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인 이야기/내고향 보령

주렴산 소개

구슬뫼 2008. 11. 23. 13:46

 주산의 명산 주렴산(珠簾山)

 

 


 주렴산은 351m의 주봉인 국수봉(國帥峯)을 중심으로 북으로는 웅천읍(熊川邑) 접동굴까지 뻗어있고 남으로는 비스듬히 동쪽으로 돌면서 서천군계(舒川郡界)에 이르기까지 작은 봉우리들로 줄이어 이루어진 약 3㎞의 긴 산줄기가 주산면(珠山面)의 중앙부를 감싸면서 병풍처럼 둘러서 있는 산으로 그 모양이 마치 구슬을 꿰어 발을 늘여놓은 발, 즉 주렴(珠簾)같다고 주렴산 이라고 부르며 이 산의 이름을

따서 주산면(珠山面)의 이름도 지었다고 한다.


1 주산인(珠山人)의 정서 속에 들어 있는 주렴산

 오랜 세월동안 이 고장 한복판에 우뚝 서 주산에서 일어나는 좋은 일 그른 일 등 생생한 역사를 지켜보면서 우리 고장 사람들의 애환을 지켜 온 주렴산은 주산사람들의 정서 속에 파고들어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아침저녁으로 바라다보면서 정겨움을 느끼고, 학창시절에는 소풍으로, 어른이 되어서는 산책을 하기도 하고 산나물을 뜯거나 약초를 캐거나 땔나무를 구하기 위하여 수시로 오르내리면서 정이 들었던 주렴산, 때로는 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으며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찾기도 하였으니  객지에 나가 사는 사람들도 고향생각이 날 때면 곧잘 주렴산을 떠올리며 그리워한다고 한다. 한편 주렴산은 주산 중. 산업고등학교(珠山 中, 産業高等學校) 교가 1절에도 들어가 있어 주산인과의 관계를 더욱더 가깝게 느껴지게 한다. 


“주렴산 높은 봉울 우러러 보며

 황해 물 큰 물줄기 마시며 컸다.

 정성껏 몸과 마음 닦는 우리들

 빛내자 우리학교 금수강산에”

 

 사람들은 그런 주렴산의 산세가 수려하여 예로부터 주산면에서 인물이 많이 난다고들 하며 특히 국수봉(國帥峯) 서남쪽에 정기가 서려있어 그 아래 부분에 자리한 유곡리(柳谷里)와 증산리(甑山里)에서 큰 인물이 난다고 하는데 그 때문일까? 증산리에서는 이철원(李哲源) 대한민국 2대 공보처장이, 그리고 유곡리에서는 민주당정권 당시 주요 인물이었던 김영선(金永善) 재무부장관이 탄생하였고, 지금도 이름만 대면 누군가 알만한 전국적인 인물이 여럿 활동 중에 있어 주렴산의 정기를 입질에 올리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풍수지리가 맞는 것인지 아닌지 그 분야에 전혀 알지 못하는 필자이지만 좋다고 하니까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주렴산에서는 만세운동도 있었다. 1919년 3월16일 밤 이 산에 오른 18명의 열사(烈士)들은 태극기를 게양한 후 횃불을 밝히고 징을 울리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침으로서 사람들의 가슴에 독립정신의 불을 지피는 의거가 있었던 것, 그래서 이곳 정상에 1997년에 독립만세운동을 기리는 기념비를 세워 놓았다.

 

 

                                                정상에 있는 독립만세 기념비 


2 주변마을들과 환경

 동쪽 산기슭에는 수산굴, 송산말(송섭말), 수랑굴, 답박굴, 란이, 장작굴, 속주렴산, 새태굴, 갓주렴산 등의 마을이 형성되어 있고 남쪽기슭에는 대숲굴, 엄동굴, 삼밭굴, 군계(郡界)마을, 죽나무굴, 돌머리, 버들, 숙굴, 서쪽으로는 시루뫼, 성너머, 방죽골, 송림, 새터말, 돌고개, 웅천읍의 접동굴 등 많은 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산줄기가 길기 때문에 넘나들던 고개도 여러 곳 있었다.  유곡리와 증산리 사람들이 주산면 소재지를 다니기 위해 넘든 작은 짓재, 간치역으로 통하던 큰 짓재, 송림마을 사람들이 주산면 소재지나 간치역으로 통하던 서낭댕이재 등은 일반인들은 물론이려니와 초,중고 학생들이 아침저녁으로 넘나들던 애환어린 고개들이고 이밖에도 송림마을 사람들이 웅천장으로 통하던 한치재도 있고 또한 나뭇꾼들이 넘나들던 큰 산말랭이와 작은 산말랭이도 아직 희미하게 옛길의 흔적이 남아 있다.

 한편 국수봉 정상에 1960년대 후반 육군 통신초소가 설치되어 1980년대 초반까지 5~6명의 현역군인이 주둔한바 있고, 1970년대에는 답박굴 뒤 2부~5부 능선 평평한 부분에 예비군 훈련장이 설치되어 10여 년 간 운영되었었다.                


3 국수봉 이야기

 주렴산의 정상을 국수봉(國帥峯) 또는 국사봉(國師峯, 國祀峯)이라고 하는데 국수봉은 여기 말고도 주산면내에 두 군데나 더 있다. 한곳은 금암리 신깃골 마을 윗부분의 판수굴재 옆에 국수봉과 국수댕이가 있으며 또 한곳은 동오리 안굴마을과 정주안마을의 뒷산을 이루는 뾰족한 봉우리가 국수봉(일명 쇠말봉)이다. 전국적으로 보면 국수봉이라는 곳이 방방곡곡에 산재하여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방에 따라서는 국시봉, 구시봉으로 부르기도 하는 국수봉이란 무얼까? 사람들은 국사봉이라고도 부르므로 혹시 나라 일을 보던 국사봉(國事峯)이 아닐까? 그러니까 옛날에 나라에서 봉화를 올리기도 하고 기타 나라에서 필요로 하는 시설을 두고 관리하던 곳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하기도 하고 실제로 “주렴산에서 봉화를 올렸다더라” 하는 따위의 말을 하는 사람까지도 있다.

 그러나 국수봉이란 민속신앙에서 그 뿌리를 찾아야 한다.  마을 근처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에 올라가서 국수당(國帥堂 또는 國帥神堂) 차려놓고 하늘에서 내리는 국수신(國帥神)을 모시는 곳으로서 산신당(山神堂), 서낭당(성황당= 城隍堂)과 함께 민간신앙의 한 장소였던 것이고 이 국수당이 있던 곳을 국수댕이, 국수댕이가 있던 봉우리가 바로 국수봉이었던 것이다. 1950년쯤 이곳 정상의 네모난 큰 바위 밑에서 그릇조각, 쇠로 만든 말(馬), 배(船)의 모형과 금가락지가 출토되어 민속신앙과 관련한 국수신당이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참고로 말이나 배는 신의 상징 또는 신(神)이 타고 다니는 물건이라 신당에 비치하였던 물건들이라고  한다.

 한편 기록에 의하면 조선 태조(太祖)가 한양에 도읍을 정한 뒤 북악산과 남산꼭대기에 국수당을 지어 서울의 수호신사(守護神祠)로 활용하였다고 하는 바, 국수신은 아주 먼 옛날부터 사람들이 섬겨온 우리민족 고유의 신이었다.


4 주렴산의 등산로 

 등산코스는 답박굴 마을회관에서 마을안길을 따라 오르면 굴바위 옆을 지나 옛 예비군훈련장 옆으로 난 산길이 이어진다. 20분정도면 경사가 완만한 예비군 훈련장 위 부분까지 이를 수 있고 여기서부터는 가파른 길이 시작된다 이곳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국수봉 정상까지 오르는 시간은 약 20분, 출발점에서부터 총 40분이면 산꼭대기에 오를 수 있다. 정상에 서면 서쪽으로 확 트인 서해바다가 한눈에 들어오고 남쪽으로는 서천군의 동백정(冬栢亭)과 서해화력(西海火力)발전소의 굴뚝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다가오며 멀리 장항제련소(長港製鍊所= LG산전 장항공장)의 굴뚝까지 보인다. 고개를 돌려 동쪽을 보면 주산면 일대가 한눈에 들어오고 멀리 미산면(嵋山面),성주면(聖州面), 북으로 웅천읍 일원까지 보령시 남부일대를 훤하게 조망할 수 있어 답답했던 가슴이 탁 트이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하산하는 길은 오르던 길을 되짚어 내려가도 되지만 북쪽능선을 따라 갓주렴산 마을까지 1시간 30분 정도 걸리는데 아기자기한 작은 봉우리들을 넘어가며 하산하는 맛은 산을 오를 때의 숨 가쁨을 풀어주기에 충분하다. 능선을 타고 내려오기 때문에 시계가 탁 트인 게 좌측에는 서해바다, 우측에는 아스라히 펼쳐지는 산과 들판 등 양쪽으로 펼쳐지는 경치도 볼만하려니와 봄철에는 고사리와 취나물 등 산나물도 다양하여 이를 채취하는 재미도 쏠쏠하게 맛 볼 수 있다.

 이상 소개한 등산로를 거꾸로 갓주렴산 마을에서부터 오르면 국수봉까지 2시간정도 소요되는바 가파르지 않은 산길을 서서히 오르는 또 다른 재미의 등산을 할 수 있다. 답박굴 마을회관과 갓주렴산 마을회관 등 양쪽에 승용차를 대놓고 초보자들이 등산하기에는 적당한 코스라고 하겠다.


5 전설

ㅇ굴바위 전설

 답박굴 마을 뒤 국수봉으로 오르는 3부 능선쯤에 큰바위가 몇 개의 조각으로 갈라져 있는 듯 한 바위가 있는데 이를 굴바위라 한다.  먼 옛날 국수봉 꼭대기에 있던 것이 굴러와 이곳에 멎어섰다는 말이 있는 이 바위와 관련한 전설이 있다.

 옛날에 산나물을 뜯던 아낙네들이 이 굴바위 밑에 이상한 짐승새끼들이 있는 것을 보고 몰려들어 구경을 하면서

"아니 이게 뭣 새끼여, 참 이쁘게 생겼네" "이쁘기는 뭣이 이뻐, 뵈기 싫구먼" "�무슨 소리여 증말로 귀엽구먼"

저마다 한마디씩 하는데 언제 왔는지 굴바위 꼭대기에 앉아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어미 호랑이가 제 새끼 예쁘다는 말에 기분이 좋아서 어흐~응 하고 웃었다. 호랑이 소리에 놀란 아낙들이 바위 위를 올려다보고는 혼비백산 나물구럭(망태기)을 내 팽개친 채 집으로 도망쳐 왔다.  그날 밤 호랑이는 나물구럭을 모두 주인집을 찾아서 사립문에 걸어주고 갔다고 하는데 예쁘다고 한 사람네 구럭은 온전히 걸고 밉다고 한 사람네 구럭은 발기발기 찢어서 걸어 놓았더라는 이야기가 전한다.


빈대절터 이야기

 주렴산에는 버들마을 뒤 6부 능선쯤의 골짜기에 1970년대까지만 해도 작은 암자가 있었고 송림마을 뒤 산골짜기에는 2- 3개소의 절터가 있다. 그중 한곳을 빈대절터라고 하는데 옛날 이곳에 절이 있었으나 빈대가 생겨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스님들이 미온적으로 대처하였는데 빈대의 번식이 빨라 그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자 할 수 없이 그곳의 절을 폐쇄하고 다른 곳으로 옮겨 가버렸다고 하며 지금은 잡목과 풀만이 무성하다. 빈대절터 이야기가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는 없지만 이와 비슷한 내용의 이야기를 다른 지방에서도 들을 수 있고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운다.”는 속담도 전하는 등으로 보아 살충제가 없던 옛날에는 빈대가 한번 발생하면 퇴치하기도 곤란하고  서민들의 생활에 매우 괴로운 존재였음을  말해주는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참고문헌: 보령군지, 대보문화 제4집, 도움말씀 주신분: 백만균, 임재혁, 나인례, 김장열)

※실은 곳: 2004 보령시발행 관광보령의 명산들, 2005 주산면발행 구슬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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