은 일을 하면 무릎도 나을 거야” 라고 중얼거리며 그러나 발을 헛딛지 않도록 조심을 많이 하면서 끝까지 짐을 가지고 나왔다.

 

 마을 창고에는 점심을 먹으려는 봉사자들로 인해 북적였다. 각자 자기 소속단체별로 가지고 온 도시락을 나누고 섬마을 주민들은 따끈한 국물을 준비하니 창고 안은 금세 식사분위기로 훈훈해졌다. 일부 봉사자들은 소주까지 한두 잔씩 걸치는 사람도 있고, 그렇게 30분정도 식사가 끝나고 다시 오염현장으로 가는데 우리 행정동우회 회원들은 나이가 많다고 (60대 4명, 70대 6명) 이장님께서 오후에는 가깝고 일거리가 좀 쉬운 곳으로  안내 하였다.

 

 그곳은 섬의 앞부분인데 자연적으로 형성된 굴(石花) 밭이었다. 크고 작은 굴들이 바위에 다닥다닥 붙었는데 타르덩어리가 무수히 엉겨 있어 완전 엉망진창, 굴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이 아까운 굴들을 어찌하면 좋으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일행들은 자갈과 모래에 섞인 타르덩어리를 주어내고 바위에 엉겨 붙은 타르를 씻어내는 데 열중하였다. 어떤 곳은 타르덩어리가 모래밭이나 자갈밭에 들어붙은 다음 바닷물이 나갔다가 다시 들어 올 때에 모래나 굴 껍질을 그 위에 밀어다 붙여 타르덩어리가 완전히 묻혀 보이지 않다가 그 위를 밟으면 물컹하고 표가 나기에 그런 곳은 모래나 자갈 속을 파서 주어내야 했다.

 그렇게 일하길 3시간 정도, 4시까지 배가 들어온다고 하여 3시 30분 작업을 마치고 마을회관에 돌아와 온통 기름으로 범벅이 된 방제복과 장화와 고무장갑을 벗고 나니 찬 바닷바람이 오히려 시원하게 느껴졌다. 이곳저곳으로 흩어져 일하던 봉사자들이 한 팀 한 팀 모여들었다.

 

 마침내 배에 탔으나 다른 섬으로 봉사 나갔던 자원봉사자들이 먼저 타고 오는 배라서 좌석이 없다. 할 수 없이 서서 오는데 삽시도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돌아오는 남포중학교 학생들이 자리를 양보하는 바람에 행정동우회 회원들은 앉아 올 수 있었다. 교장선생님이 잘 아는 후배라서 오늘 봉사활동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며 오는데 삽시도(揷矢島)는 우리가 작업한 고대도 보다 훨씬 오염정도가 심하다고 하였다. 타르가 큰 덩어리로 마구 흩어져 있어 자루에 주어 담기조차 어려워 학생들이 타르를 흠뻑 뒤집어썼다는 것이다. 그러니 직접 기름폭탄을 맞은 태안 앞바다는 그 정도가 얼마나 심할까?

 

 이게 무슨 재앙(災殃)이란 말인가? 무엇이 이런 엄청난 피해를 불러왔는가? 유조선 선원들의 잘못, 크레인을 운반하던 사람들의 잘못, 사고발생 후 관계기관이 재빠르게 대처하지 못한 잘못은 또 얼마나 큰가? 극히 소수 사람들의 잘못, 안전 불감증, 늑장대처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땀과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게 하는 게 아닌가.

 아니 땀과 비용은 고사하고 수많은 사람들의 피눈물 나는 불행과 전 국민을 염려 속에 몰아넣는 국가적 대 재앙을 불러 왔으니 이를 어찌해야 할 것인가? 앞으로 얼마나 많은 노력이 들어야 오염물질을 다 없앨 수 있을까? 오염물질을 다 없앤다 해도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러야 생태계가 옛날로 돌아 갈 수 있을까?

 그러는 동안 수많은 어민들은 무엇으로 생계를 꾸려야 하는가? 아니 어민뿐인가, 지금쯤 한창 연말 특수를 앞두고 기대에 부풀어 있어야 할 바닷가의 호텔이며 여관, 민박들의 예약이 취소되고 있다는데, 횟집에 손님들이 뚝 떨어진다는데, 생선은 물론 건어물까지도 안팔린다는데, 연말연시와 민족명절 설을 앞두고 선물용으로 인기 높은 맛김의 주문이 들어오지 않는다는데 . . .

 이번 사태가 지역경제에 얼마나 많은 피해를 끼칠 것인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기가 막힐 일이다.

 

 배가 대천어항에 도착하자 주차했던 승용차편으로 돌아왔다. 회장님께서 오늘 수고들 많았다면서 간단하게 저녁이나 먹고 가자며 밥을 사는 바람에 소주까지 몇 잔 걸쳤으나 봉사했다는 뿌듯함 보다는 너무 엄청난 재앙과 그로 인한 부작용들을 생각하면서 착잡함을 금 할 길 없어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가볍지가 못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