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금은 정유재란때 조선에 원군으로 왔던 명나라 수군 유격장군(遊擊將軍)이다.
1597년 11월, 수군 3천명을 이끌고 충청수영에 들어왔다가 1598년 남해로 이동하여 이순신장군의 노량해전에 참전한 후 1599년 명나라로 돌아간 사람으로 충청수영에 머무르는 동안 주민들에게 많은 덕을 베풀었다고 한다.
이에 주민들은 그가 전장에 나가 싸우고 있는 1598년 초여름 그를 칭송하고, 왜적을 빨리 무찌르기를 기원하는 ‘遊擊將軍 季公 淸德碑’(이하 계금비라 한다)를 세워 오늘까지 오천초등학교 뒤편에 전하고 있다.
한편 사단법인 보령문화연구회에서 1992년(당시 대보문화연구회) 그 비문을 해석하여 ‘보령문화(당시 대보문화)’ 제2집에 실었고 2009년에는 계금장군의 고향인 절강성 태주부 송문진를 방문하여 진장을 비롯한 행정당국에 비문탁본을 전달하며 우호친선행사를 가진바 있다.
이에 계금장군의 후손들은 2014년 장군의 전적지를 찾아 보령을 방문한데 이어 올해엔 경남통영의 '한산대첩축제'에 참여한 후 두 번째 보령을 찾았다. 보령문화연구회에서는 8월13일 이들 일행(季康외 3인)과 계금비의 비문을 지은 안대진(安大進, 1598년 당시 승문원 교리)의 후손인 광주안씨 대표(安孟煥외 3인)를 맞아 환영만찬을 하고 8월 14일에는 ‘계금비’ 현장, ‘충청수영성’ 일원, ‘안대진’의 묘를 안내하는 등 우의를 다졌다. 앞으로 계금의 후손들과 보령문화연구회 사이의 우호를 다지는 민간교류의 활성화와 나아가 양 지역 행정당국간의 결연 등 활발한 교류까지도 기대해 본다.
다음은 이날 보령문화연구회에서 계금장군후손에게 한시를 지어(이덕영회원 지음) 선물한 바 그 내용이다.
季金將軍 因緣
保寧, 溫嶺 友好吟 (季金將軍 委羽山詩 次韻作)
黑霧凶塵掩 검은안개(黑霧)의 흉악한 티끌이 덮인 때
長庚海路開 장경(長庚)이 바닷길을 열었다.
龍崗鱗顯入 용강(龍崗)이 비늘을 나타내고 들어오니
鰲野甲俱來 오야(鰲野)는 갑옷을 갖추고 왔구나.
隔暗馨淸德 어둠에 막힌 때 청덕(淸德)의 향기 퍼지니
餘光到玉臺 여광은 옥대(玉臺)까지 이르렀다.
古因今復繼 옛날의 인연이 지금 다시 이어져
同手進前催 함께 손잡고 앞으로 나갈 것을 재촉하네.
*검은 안개=왜, 長庚=계금의 자, 龍崗=계금의 호, 鰲野=오천에 있는 충청수영 , 玉臺=옥황상제가 있는 곳, 즉 먼리,
(사진은 위에서부터 환영만찬장, 후손대표 인사, 보령문화연구회장 환영사, 한시(선물)설명, 선물증정, 계금비현장설명, 충청수영돌아보기, 안대진(계금비문 지은이)의 묘 참배순이다. 사진은 직접 찍어 제공해주신 김용일회원님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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