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 명언

열국지39-41

구슬뫼 2025. 6. 23. 16:24

列國誌 39 :여불위의고민 간부 노애

 

그 무렵 함양성 안에는 남근(男根)이 장대하기로 소문난 노애라는 젊은이가 있었다.

이 자의 남근이 얼마나 굵고 길며 튼실한지, 들리는 소문에는 그의 남근은 말의 것(馬根) 보다도 거창하고 장대하여 그것에다 마차바퀴를 끼우고 돌려도 모자람이 없다고 하였다.

노애란자가 그런 대물을 가졌다면 여불위는 자기 대신에 그를 태후궁으로 들여보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하루는 하인을 시켜서 노애를 불러다가 자기 눈으로 그의 양물을 직접 구경하게 되었다. 불려온 노애는 술이 거나하게 취하여 아랫도리를 내린 채로 빙빙 돌면서 춤을 추는데 과연 노애의 물건은 놀랄 만큼 장대하고, 늘어진 그의 물건은 그야말로 땅에 닿을 듯이 출렁거렸다. "그만 하고 용두질(自慰)을 해 보아라! "

여불위가 불호령을 내리니 춤을 추던 노애가 수음(手淫)을 하는데, 장장 한 시각을 지나서야 정액을 토해 내는데 그 양이 무려 한 바가지에 이르렀다.

(과연 놀라운 놈이로다! 저놈이라면 주희가 거품을 물고 뒤로 나자빠질 것이다.)

여불위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노애를 깨끗하게 씻겨 깊숙한 자신의 내실로 불러 들여 자세한 내용을 설명해 준 뒤 사람을 시켜 그의 수염과 눈썹을 뽑아, 내시(內侍)처럼 만들어 버렸다. 그런 후에 태후궁으로 들여보내면서 이런 말을 전해 주었다.

"이 자는 부형(腐刑 : 男根이 잘리는 형벌)으로 처벌된 사람이온데, 심지(心地)가 무척 무던하오니, 태후께서는 환관(宦官)으로 쓰시도록 하시옵소서."

 

노애를 태후궁으로 들여보낸 뒤로는 주희는 여불위를 일체 부르지 않았다. 노애가 여불위보다도 훨씬 더 만족스러웠기 때문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로써 여불위는 오랫동안 시달려온 고민을 깨끗하게 해결할 수가 있었다. 태후 주희는 노애와 접촉하게 되자, 새로운 청춘을 맞는 듯 한 기쁨에 넘쳐 있었다. 서로의 애정이 얼마나 깊었던지 태후 주희는 몇 달 후에는 임신까지 하였다. ()을 낳은 뒤로도 여불위와 숱하게 접촉을 하였어도 아무런 소식이 없어 불임증(不妊症)에 걸린 줄만 알고 있었는데, 20년이 다 된 지금, 덜컥 뱃속에 아기가 들어선 것이다. 아이를 배게 되는 것은 경사스러운 일임에 틀림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남편이 죽고 없는데 아이를 배었고, 더구나 구중궁궐에서 생활하는 태후가 아기를 갖게 되었으니 커다란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고집과 독선으로 똘똘 뭉친 진왕이 알게 되면 그야말로 큰일이 아니겠나.

 

"이 일을 어쩌면 좋아요? 시의(侍醫)에게 부탁하여, 아기를 떼어 버리기로 할까요?"

주희는 걱정이 태산 같아서 노애에게 물어 보았다. 노애는 뛸 듯이 놀라며 노발대발했다.

"떼어 버리다니, 이게 무슨 소리야 ! 뱃속에 아기가 누구의 자식인데 맘대로 떼어 버리겠다는 것이야?" 얼마 전까지 거리에 한량배에 지나지 않았던 노애였지만, 태후가 임신한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는 당당한 서방 행세를 하고 나왔다.

"뱃속에 아기가 당신 자식이지 누구 자식이겠어요. 그렇지만" "그렇지만, 뭐가 어쨌다는 거야!"

노애는 벼락같은 호통을 지른다. 일국의 태후도 자신의 뱃속에 아이를 넣어 준 서방 앞에서는 어쩔 수가 없는지, 노애의 호통을 듣고서도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 한다.

그러면서 주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노애의 손을 다정히 붙잡으면서 속삭이듯 말했다.

 

열국지 40

"나도 당신의 애기를 지워 버리고 싶지는 않아요. 그러나 이 일이 왕에게 알려지는 날이면 우리들의 목이 달아날 판이니 어쩌면 좋아요?" 노애도 그런 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태후의 뱃속에 들어 있는 자기 자식을 떼어 버릴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었다. 노애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애기를 떼어 버려서는 안 돼! 그러면 이렇게 하는 것이 어떨까?"

"어떻게 하자는 거예요? 애기를 낳을 수 있는 방도만 있다면 나도 당신 애기를 꼭 낳고 싶어요." "그러자면 복술사(卜術師) 한 사람을 매수해야 할 거야."

"복술사를 매수해서 어떡하자는 거예요?" "당신이 태후궁에 그냥 눌러 있으면 신수가 불길해지니까, 어딘가 먼 곳으로 떠나야 좋겠다고 하면 될 게 아냐. 그래서 나와 함께 먼 곳으로 떠나기만 하면, 애를 낳더라도 알게 뭐야?" 주희는 그 말을 듣고 뛸 듯이 기뻐했다.

"그것 참 좋은 생각이네요. 액땜을 위해 먼 곳으로 떠나 있어야 좋겠다고 하면 왕도 쾌히 허락해 줄 테니, 우리 그렇게 하기로 합시다." 복술사 한 명 매수하기는 지극히 쉬운 일이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 복술사는 진왕을 찾아뵙고 매우 걱정스럽게 품한다.

 

"태후마마의 금년 운수가 너무도 불길하시옵니다."

홀어머니에게 극진한 진왕은, 복술사의 말을 듣고 크게 걱정했다.

"어머님의 운수가 불길하다면, 어떤 방도를 하여야 액운을 면할 수가 있겠나?"

복술사는 자못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한다.

"태후마마께서 액운을 면하실 길은 오직 한 가지 방도가 있을 뿐이옵니다."

"그 한 가지 방도란 어떤 것인가 ? 그대도 알고 있다시피, 어머니께서는 일찍이 홀로 되셔서 매우 외롭게 지내시는 형편이니 내가 어머니를 편히 모셔야 되지 않겠나?"

 

"효성이 지극하신 말씀이시옵니다. 태후마마께서 액운을 면하시려면, 서방으로 천 리 이상 떨어진 곳으로 거처를 옮기시는 것이 좋겠사옵니다."

"그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로구먼. 함양에서 서쪽으로 1,500리쯤 떨어진 곳에 옹성(壅城)이라는 별궁(別宮)이 있으니, 그리로 가시게 하면 될게 아니겠나?" "좋으신 생각이시옵니다."

이리하여 태후 주희는 진왕의 특별 배려로 옹성으로 떠나게 되었는데 그를 모시고 가는 시종들의 숫자가 무려 2천 명에 이르렀다. 옹성으로 옮겨 온 주희와 노애의 생활은 신혼부부와 다름없이 각별하였다. 지금까지는 항상 남의 눈을 피하느라고 조마조마하게 밀회를 해 오다가, 이제는 마음 놓고 만나 즐길 수 있는 자유가 무엇보다도 즐거웠던 것이다.

이듬해 여름에 주희는 아들을 낳았다. 두 사람 사이에 아들이 생겨나자 노애에 대한 주희의 애정은 더욱 두터워져서, 주희는 마침내 진왕에게 다음과 같은 상소문(上疏文)을 올렸다.

 

진왕은 그 상소문을 받아 보고 매우 고맙게 여겨, 노애에게 00라는 작호를 내림과 동시에 옹성 주변 5만 호의 후주(侯主)로 봉하기까지 하였다.

이제 노애는 세상에 부러울 것 없이 영화를 마음대로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궁전을 새로 짓고, 정원을 새로 꾸미고, 날마다 사냥을 즐기면서, 무엇이든지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더구나 1년 만에 주희가 또 하나의 아들을 낳게 되자, 노애는 새로운 욕심이 생겨나서 주희에게 이런 말까지 하게 되었다.

 

列國誌 41 : 권력에 취한 자가 이 시대, 우리에게 주는 교훈

이 때의 진나라는 전국칠웅 가운데 영토가 제일 넓었다.

북으로는 멀리 호령(胡嶺), 곡구(谷口)에 이르렀고, 남으로는 양자강 지류인 경수(涇水)와 황하 상류인 위수(渭水)를 둘러싼 곡창 지대와 서쪽으로는 서촉(西蜀)의 태산준령이 가로 막고 있어 천연의 요새가 따로 없었고, 동으로는 함곡관(函谷關 : 오늘의 하남성 신안현 동쪽 끝에 있는 관문. 진이 산동 육국으로 진출하려면 반드시 지나야만 하는 함준한 관문)과 효산(肴山)이 있어서 천혜의 (難功不落) 요새가 되어 있었다.

따라서 진이 다른 나라를 침략하기는 쉬워도 타국이 진나라를 공략하기는 쉽지 않은 지형이었다. 게다가 先王인 소양왕때 부터 꾸준히 병력을 양성해왔으므로 군사와 무기는 막강했다.

한편, 나머지 육국의 사정은 어떠한가? 이들 여섯 나라는 황하 유역의 비옥한 평야에 소재하는데다가 기후마저 온화하여, 백성들이 농경하기가 최적이었고 인문도 융성하여 일찍부터 문화가 찬란하게 꽃피어 있었다. , , , 초 등이 그러한 나라들이었으나, 다만 그들은 영토가 작고 군사력이 약하여 군사력에서는 진나라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이렇다 보니, 진에서는 소양왕 때부터 중원 제국을 삼켜버리고 싶은 욕망이 넘쳐나 소양왕 스스로가 70 평생을 야전에서 보냈거니와, 미래의 진시황인 소년 왕 ''도 증조부의 원대한 뜻을 이어받아, 등극한 그날부터 천하통일의 야망에 불타고 있었다. 그리하여 일찍이 실전을 방불케 하는 군사 훈련을 계속해 오면서 시간을 내어 많은 신하들을 거느리고 국토를 순회하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았으니, 나이에 비해 대단히 성숙한 소년 이었던 것이다.

 

어느덧 소년 왕이 등극한 지 3년이 되는, 열다섯 살 나던 해의 생일날이었다.

소년 왕은 생일 축하연 석상에서 만조백관들에게 돌연 다음과 같은 폭탄선언을 한다.

"내 나이 이미 열다섯 살, 남아 열다섯이면 당당한 대장부이건만, 나는 아직 영토를 조금도 확장하지 못했소. 이는 진실로 선왕들께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이오. 이에 결심한 바가 있어, 올해는 우선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한을 쳐서 영토를 넓혀 나갈 계획이니, 경들은 나의 뜻을 받들어 최선을 다해 주기 바라오."

열다섯 살짜리 소년으로서는 너무도 당돌하고 엄청난 폭탄선언이었다. (피는 속이지 못한다더니, 이 애가 나의 피를 이어 받아서 배짱도 엄청나구나.) 여불위는 소년 왕의 패기에 한편으로는 어깨가 으쓱하도록 기뻤다.

그러면서도 즉흥적인 선언이 너무도 무모해 보여 충고라도 해 줄 생각에 "대왕 전하!..."하고 말을 하려고 하자, 소년 왕은 손을 들어 제지하듯 하면서 "나의 명령에는 오직 복종만 있을 뿐이오. 승상은 입을 다물어 주시오."하면서 일언지하에 입을 틀어막는 것이었다.

 

<왕의 명령은 절대권을 가진다.> 어린 소년에게 일찍이 이와 같은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려준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닌 여불위 자신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이렇게 교육을 시켜 놓아야 후일에 자기에게도 유리하리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 와서 보니 그것이 아니었다. 소년을 절대권자로 만들어 놓은 이제는 자신이 아비라는 사실조차 말할 수 없게 되었고, 그의 명령에는 자신도 모르게 무조건 복종하지 않을 수밖에 되지 않았는가? 그야말로 자승 자박(自繩自縛)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계속)